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 베송과 양자경의 <더 레이디>라는 제목을 들으면 어떤 영화가 떠오르는가. 뤽 베송 스타일의 액션과 여전사 무협의 만남? 그런 오해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만 <더 레이디>는 미얀마의 민주투사 아웅산 수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뤽 베송은 ‘강철의 난(The steel orchid)’이라 불리는 미얀마 민주주의 아이콘의 삶을 충실하게 재현하는 동시에 남편인 옥스퍼드 대학 교수와의 사랑 이야기를 애절하게 스크린에 그려낸다. 혹시 뤽 베송이 이것과 비슷한 영화를 만든 적 있지 않냐고? 그렇다. <더 레이디>는 동남아시아의 현존하는 잔 다르크 이야기다.
-아웅산 수지 여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땐 단순한 관심 이상의 강렬한 동기가 필요했을텐데.
=중요한 건 가족과 조국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둘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우리 역시 언젠가는 그런 선택을 하는 날이 온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당신은 조국을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남아서 가족을 보호할 것인가. 아웅산 수지가 국가를 선택한 뒤 어떻게 버텨내는가가 흥미로워서 <더 레이디>를 만들게 됐다. 그런데 그녀 역시 끝까지 믿고 따르는 남편이 없었다면 끝까지 버티진 못했을 거다. 프랑스에는 이런 말이 있다. 위대한 사람 옆에는 훌륭한 부인이 있다고. 아웅산 수지의 경우는 성별이 반대지만.(웃음)
-가장 중요한 건 캐스팅이었을 것이다. 양자경은 액션 아이콘이고, 아웅산 수지는 민주주의 아이콘이다. 두 아이콘의 아우라가 맞부딪히는 위험은 생각해봤나.
=전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나는 스타가 아니라 배우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스타는 그저 매체들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 나는 스타와는 작업하지 않는다. 좋은 배우, 열정적인 배우와 일을 한다. 양자경이 바로 그런 배우다.
-강인한 여성에 대한 동경은 당신 영화 세계를 흐르는 키워드 중 하나다.
=글쎄. 꼭 여자 캐릭터가 아니라도 내 영화 남자들은 충분히 강렬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남자와 여자 캐릭터의 균형을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여자들에게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지는 영국에서 수십년을 살다가 모국인 미얀마로 돌아왔고, 두 장소에서 모두 일종의 이방인이다. 프랑스 감독이면서도 프랑스 영화적인 특징에서 벗어나 있는 당신의 입장과도 겹치지 않나.
=지금 프랑스 영화적인 특징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거 지나치게 매체적인 표현 아닌가? 국가적인 특징은 없다. 개별적인 작가의 특징이 있을 뿐이다. 반 고호의 <아이리스>를 떠올려봐라. 반 호고는 네덜란드 사람인데 <아이리스>는 프랑스에서 그렸고, 그 작품은 지금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있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대체 어느 나라 것인가? 결과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이리스>가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사실 뿐이다.
-영화가 부산에서 공개된 어제, 미얀마 대통령이 재소자 6359명을 사면한다고 발표했다.
=원래 재소자들의 징역형이 다 끝나갈 때 정부는 이런 식으로 사면하는 제스처를 보이곤 한다. 정말 중요한 건 영화 속에도 캐릭터로 등장하는 코미디언 자가나(Zarganar)의 석방이다. 그는 정부를 풍자하는 코미디를 하다가 65년형을 선고받았다. 자가나 같은 정치범들이 풀려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아직 미얀마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다. 아웅산 수지가 정치를 할 수 있을 때가 진정한 변화일 것이다.
-이 영화가 미얀마에서 실재로 상영되길 고대해보겠다. 그런데 한 가지, 영화가 현실 정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나.
=영화는 아니다. 다만, 영화를 본 인간들이 세상을 바꿀 수는 있다. 영화는 인간을 일깨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