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는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 영화의 전당과 배우 및 감독, 영화, 관객이 왼쪽 심장이라면 오른쪽 심장은 영화제 개막 4일째인 10일부터 열리는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 Asian Project Market)이다. APM이라는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들리지만 그간 신작 프로젝트를 들고 부산을 찾은 감독들과 제작, 투자자들의 장이었던 ‘PPP’가 바로 APM이다. 재능 있는 감독들의 신작 프로젝트 30편을 선정해 아시아필름마켓을 찾는 제작자와 투자자들에게 소개해 투자를 이끌어내는 행사인 PPP(Pusan Promotion Plan)는 영화제의 영문표기가 PIFF에서 BIFF로 바뀌면서 APM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APM으로 이름을 선정한 이유를 묻자 아시아 필름 마켓의 남동철 실장은 “기존에 있던 아시아 필름 아카데미, 아시아 시네마 펀드와 같이 ‘아시아’ 행사 시리즈의 일환으로 보이는 이름으로 APM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마켓이 시작된 지 벌써 6년, 그간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던 APM은 새로운 둥지, 벡스코 제1전시장 APM존에서 공식 프로젝트 선정작 30편과 함께 제작자와 투자자들을 기다린다.
주목할만한 일본의 프로젝트, <내 남자> <이스트윈드 레인>
총 162편의 신청작 가운데 올해 APM에 선정된 30편의 공식 프로젝트 경향은 신진과 기성 감독의 조화다. 하라다 마사토, 구마키리 가즈요시 같은 쟁쟁한 기성감독부터 아부 샤헤드 에몬, 모 브라더스 같은 가능성 있는 신진 감독들까지 형평성 있게 선정됐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대만의 장초치, 한국의 허진호, 류승완, 박정범, 일본의 하라다 마사토와 구마키리 가즈요시, 인도네시아의 모 브라더스 감독의 프로젝트가 눈여겨 볼만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 감독들의 프로젝트다. <카이탄시 스케치>의 감독 구마키리 가즈요시는 새 프로젝트 <내 남자>를 APM에 출품했다. 영화는 쓰나미로 자신의 부모를 잃은 소녀가 한 남자에게 입양되지만 곧 양아버지와 사랑에 빠진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소설 <내 남자>가 원작인 이 영화가 구마키리 가즈요시에 의해 어떻게 재탄생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이어 배우인 동시에 감독으로도 유명한 하라다 마사토가 선보이는 <이스트윈드 레인>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번 영화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하와이의 외딴섬에 거주하던 일본인 가족이 섬에 추락한 일본 제트기 조종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재일교포 출신 양영희 감독의 신작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그녀는 자신의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극영화로 재탄생 시킨다.
일본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강세인 가운데 인도네시아 감독인 모 브라더스(티모 타한토, 키모 스탐보엘)의 <킬러들>도 눈에 띈다. 모 브라더스는 2002년부터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 2009년 첫 장편 슬래셔 영화 <마카브르>를 완성해 인도네시아 영화계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두 번째 장편 프로젝트 <킬러들>은 도쿄와 인도네시아를 배경으로 한 장르영화로, 시놉시스부터 눈길을 끈다. 도쿄에 사는 30대 초반의 노무라는 잘생긴 얼굴과 능력을 무기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자다. 하지만 노무라는 자신의 살인행각을 찍어 웹사이트에 올리는 살인마다. 한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폭로 기사를 쓰는 기자 바유는 노무라가 올린 동영상을 보고 연쇄살인마가 된다. 둘은 서로 자신의 살인행각을 찍어 웹사이트에 올리며 경쟁하기 시작한다. 시놉시스가 상업적인 성격이 강하고 흥미로우며 전작이 흥행에 성공한 점을 염두에 두면 모 브라더스의 새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는 투자자들이 많을 것이란 예측도 해 볼 수 있다.
대만의 장초치 감독의 프로젝트도 빼놓을 수 없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사랑이 찾아 올 때>를 선보인 그는 새 프로젝트 <길>(가제)로 APM을 찾는다. <길>은 삶을 뒤흔드는 세 가지 사건을 겪게 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세 가지 사건은 내전 중에 총을 맞을 뻔한 일, 은행 강도가 되었던 일,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여자를 만난 일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영화는 우리시대의 선과 악을 보여줄 예정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 상을 받은 바 있는 장초치 감독의 신작이 이번 APM에서도 파트너를 만날 수 있을지 기대해봄직하다.
류승완의 <베를린 스파이>도 주목
한국은 류승완, 허진호, 박정범 감독의 새 프로젝트가 눈에 띈다. 먼저 전작 <부당거래>로 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은 류승완은 <베를린 스파이>(가제)로 스파이 액션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베를린 스파이>는 북한의 스파이 부부가 이중스파이로 오인받는 이야기다. 그간 독특한 장르 영화들을 선보였던 류승완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이번 APM에서 투자자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허진호 감독은 장백지, 장동건, 장쯔이와 함께 <위험한 관계>의 투자처를 찾는다. <위험한 관계>는 이미 여러 번 영화화 된 적 있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가 원작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한 번 영화화된 적이 있지만 한중 스타들을 등에 업고 허진호식 <위험한 관계>를 준비하고 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 및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한 박정범 감독은 전작 <무산일기>와는 사뭇 다른 톤으로 <산다>(가제)를 연출할 예정이다.
올해 APM의 특징 중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감독들의 프로젝트가 다수 선정됐다는 점이다. 특히 방글라데시의 아부 샤헤드 에몬은 작년 아시아 필름 아카데미(AFA: Asia Film Academy)에 참여해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 장학 펀드까지 지원받은 신예 감독이다. APM까지 선정되면서 아부 샤헤드 에몬 감독을 AFA에서 APM까지 이어진 성공적 케이스로 거론할 만하다. 박정범 감독 역시 아부 샤헤드 에몬과 비슷한 케이스다. 아시아 영화 아카데미와 아시아 영화 펀드 그리고 아시아 영화 마켓이 하나의 사이클처럼 움직이면서 참신한 영화와 감독을 발굴 및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이 해외 영화제 및 평단에게 좋은 결과를 얻으면서 APM 신청작은 매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2011년 APM 공식 프로젝트 선정리스트(제목/감독/국가)
27도 로프록스 | 린쳉솅 | 대만
애비게일 함 | 정이삭 | 미국, 홍콩, 중국
산다 (가제) | 박정범 | 한국
베를린 파일 (가제) | 류승완 | 한국
초콜리에타 | 가자마 시오리 | 일본
위험한 관계 | 허진호 | 중국, 한국
왜곡 | 논지 니미부트르 | 타이
도그쇼 | 랄스턴 호베르 | 필리핀
두, 주이 그리고 마 | 웡 셔우밍 | 중국
이스트 윈드, 레인 | 하라다 마사토 | 일본, 미국
유리 장신구 | 나리네 머크르트치안, 아르센 아자티안 | 아르메니아
사형수의 아침식사 | 글렌 고에이 | 싱가포르
킬러들 | 모 브라더스 (티모 타한토, 키모 스탐보엘) | 일본, 인도네시아
레이크 오거스트 | 양헝 | 중국
새남터 | 이무영 | 한국
티-도그의 전설 | 창웨인 | 대만
돌에 새긴 기억 | 샤우캇 아민 코르키 | 쿠르디스탄, 이라크
내 선조의 집 | 리테쉬 메논 | 인도
내 남자 | 구마키리 가즈요시 | 일본
사랑의 바다 | 라이 먀오쉐 | 홍콩, 중국, 한국
한번 더 | 시바지 찬드라부샨 | 인도
약속 | 김조광수 | 한국
길 (가제) | 장초치 | 대만
사트라 | 셰론 다욕 | 필리핀
진홍색 양귀비 | 피터 부시안 | 아프가니스탄, 인도, 미국
조용한 방문자 (가제) | 양영희 | 일본
노예 소녀 | 줄리아 콴 | 캐나다
사우스이스트 러브 | 아딧야 아사랏, 비묵티 자야순다라, 판당디, 이파 이스판샤, 이스티악 지코 | 싱가포르, 일본, 프랑스
모범 경찰관 이야기 | 아부 샤헤드 에몬 | 방글라데시
신은 번개처럼 내린다 (가제) | 박찬경 |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