작년 부산에서 단 한편의 한국영화를 선택하라면 박정범의 <무산일기>다.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무산일기>는 로테르담, 도빌, 폴란드, 러시아 등 출품된 국제영화제마다 상을 휩쓸었다. 1년 만에 박정범 감독은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신작을 들고 참여한다. 제목은 <살다>. 강원도 산골 청년이 고향에서 좌절한 꿈을 이끌고 서울의 형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이건 혹시 <무산일기>의 속편일까? 박정범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1년만에 부산에 돌아온 기분은.
=처음엔 해외영화제에서도 멋모르고 상을 받았는데, 예닐곱 번 정도 받으니까 다음 영화를 정말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더라. 요즘은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려 마음먹고 시나리오를 열심히 수정중이다.
-그럼 APM 사이트에 소개된 시놉시스와 달라질 거란 소린가.
=그건 그대로고 디테일이나 작은 사건들이 바뀔 듯하다. 플롯은 원래 순차적 구성이었는데 지금은 시간을 뒤바꿔가면서 관객들이 덜 지루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려 한다. 구조가 강원도와 서울이라는 공간으로 나뉘어있어 <무산일기>랑 비슷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이미 했던 걸 복제하는 느낌은 싫다. <무산일기> 상영할 땐 꼭 통곡하는 관객이 있었다.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기보다는 영화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며 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암울함만을 던져주며 영화를 끝내는 게 과연 올바른 방식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살다>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다. 희열이나 만족감, 밝은 감정으로 내 의미를 전달할 방법이 있을테니까.
-여전히 주연도 겸할 생각인가.
=직접 하려고 했는데 이창동 감독님이 재고해 보라더라. 만약 친숙한 배우가 주연을 맡는다면 관객들이 영화의 정서를 좀 더 빨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충고였다. 다만 <살다>의 시나리오는 자연스럽게 내 모습이 주인공에 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썼기 때문에... 지금 생각을 여러가지로 많이 해보고 있는 중이다.
-이번 영화도 수퍼16미리로 촬영하는 이유는.
=16미리로 찍은 다르덴 형제의 초기작들은 투박하지만 날것의 어떤 질감을 보여준다. 그런게 <살다>에도 적합한 것 같다. 요즘 HD영화들은 너무 선명하고, 뻔뻔하다고 할까. 마치 우리가 보는 진짜 세상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다. 오히려 필름이 더욱 우리가 보는 세상에 가깝지 않나. 기동성도 제작비에 따른 여건도, 16미리가 내 대안인 것 같다.
-언제쯤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까.
=지금은 투자가 가장 큰 문제다. 이번 겨울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음 겨울 정도? 많은 주변 사람들이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빨리 찍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색깔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