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영각]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정부의 움직임이 문제”
2011-11-25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사진 : 오계옥
서울독립영화제 조영각 집행위원장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틴다고, 지금 서울독립영화제가 딱 그렇다. 서울시와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의 지원금이 끊긴 지도 오래인데다 상영관도 12월8일 개막을 한달 앞두고서야 겨우 확정했다. 골치 아픈 일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도 이 남자, 털털하게 웃어 보인다. 올해로 만 10년째 영화제를 지키고 있는 조영각 집행위원장이다. “예년보다 밤새우는 날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있어요”라고 심심하게 말하는 그에게는 확실히 경직된 직함보다 낙천적인 독립영화운동가라는 호칭이 더 어울렸다. 다들 불가능하리라 예상했던 저예산 독립애니메이션 <돼지의 왕>도 끝내 완성시킨 그였다. 시장이 바뀌고 대선이 다가와도 여전히 현실의 그늘은 짙기에 입꼬리에 씁쓸함이 걸려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소박한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돼지의 왕>의 관객은 얼마나 들었나.
=오늘 화요일까지 9천명 정도 들었다. 모레면 1만명 넘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짧지만 종석 아빠로 목소리 출연도 했던데.
=욕 많이 먹었다. 목소리 알아듣는 감독들이 내가 영화를 망쳤다고 그러더라. (웃음)

-제작은 어떻게 마음먹게 됐나.
=2006년에 연상호 감독이 처음 <돼지의 왕> 시나리오를 보여줘서 영화사들에 돌렸는데 제대로 투자를 못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에 연상호 감독이 내가 제작위원으로 있는 상상마당 제작지원에 <돼지의 왕>을 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심사는 1억원 내외의 예산과 제작기한에 맞출 수 있는가를 제일 중요하게 보는데 연 감독이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기회로 여겼던 모양이다. 내가 프로듀서를 맡는 조건으로 제작지원이 통과됐다.

-힘든 점은 없었나.
=연상호 감독이 미리 준비를 많이 해놓은 상태였다. 초반 20분 정도는 거의 다 그려놨더라. 개인적으로는 몇몇 부분을 다시 그렸으면 했는데, 더 에너지를 쏟아야 할 뒷부분에서 힘이 빠질 수 있으니까 연상호 감독이 계속 조금씩만 고치면서 버티더라. (웃음) 그래도 드라마가 세니까 자신감이 있었다.

-요즘은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준비로 정신없겠다.
=인디포럼 때부터 독립영화제만 15년째 하고 있는데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다. (웃음) 11월 초까지 돈도 없고, 극장도 없었다. 올해도 아무런 공적지원을 못 받았으니까. 그동안 쌓은 노하우, 경험있는 스탭들, 기본적인 매뉴얼로 버티고 있다.

-상영관도 11월에야 확정했는데.
=영화제를 할 때는 극장부터 확정지어야 다음 일을 진행할 수 있는데 많이 늦었다. 사실 8월에 CGV와 용산 2개관에 개·폐막식까지 지원받는 조건으로 얘기가 오갔다. 하지만 민간독립영화전용관(이하 전용관)이 지어지고 있으니까 CGV에 양해를 구하고 계약을 접은 거다. 근데 11월이 돼도 전용관쪽과 아트레온 극장쪽 사이에 계약 완료가 안됐고, 전용관은 1개관이니까 다른 관을 하나 더 대관해야 하는 문제도 생겼다. 우리가 직접 아트레온과 만나보려고도 했지만 그쪽은 그쪽대로 계약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만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거다. 11월 들어 부랴부랴 다시 CGV에 가능한 극장을 알아봐달라고 했고, 압구정으로 확정받았다.

-전용관과는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됐나.
=순조롭게 해결됐다. 전용관 개관시기와 서독제 개막시기가 겹친 정도가 문제였는데 잘 조율해서 서독제 끝나면 개관행사를 열기로 했다. 관객이 거의 비슷하니까.

-강남에서는 처음이지 않나.
=사실 전에도 CGV로부터 압구정을 많이 추천받았지만 결국에는 상암이나 용산으로 정했었다. 하지만 12월 성수기에, 한달 남겨놓은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사실 심리적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종로에서 3호선으로 20분도 안 걸린다. 새로운 관객과 만나기에도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서독제를 계속 멀티플렉스에서 여는 것도 비슷한 의도인가.
=전술적으로 CGV나 롯데 멀티플렉스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도 자꾸 상업영화 관객과 만나야 관객층을 넓힐 수 있다.

-전용관 후원금 모금이 예상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
=의지만으로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목표액이 4억원이니까 개인이나 영화단체로부터 100만원, 200만원씩 후원받아서 모으기는 쉽지 않은 금액이다. 주변에 후원을 요청할 만한 사람들 리스트를 뽑아보면 다 돈 없는 사람들이다. (웃음) 결국 우리끼리 돌려막기가 된다. 내가 인디포럼 후원하고 인디포럼이 우리 영화제 후원하고. 안철수를 알아놨으면 그 기부금 1%만 받아도 전용관 세개는 만들었을 텐데. (웃음)

-민간후원 비율을 높인다고 정체성 유지, 안정적인 운영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공적지원금과는 성격차가 있는데.
=정부지원을 안 받겠다는 말은 아니다. 정부지원은 계속 요청하되 그 비율이 50%를 넘기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동안은 60∼70%로 너무 높았기 때문에 정부지원이 빠지면 바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균형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정부지원 대 민간후원 대 극장수입이 3:3:3 비율이면 가장 좋다. 어느 한쪽이 빠져도 나머지 70%로 버틸 수 있는 힘이 되니까. 서독제도 전체 예산이 3억원인데 2억원이 지원금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CGV, 예스24 등 민간기업과 왕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내년에도 이렇게 하라면 자신없다. (웃음)

-서독제 후원모임인 인디당은 잘 운영되고 있나.
=올해 일이 많아서 모집에 힘을 못 쏟았다. 아직 회원이 90명 정돈데 이번 영화제를 기점으로 더 모을 생각이다. 당원의 폭을 넓혀야지. 독립영화를 잘 몰랐던 분들도 우리를 통해서 독립영화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좋겠고.

-독립영화를 알릴 필요를 언제 절박하게 느끼나.
=<돼지의 왕> 관객이 4천명 들었다고 하면 일반 관객은 ‘쫄딱 망한 영화’, ‘자위용 영화’라고 말한다. <조금만 더 가까이> 개봉 때도 ‘윤계상 굴욕’이란 기사가 떴었다. 윤계상이 출연했는데도 1만명밖에 안 들었다는 거다. 독립영화의 구조와 환경이 어떤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 아니겠나. 돈으로 따진 가치보다 사회문화적 의미를 공유하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지금껏 독립영화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다져왔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그런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자위용 영화’라는 말에 상처받지는 않았나.
=연상호 감독은 본인도 ‘오덕질’을 했던 친구라 비교적 상처를 덜 받더라. (웃음) 그래도 개봉한 주에는 댓글에 상처받았다고 전화 왔었다.

-제작자로서는 마음이 어땠나.
=<돼지의 왕>은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관객이 많이 든 영화다. (웃음) 비록 돈은 못 벌겠지만 1억5천만원짜리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려서 이 정도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것만으로 내겐 큰 의미가 있다.

-정부의 인식 변화도 요원하겠다.
=현 정권이 영화계나 문화계는 지원을 해줘도 자기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웃음) 그러니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을 쏟겠나.

-영화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정부의 문제점은 뭔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 올해 영진위나 문광부에 지원금 요청을 했을 때도 상영작부터 물어보더라. 4대강 관련 영화가 있는지, 직간접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가 있는지,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있는지 보는 거지. 그러면 영화제쪽에서도 지원을 받으려고 특정 영화들을 틀지 말아야 하나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반기 이후로는 아예 안 만났다. 문화적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영화제가 어떤 영화를 상영하든 영화제 자체를 지원해야지.

-사회적 분위기가 이번 서독제에서는 어떤 경향으로 드러나고 있나.
=현실에 카메라를 들이대기가 어려워서인지 사라지는 공간이나 기억에 관한 영화들이 많다. 70년대 후반생들과 80년대 초반생들이 신기할 정도로 공통되게 10대 후반의 상처, 추억, 흔적을 다루고 있다. <돼지의 왕>이나 <파수꾼>도 학창 시절로 돌아간 얘기잖나.

-올해는 지난해보다 화제작이 적다는 분위기다.
=동의할 수 없다. 지난해에는 비교적 웰메이드 독립영화였던 <파수꾼>이나 <무산일기> <혜화,동>같은 작품들이 있었다면, 올해는 정재훈 감독의 <환호성>이나 김동명 감독의 <피로>처럼 보다 거칠고 비타협적인 영화, 미시적인 문제를 통해 사회 전체를 비판하는 영화들이 많다. 오멸 감독의 <이어도>도 대사 하나없는 흑백 장면인데 아름다우면서도 메시지가 확실하다. 작가성이 뛰어난 영화들인데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독립영화들도 일정 수의 관객과 만나게 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올해로 집행위원장 10년째다.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만들어갈 생각인가.
=이제까지 겨우 현상 유지만 해온 것 같아 새로운 변화의 방향을 고민 중이다. 독립영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만큼 섹션이나 경쟁부문도 다변화해야겠고, 제작에 참여하는 스탭들이 자기 전문분야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도 찾으려 한다.

-제작자로도 뛰려면 더 바빠지겠다.
=스스로도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웃음) 영화제나 영화 제작이나 간단한 일이 아닌데 어떻게 균형을 맞춰서 그 성과들이 독립영화계에 모일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요즘 내 고민이다. 현재는 <타이거즈의 눈물>라는 야구다큐멘터리와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를 준비 중이다.

-쉴 때는 뭐하나.
=야구한다. 독립영화인야구단을 만들었다. 2주에 한번씩 모인다.

-포지션이 뭔가.
=투수다. 공은 빠른데 제구가 안되니까 오히려 잘 못 맞히더라. 상대팀은 답답하지. 우리가 저 공을 왜 못 칠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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