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사회적 리얼리즘과 일본 만화 예술의 결합 <두더지> Himizu
2011-10-08
글 : 김도훈

<두더지> Himizu
소노 시온 | 일본 | 2011년 | 129분 | 아시아영화의 창

거두절미하고, 지금 일본 영화계에서 소노 시온을 따라갈 자는 없다. 그의 전성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차가운 열대어>부터 시작됐다. 거의 고어영화에 가까운 이 범죄극에서 소노 시온은 인간 내부의 광기, 우리 모두가 남몰래 갖고 있는 욕망을 무시무시한 집요함으로 파고든다. 표백제로 씻어낸 것 같은 팬시영화와 지나칠 정도로 재단된 기획영화가 지배하는 지금의 일본 영화계에서 소노 시온은 80년대 이후 현해탄 건너 영화쟁이들이 거의 잃어버린 칼날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일본 만화계에서 후루야 미노루를 따라갈 자는 없다. <이나중 탁구부>로 데뷔한 이 시대의 천재는 이후 <크레이지 군단> <두더지> <시가테라> <심해어> 등 패배한 인생들의 마음속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걸작들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더이상 화장실 개그는 없다. 후루야 미노루는 사회적 리얼리즘과 일본 만화 예술의 어떤 불가능한 결합을 완성시키고 있다.

<두더지>는 두 거장 소노 시온과 후루야 미노루의 만남이다. 후루야 미노루의 2001년 동명 만화를 각색한 <두더지>는 일본영화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쓰레기 인생들의 삶을 다룬다. 주인공인 중학생 스미다(소메타니 쇼타)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스미다에게 그건 망상에 불과하다. 엄마는 가출했고 아빠는 술에 취하면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스미다를 구타한다. 스미다에게 유일한 가족은 그가 경영하는 보트 대여소 주변의 노숙자, 그리고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동급생 차자와(니카이도 후미)뿐이다.

소노 시온의 <두더지>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다. 후루야 미노루의 원작이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우울증에 빠진 상태로 희망없이 마지막 장을 덮어버린 데 반해 소노 시온은 한줌의 희망을 건져올리는 데 인색하지 않다. 특히 소노 시온은 3·11 동북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서 촬영한 장면들을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주인공의 상상 속에 삽입한다. 이 무시무시한 시퀀스들은 스미다의 마음속 공허를 현대 일본으로 연장시키는 장치인 동시에, 폐허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어떤 절규에 가깝다. 특히 스미다가 차자와의 응원을 받으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소노 시온의 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감동의 순간을 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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