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순수소년, 이젠 안녕
2011-10-10
글 : 이화정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마이 백 페이지> 쓰마부키 사토시

아무래도 일본영화계엔 쓰마부키 사토시를 위한 시나리오 저장고가 있는게 아닐까. 이상일 감독과 작업한 <악인>으로 부산에서 만난 지 1년 만에 어느새 신작. 끊임없는 생산이다. “그럴 리가, 간신히 한 작품 한 작품 하고 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과도 꼭 함께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인연이 됐다. 제안을 받자마자 ‘왔다!’ 하면서 잡았다.”

<마이 백 페이지>에서 사토시가 맡은 역할은 전공투 세대를 겪는 아사히신문의 초짜 기자사와다다. 급진적인 상대 우메야마(마츠야마 켄이치)처럼 행동하지 못하지만, 그에 대한 이상과 동경으로 시대를 관조하는 인물이다. “그 시대 청춘들은 지금과 온도 자체가 달랐다. 필요한 건 뭐든 고를 수 있고, 자기만 생각하는 지금 젊은이들과 달리, 그들에겐 나라를 바꾸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사와다의 눈을 통해 그런 모습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시대의 중심에 있지만, 저널리스트로서 부채의식을 가진 청년 사와다. 야마시타 감독은 회한과 쓸쓸함이 깃든 그 캐릭터에 사토시가 적역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츠야마 겐이치가 속을 알 수 없는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풍기는 배우라면, 사토시는 평범함과 순진한 마스크 속에 어떤 힘이 있는 배우”라고 말한다.

“사와다는 분명 하는 쪽보단 보는 쪽의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에게도 시대를 바꾸고 싶은 엄청난 ‘욕구’가 있었고 그게 사와다가 가진 에너지다.” 이 에너지가 담아낸 간극이 적지않다. <마이 백 페이지>의 사토시는 <워터보이즈>의 풋풋한 수영부 단원 스즈키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사랑에 빠진 순정남 츠네오와 사뭇 달라 보인다. “<악인>부터 변화가 컸다. 그전까지 내게 연기가 ‘더하기’였다면 요즘은 연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 캐릭터라면 이렇게 걸을 거야’라면 그걸 더하고,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면 다시 덧붙이는 대신 가능한 버리고자,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노력한다.” 좀더 자유롭게, 선택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다는 게 지금 그가 가진 연기에 대한 신념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있다. 아직까지 본 적 없고 경험하지 않은 걸 하려한다. 몇 해 전 하정우와 함께 한일합작영화 <보트>에 참여한 것도 그래서였다. 일본을 떠나 아시아에서 활동하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하고 싶다.”

영화제가 끝나는 대로 10월 말쯤 그에게는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신작 촬영이 잡혀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당나라에 간 일본 견당사로 출연해 한 소녀를 만나 인연을 맺는다. “작년에 이미 열흘정도 촬영하고 이번이 두 번째 촬영이다. 멜로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대본이 없어서 아직….(웃음) 나도 그녀와의 관계를 잘 모르겠다.” 벌써 2년의 작업, 얼마나 더 걸려야 영화가 완성될지 모르겠다는 그는 “한국감독, 특히 봉준호 감독과도 작업하고 싶다”며 ‘제발 불러 달라!’는 애교 섞인 부탁을 잊지 않는다. “청춘영화는 이제 그만 하려고 한다. 나도 서른이 넘었으니 사회파영화나 스릴러장르를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다행히 나이가 들수록 연기에 대한 부담은 적어졌다. 20대 때는 항상 제대로 된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서 그게 오히려 나를 부자연스럽게 한 것 같다. 물론 그때의 내 모습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내년에도 신작과 함께 만나자는 말에 대뜸 돌아오는 그의 답변. “부산이라면 언제나 오고 싶다.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내 맘대로 올 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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