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브래드 피트는 이렇게 불렸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푸른 눈, 거친 수염, 휘날리는 금발, 그리고 탐스러운 엉덩이? 1990년대의 브래드 피트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하다는 로버트 패틴슨과 테일러 로트너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카우보이 모자를 벗으며 긴 금발 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기던 <가을의 전설>(1995)의 반항아 트리스탄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러나 그도 흐르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다. 이제 브래드 피트도 완연한 아저씨다. 1963년생이니 이제 곧 쉰살을 앞두고 있다. 중년의 브래드 피트는 <트리 오브 라이프>와 <머니볼>에서 당연하게도 아버지로 등장한다. 그는 더이상 <피플>에서 선정한 섹시남이 아니다. <스내치>(2000), <파이트 클럽>(1999)에서 보여줬던 탄탄한 근육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대신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건 중견 배우의 우아한 존재감이다. <오션스> 시리즈를 함께한 조지 클루니만큼이나 브래드 피트는 기품있게 늙고 있다. 물론 여전히 잘생긴 건 맞다.
배우에서 제작자로
브래드 피트의 필모그래피를 줄줄이 나열하는 것보다는 그가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의 이름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 이 방법이 지난 10년간의 브래드 피트를 이해하기에 빠를 것 같다. 스티븐 소더버그, 데이비드 핀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코언 형제, 테렌스 맬릭, 쿠엔틴 타란티노, 앤드루 도미니크, 베넷 밀러. 여기에 추가할 이름으로는 조지 밀러, 대런 애로노프스키 등이 있다. 이 감독들은 모두 초대형 액션 블록버스터가 핵심인 할리우드의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이름들이다. 여전히 한쪽에서는 브래드 피트의 이혼과 안젤리나 졸리와의 만남, 지구상 최고의 유전자 조합이라는 브란젤리나의 아이들에 관심을 기울일 때 정작 브래드 피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름을 영화사에 더 자랑스럽게 남길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브래드 피트가 내린 결론은 섹시남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것이었다. 외모 대신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브래드 피트는 이를 악물고 연기에 몰입했다. 미국 남부 미주리주 출신인 그가 새롭게 습득한 영어를 떠올려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가이 리치 감독의 <스내치>다. 브래드 피트는 도무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아이리시 집시의 영어를 구사했다. 이는 IRA의 조직원으로 출연한 <데블스 오운>(1997)에서 갈고닦은 아이리시 영어의 확장판이라 부를 만하다. 그뿐인가, 비록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지만 장 자크 아노 감독의 <티벳에서의 7년>(1997)에서 오스트리아 등산가 하인리히 하러를 연기하기 위해 브래드 피트는 독일 억양을 익혔다. 암벽등반 기술도 수개월 동안 익혔다. <파이트 클럽>을 위해 앞니를 빼고 다시 심은 에피소드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쯤 되면 <트로이>(2004)에 출연을 결정하고 6개월간 검술을 연마했다는 얘기가 단순한 홍보 문구로 보이지 않는다. 브래드 피트는 좋은 작품을 고르는 안목과 함께 그것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려는 욕심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해냈다.
섹시남에서 배우로 거듭나며 브래드 피트는 다음 단계를 고민했다. 그 결과물이 브래드 피트를 얘기할 때 빼먹지 말아야 할 Plan B 엔터테인먼트(이하 Plan B)다. 브래드 피트는 전 부인인 제니퍼 애니스톤과 파라마운트의 CEO 브래드 그레이와 함께 Plan B를 세웠으나 둘은 손을 뗐다. 브래드 피트가 혼자 꾸려나가는 Plan B는 <트로이>를 시작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디파티드>(2006),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7), <킥애스: 영웅의 탄생>(2010), <트리 오브 라이프> 등을 제작했다. 지금은 맥스 브룩스의 포스트 묵시록적 공포소설을 원작으로 한 마크 포스터 감독의 <세계대전 Z>를 촬영 중이다. 배우라는 이름 옆에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을 추가한 브래드 피트는 Plan B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작품들 위주로 제작할 생각이다.” Plan B는 ‘차선’이라는 그 이름처럼 “영상화가 다소 어렵다거나 인상적인 실력을 지닌 신인감독이 맡아 제작하는 작품들”을 제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여전히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면서도 좋은 작품에 투자하며 출연하는 브래드 피트는 할리우드의 별종이다.
2002년 미국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에슬레틱스의 기적 같은 20연승을 다룬 <머니볼>에서 브래드 피트가 맡은 빌리 빈 단장도 결국 별종이다. <머니볼>의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뉴욕 양키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5 대 3으로 패하는 에슬레틱스를 보여준 뒤 화면에 “$114,457,768 vs. $39,722,689”라는 자막이 떠오른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빈곤한 구단의 단장으로서 빌리 빈은 제이슨 지암비, 조니 데이먼 등을 팔고 남은 돈으로 부상 선수, 퇴물들만 불러모아 기적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출루율이라는 객관적인 데이터만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의 부단장 피터 브랜드(조나 힐)의 역할이 컸지만 만약 빌리 빈이 그를 믿고 탱크처럼 밀고 나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작전이었다. 이런 별종을 다룬 이야기에 브래드 피트가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들이 의문을 제시하고 관습에 대항해 싸우는 내용을 담은 마이클 루이스의 원작에 빠져들었다.” 브래드 피트의 말처럼 <머니볼>은 당연시해온 미국 야구계의 오랜 관습을 뒤엎는다. 어쩌면 브래드 피트 자신도 할리우드의 관습에 대항하고 있는 게 아닐까.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브래드 피트는 1970년대 제작된 영화의 DVD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1970년대 미국 고전 작가주의영화의 팬이다.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 프랜시스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1979), 앨런 J. 파큘라의 <대통령의 사람들> 등이 그의 컬렉션에 속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으며 해가 갈수록 가치를 더해가는 명작들이다. 결정적으로 일반적인 할리우드의 법칙들을 따르지 않는 영화 천재들의 작품이다. 브래드 피트는 늘 예상치 못한 작품을 선택해왔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배역에 대해 심사숙고한다. 그리고 나보다 현명한 감독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최종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감독이다. 나의 성장과정에서 함께하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영화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 영화들을 본다. 그 영화들은 우수하고 영속성이 있다. 나는 그러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할리우드 속에 있지만 할리우드의 자장 바깥에 있었기 때문일까. 브래드 피트는 아직 오스카 트로피가 없다. <12 몽키즈>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로 두 차례 후보에 올랐을 뿐이다. 대신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로 2007년 베니스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과 같은 소규모 영화는 내가 참여한 영화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 중 하나다.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커다란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의 아주 좋은 예이다.” 오스카가 아닌 황금종려상에 더 가까이 서 있는 브래드 피트의 행보는 진행형이다. 아직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다가오지 않았다. 캐리 그랜트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8)를 촬영할 때 그는 55살이었다. 훗날 브래드 피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영화를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는 영화사에 남을 배우로 진화하는 마지막 단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