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소식]
영화를 위해 온몸 바칠 준비가 됐나요
2011-10-11
글 : 장영엽 (편집장)
뤽 베송 마스터클래스 지상중계

타협하지 말라, 뚜렷한 비전을 가져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카메라를 가지고 거리로 나가라. 뤽 베송의 말투는 이처럼 거침없었다. 프랑스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레옹> <택시> <제5원소> 등의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11일 오후 2시 영화의 전당 아카데미룸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30년의 세월이 녹아든 경험담을 연달아 쏟아냈다. 머리가 희끗한 해외 영화 제작자부터 앳된 목소리의 감독 지망생까지, 그의 마스터클래스를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보니 뤽 베송이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의 영화인들에게 귀감이 되는지 알겠다. 두 시간 내내 뜨거웠던 그의 특강을 모두 싣지 못하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시다시피 저는 프랑스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게 할리우드와 프랑스는 어떻게 다른지, 또 할리우드로 진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더군요.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작업하더라도 저는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영화를 만드니까요. 한국의 영화감독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기보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먼저 집중하세요. 미국적인 영화를 만드는 건 미국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적임자는 바로 여러분이고요. 저도 프랑스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더 레이디>로 아시아에서 영화를 촬영하게 됐습니다. 외국 감독들이 파리에 와서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 영화에 꼭 바게트를 넣더라고요(웃음). 그 모습을 보며 제가 다른 지역에서 영화를 만든다면 저렇게 전형적인 장면은 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레이디>도 그런 마음으로 촬영에 임한 영화입니다. 처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본 뒤,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국가의 민주주의가 피와 투쟁 속에서 태어났지만, 말로서 민주주의를 일으킨 사람은 역사를 통틀어 아웅산 수지 여사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더 레이디>의 촬영을 마치고서야 아웅산 수지 여사를 만났다는 점입니다. 여사에 대한 자료가 별로 없기에, 영화를 만드는 동안은 그녀의 삶을 최대한 진솔하게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저는 아웅산 수지 여사가 남편과 살았던 아파트에 직접 찾아갔습니다. 아파트와 주변 호수의 모습을 정밀하게 측정해 세트장에 똑같이 재현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저는 아웅산 수지 여사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제 영화의 영감이 되어주는 건 삶 그 자체입니다. 모든 것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감각을 열어두어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흡수해야 합니다. 일례로 저의 거의 모든 영화에는 제 삶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추려 해도 기념품처럼 영화의 곳곳에 튀어나오더라고요. <그랑블루>에서 소년이 오리발을 신고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그리스에서의 유년시절을 반영한 겁니다. <제5원소>에는 열여섯 살 때의 삶이 녹아있습니다. 시골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의 삶-경제, 경찰, 병원, 음식-에 대해 두서없이 400페이지를 썼거든요. 그 내용은 이후 <제5원소>의 모티프가 되었습니다.

30년 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애물에 부딪힐 때마다 제가 항상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16살 때 조감독이 “왕은 감독이 아니라 영화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건 왕에게 바쳐야 한다. 왕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그 말을 항상 머릿속에 넣고 다닙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는데도 풀리지 않는 일이란 없습니다. 연출부 제3조수로 일할 때 생판 모르는 사람을 공항에서 붙잡고 영화 소품을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옮겨달라며 사정사정한 적도 있습니다.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동기가 이처럼 강렬하다면 대부분의 경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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