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르지만 올해의 한국영화를 돌아보면 성과도 많았고 한계도 존재했다. 성과라면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 같은 대감독이 여전히 한국영화계에 당당하게 존재함을 일깨워줬다는 사실이나 <무산일기>의 박정범, <파수꾼>의 윤성현, <돼지의 왕>의 연상호 같은 젊은 감독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 <도가니>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이나 <최종병기 활>이 한국 대중영화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사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줬다는 점 또한 성과에 속한다. 한계도 많았다. 대기업 시스템 아래 만들어지는 영화의 틀은 더욱 완강해지는 듯하고, (이와 연관해서) 프로듀서의 뚝심을 느낄 수 있는 영화는 손에 꼽을 만했으며, 눈에 보이는 해외에서의 성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건 스타 감독의 부재였다.
반면 2012년에는 스타 감독들이 줄줄이 영화계로 귀환한다. 이명세, 박찬욱, 김지운, 유하, 허진호, 류승완, 김대승, 최동훈, 윤제균, 김용화, 정지우, 김현석, 장윤현, 장항준, 전계수 등은 이미 확정된 ‘라인업’이다. 여기에 내년에 새 작품에 돌입할 것이 확실한 이창동, 2013년 개봉예정이긴 하지만 촬영을 시작하는 봉준호, 이자벨 위페르와의 합작을 선보일 홍상수, 그리고 <마이 웨이>로 연말께 돌아오는 강제규의 이름까지 더하고 나면 벌써 가슴이 뛸 지경이다.
이번 특집기사는 이러한 기대감을 미리 해소해보고자 마련했다. 아직 준비가 덜 됐거나 또는 촬영 중이라 너무 바빠서 인터뷰에 응하지 못한 감독들을 아쉽게 뒤로하고 이제 막 작품에 돌입하는 10명의 감독을 만나 새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찬욱의 <스토커>나 봉준호의 <설국열차> 같은 할리우드 프로젝트부터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인 무속을 공포영화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박찬경의 <신은 번개처럼 내린다>(가제)까지, 박정우의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연가시>부터 김조광수의 퀴어장편영화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까지 폭도 넓고 색깔도 다채롭다.
류승완 감독의 간첩 이야기 <베를린 파일>도 궁금하다. MBC 다큐 <간첩>에서 주진우 기자와 ‘덤 앤 더머’ 수준의 개그를 선보였던 그가 이 소재를 어떻게 진지한 스파이영화로 탈바꿈시킬지 말이다. 뭔가 남다른 시선을 갖고 있는 신정원 감독의 ‘슈퍼히어로물’ <점쟁이들>도, <불신지옥>으로 오금 저리는 공포를 느끼게 해준 이용주 감독의 멜로영화 <건축학개론>도, 모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로 배꼽 빠지게 했던 정병길 감독의 스릴러 <내가 살인범이다>도 궁금하다. 아주 궁금해 미치겠다.
4월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2월19일 18대 대통령 선거 그리고 12월21일의 ‘세계종말’까지 가뜩이나 빡빡한 내년, 이들 영화까지 챙겨보려면 정말 바쁠 것 같다. 매우 즐겁게 바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