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전화드렸던 철민이 친구 태식이라고 합니다.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정화씨 계신 곳으로 가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먼 걸음을. 제가 몹쓸 짓 한 것 같아 너무 죄송해요.
=아니에요. 가끔씩은 이렇게 멀리 나와서 바람도 쐬고 해야 건강에 좋아요. 얼마 만의 외출인지 전 좋기만 한걸요.
-정말 정화씨는 늘 웃는 얼굴로 주변을 단번에 밝게 만드는 신비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 만났는데도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시니 정말 영광입니다. 저도 오늘 하루 종일 안 좋은 일들만 있었는데 다 잊게 되네요.
=뭘요. 다들 그렇게 말씀해주시긴 하는데 전 제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그건 그렇고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사실 철민이 때문에 보자고 한 거예요. 예전에 철민이하고 정말 단짝이었거든요. 제가 철민이를 덤보라고 부르고 철민이는 저를 미키마우스라 부르고, 참 재밌게 놀았죠. 전에 ‘아이러브스쿨’이 한창 유행일 때 잠깐 만난 적 있는데 전부 남자 동창들만 나오기에 철민이나 저나 연락 딱 끊었었죠. 유부남, 유부녀들이 왜 그런 모임에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암튼 철민이를 통 만날 수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오늘 두분 만난다고 하길래 이렇게 꼽사리 끼었습니다.
=아 그래요? 근데 철민씨 잘생겼나요? 키는 확실히 크고 코도 좀 오뚝한 거 같은데 볼 수가 없으니 너무 궁금해요.
-완전 훈남이죠. 꽃미남은 아니고 그 키에 그 정도 얼굴이면 완전 킹카예요. 당신 남자친구는 아주 멋진 남자니까 뿌듯해하셔도 됩니다.
=하하 네, 그런데요. 철민씨한테 태식씨 같은 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랑 있을 때는 옛날 얘기 잘 안 하거든요. 친한 친구랑 같이 보자고 해도 자기는 아무도 없다고 했거든요. 전에는 좀 친해져서 처음 술 마실 때 “예전에 뭐하셨어요? 혹시 험한 일 하셨어요?” 하고 물었다가 완전 삐친 적도 있어요. 그리고 가끔씩 긴 출장을 간다는 것 정도? 그런데 일 얘기하는 거 싫어해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서 태식씨 연락받고 많이 놀랐어요.
-그렇구나. 하긴 걔가 옛날부터 말이 참 없긴 했어요. 제가 오늘 여기 나온다는 얘기도 안 했으니 나중에 여기 도착하면 깜짝 놀라긴 할 거 같네요. 아무리 그래도 불알친구인 내 얘기를 안 하다니 좀 섭섭하네요.
=그리고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하나만 여쭤봐도 돼요? 철민씨가 자기 어머니도 엄청나게 예쁘다고 했거든요. 너무 좋으신 분이었다는데 만나보고 싶어요. 이렇게 가족 얘기를 친구분께 여쭤봐서 죄송하네요.
-아 뭘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철민이 어머니 정말 예뻤죠. 배우 김지미를 닮았고요 학교 마치고 집에 가면 맛난 음식도 많이 해주셨어요. 저도 참 다시 뵙고 싶네요.
=역시 제 예상이 맞군요. 어쩐지 ‘짭새’ 냄새가 나더라니. 철민씨는 태어날 때부터 고아였고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어요. 불알친구가 있다면 얘기 안 할 사람이 아닌데, 철민씨 지금 여기 어디 있다면 어서 도망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