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의 ‘1번 배우’ 소준문이 감독으로 돌아왔다. 한 게이 커플이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비디오카메라로 서로의 모습을 기록하는 내용의 퀴어영화 <REC>를 들고서다. 이 영화는 욕실에서 성기를 고스란히 노출한 게이 커플이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는 ‘파격’으로 시작해 이별을 마주한 그들이 진짜 속마음을 카메라 앞에 토해내는 ‘신파’로 끝난다.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동성애자 연인으로부터 육체를 넘어서는 감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소준문 감독이 <REC>를 통해 ‘일반’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종로의 기적> 이후 어떻게 지냈나.
=이혁상 감독이 “<종로의 기적>은 <REC>의 긴 예고편이었다”고 말한다. 그 정도로 <종로의 기적>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다큐에 출연할 당시 <REC>를 찍고 있었는데, 우리 영화가 노출신도 많고 과연 한국사회에서 용납될 수 있을까 싶어 자체 검열하는 심정으로 개봉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종로의 기적>이 개봉한 이후 사회적으로 성소수자 문화와 퀴어영화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에 탄력을 받아 나도 <REC> 개봉을 준비하게 됐다. <종로의 기적>은 <REC>의 자매 같은 작품이다. (웃음)
-영화를 보니 왜 개봉을 고민했는지 알겠더라. 첫 장면부터 노출 수위가 세던데.
=<REC>는 노출이 꼭 필요한 영화라고 봤다. 나는 동성애자를 혐오스럽게 보는 시선의 가장 큰 이유가 ‘섹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관계가 굉장히 동물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들이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모습을 직접적으로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는 데에서 온다고 봤다. <REC>에서 파격적인 노출 장면, 섹스신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동성애자들의 사랑의 몸짓이자 표현이다. 일반 관객에게 그런 모습도 사랑의 일부분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를 얻고 싶은 마음에서 만들었다.
-배우들 캐스팅하기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이게 재밌는 부분인데, 의외로 오디션에 지원한 배우들이 꽤 많았다. 한국에서 퀴어영화가 발전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한 기분이었다. 내가 <동백꽃> <올드 랭 사인>을 찍을 때만 해도 시나리오를 보내면 “동성애요? 안 하겠다”라고 딱 잘라 거절하는 배우들이 많았다. 그런데 2009년 <쌍화점>이 개봉하고 김남길, 이영훈, 이제훈씨 등 퀴어영화를 거쳐 상업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배우들이 늘어나면서 퀴어영화에 출연하는 게 배우들에게 일종의 기회처럼 다가오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스팅은 쉽지 않았다. 배우들에게는 노출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보니 시나리오를 주기도 전에 “다 벗어야 한다. 그래도 괜찮냐”고 물어본 뒤 가능하다고 대답한 배우들에게만 시나리오를 줬다.
-게이 섹스신이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커뮤니티 내의 활동명이나 성향을 밝히는 장면이 등장하는 등 굉장히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게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스탭과 배우들은 수월하게 받아들이던가.
=준비과정에서 매일매일 숙제를 내줬다. 게이 포털 사이트에 가입해 자유게시판에 있는 재미있는 글을 뽑아와라, 갤러리 코너에서 사진 몇장을 뽑아와라, 게이들이 자주 가는 클럽 위치를 알아오라는 등의 과제였다. 게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게이들의 문화에 무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스탭들이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며 거부했지만 점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나중에 한 스탭이 그러더라. “제가 감독님 영화를 두세편 같이 했지만 이제야 뭔가를 깨달은 느낌이다”라고. 그렇게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작업은 나도 영화를 만들면서 처음 했던 일이다. 영화의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소통의 기회를 넓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좋다.
-정사를 마치고 영준이 준석의 몸 위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나는 눈물의 힘을 믿는다. 어떤 강력한 말이나 주장보다도 한 방울의 눈물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준이 눈물을 흘린 건 이별을 앞두고 더이상 애인의 몸과 함께했던 순간을 느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게이들의 성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데에서도 굉장히 많은 감정이 불거져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차기작은 <터질 거야>라는 작품이라고 들었다.
=단편이고, 커밍아웃한 소년과 아버지의 이야기다. 이미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예전에 촬영을 마친 장편영화 <로드 투 이태원>도 다듬어서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다. 성소수자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려나가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