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변화의 시기가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 광고에서 영화 연출로 직업을 바꾸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한 마리 금붕어 때문이었다. 그의 93년작 <금붕어의 일생>은 엉뚱하면서도 시니컬하고, 주인공의 일생을 영화에 압축해 담는 ‘이누도 월드’의 모든 요소를 갖춘 단편영화다. 이 영화로 93년 기린컨템포러리어워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누도는 상금으로 이후 일본감독협회 신인상을 수상하는 <두 사람이 말한다>의 제작비를 마련했다. 이누도 잇신 본인에게는 기념비적인 영화가 된 <금붕어의 일생>이 올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아시아나영화제 상영작의 감독이자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마스터클래스의 강연자로 한국에서의 바쁜 일정을 소화한 이누도 잇신 감독을 만났다.
-<금붕어의 일생>은 당신이 광고감독에서 영화감독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본 소감이 어떤가.
=아시아나영화제에서 영화를 보진 않았고,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과 본 적이 있다. 재밌더라. 2년 동안 정말 공들여서 만들었던 기억도 나고.
-왜 하필 ‘금붕어’의 일생인가.
=예전부터 영화를 만든다면 누군가의 일생을 그리고 싶었다.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생물의 일생 말이다. 생각해보니 사람의 일생을 다루려면 제작비가 많이 들 것 같더라. 그래서 동물을 주인공으로 정해야겠다 생각하고 ‘무엇의 일생’ 중 ‘무엇’에 다양한 동물 이름을 대입해봤다. 개, 고양이, 돼지…. 금붕어가 가장 어감적으로 와닿더라. (웃음) 하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금붕어야말로 어항에 갇혀 외부의 힘에 저항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생물이 아닌가. 그렇게 존재감없이 일생을 마치는 생물에게도 행복한 순간이 있다는 점을 나타내고 싶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영화를 90년대에, 그것도 저예산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90년대 초 광고를 찍을 때 디지털 편집기를 처음으로 사용해봤다. 그 당시 디지털 편집기, PC의 등장과 함께 ‘데스크톱 영화’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개개인이 셀애니메이션과 사진, 영상 등을 결합해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거다. 앞으로 미래의 젊은 감독들은 이처럼 PC나 편집기를 사용해 영화를 제작하겠구나 싶어 도전하는 의미에서 편집기로 <금붕어의 일생>을 만들었다.
-아시아나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한다. 단편영화 심사위원 경험이 있나.
=지난해부터 갑자기 단편영화제 심사위원 제안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한국에 오기 전 도쿄 숏쇼츠단편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아시아나영화제 경쟁부문 영화까지 합치면 약 140편의 단편영화를 본 셈인데, 흥미로운 점은 단편을 출품한 대부분의 감독이 젊은 사람들인데도 자기 세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열악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 노인들, 특히 ‘아줌마’ 얘기가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드라마를 이끌어내기가 수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러한 공통점이 이상하면서도 신기했다.
-단편영화 심사기준도 그렇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금발의 초원> <메종 드 히미코> 같은 당신의 전작을 떠올리면 범상치 않고 엉뚱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뭔가.
=우선 본능적으로 정형화된 무엇보다는 이상하고 바보 같은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영화 작업 자체가 이상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스탭으로 모여 두 시간 만에 다섯명이 죽어나가는 <제로 포커스> 같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 굉장히 심각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방금 떨어뜨린 음식에 계속 신경을 쓰게 되는 게 사람이다. 심각한 대화만 남기고 떨어진 음식에 신경 쓰는 모습을 편집하는 영화가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가 아닐까. 늘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차기작은 와다 료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노보우의 성>이다. <제로 포커스>에 이어 두 번째 시대극이다.
=노보우라는 얼간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맞서 성을 지켜낸다는 이야기다. 500여년 전,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무라이들의 모습에 매력을 느껴 영화로 만들게 됐다. 사무라이가 주인공이지만 70년대 아메리칸 뉴 시네마 서부극들을 참조했다.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알고 지낸 <일본침몰>의 히구치 신지 감독과 공동 연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