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지금 만나러 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1-10-10
글 : 남민영 (객원기자)
사진 : 이동훈 (객원기자)
마스터클래스 지상중계 + 신작 <기적>에 대해 듣다

“내 인생 내 영화를 말하기엔 저의 인생과 경력이 20년 정도는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얼굴에 쑥스러움이 가득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신작 <기적>을 들고 온 그의 인생과 영화 얘기를 듣기 위해 영화의 전당 아카데미룸은 들뜬 표정의 관객들로 가득 찼다. 9일 저녁 7시 ‘My Life, My Cinema’를 주제로 펼쳐진 마스터 클래스에서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고전영화와 그에 얽힌 추억들을 꺼내놓았다. 그의 영화 이야기들을 지면에 옮긴다. 신작 <기적>에 관한 대화도 따로 나누었다. 지면 사정상 <씨네21> 김혜리 기자와 나눈 대담까지 소개하지 못하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저는 25살까지 카메라를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동세대 작가들에 비하면 데뷔가 늦은 셈이지요. 사실 저는 극장에도 자주 가지 않았습니다. 주로 어머니와 함께 TV로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그게 별로 좋은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영화를 같이 보던 어머니가 늘 “저 사람은 범인이야, 저 사람은 결국 죽지”라고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이야기 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와 같이 영화를 보는 게 싫었습니다.(웃음) 오늘 가져온 영화들이 바로 그때 어머니와 같이 보던 영화들입니다.

제가 보여드릴 첫 작품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입니다. 어렸을 적 이 영화를 TV에서 처음 봤을 때 마지막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왜 새가 여자를 습격하는지 그리고 왜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그냥 끝나는지에 대한 물음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거든요. 학교 가는 길에 새를 보면 자꾸 이 영화가 떠오르는 강렬한 체험이었죠. 영화의 풍경이 자신의 일상까지 변화시키는 첫 경험이었던 셈입니다. 그게 어린 마음에 무서웠어요.(웃음) 저는 영화가 일상의 풍경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고 알게 됐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사로운 것이 문득 떠오르는 영화를 항상 만들고 싶었는데 그 원점이 이 영화에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 영화는 <쉘부르의 우산>입니다. 누나가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을 사왔었어요. 그래서 영화보다 노래를 먼저 알게 됐습니다. 음악과 노래 제목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죠. 영화 마지막에 주제곡이 나오는데 타이밍이 참 절묘합니다. 마지막은 남자가 전쟁터에 있는 동안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역시 다른 여자와 결혼한 남자와 재회하는 장면이죠. 둘은 서로에게 짧은 안부만 묻고 헤어집니다. 마지막 장면만 보고 묻기엔 좀 그렇지만 여러분은 이게 해피엔딩으로 보이시나요? 슬프게 보인다면 무엇이 원인일까요? 슬픈 멜로디의 음악 때문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저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가정으로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서 아마도 행복하게 살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론 해피엔딩인거죠. 그래서 ‘결말은 행복해보이지만 음악은 비극적인 부분이 재밌구나’라고 생각이 듭니다. 되풀이해서 보니까 ‘왜 이렇게 연출했나’가 신경이 쓰이더군요. 일단 남자 주인공의 태도가 의미심장합니다. 남자는 옛 애인과 헤어지고 새로운 여자랑 결혼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옛 애인의 이름 프랑수아를 붙여주죠. 이름을 똑같이 지어준 것은 아직 남자가 여자를 잊지 못했다는 단적인 예 입니다. 그러나 이 남자는 문득 찾아온 옛 애인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의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부분들이 바로 ‘인생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부분에선 슬프지만 감독이 이것을 반드시 비극으로만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남자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결말이 비극인지 아닌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즉, 영화는 보는 이의 상황에 따라 영화의 메시지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죠. 인터뷰를 하다보면 ‘이 영화의 메시지가 뭡니까?’란 질문이 종종 저를 곤란하게 하는데 그것에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은 제 영화에 메시지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메시지와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다를 수 있고 제 영화를 본 관객들도 다른 의미로 영화를 받아들 일수도 있기 때문이죠. 영화에 완벽한 메시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재미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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