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DVD] 라이언 고슬링의 또 다른 변신
2011-12-30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Crazy, Stupid, Love (2011)

감독 존 레쿠아, 글렌 피카라
상영시간 118분
화면포맷 2.40: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자막 영어 / 한글 자막
출시사 워너
화질 ★★★ / 음질 ★★★☆ / 부록 ★☆

라이언 고슬링에게 2011년은 연기의 이정표를 세운 해다. (초기작 <빌리버>를 제외하면)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까지 평범하고 착한 남자 이상을 보여주지 못한 그는 올해 연거푸 나온 세편의 영화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고슬링은 <디 아워스>에서 니콜 키드먼이 특수분장을 빌려 지은 표정 연기를 <드라이브>에서 맨 얼굴로 해냈다. 야수의 본능을 감춘 수줍은 표정을 보다 저런 잠재력이 어디 숨어 있었는지 궁금했다.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에서는 아예 딴 인물로 분해 놀라움을 더했다. 고슬링은 전갈 점퍼 아래로 서툰 인간관계를 묻어둔 채 사는 인물과 화려한 언변과 아찔한 육체를 과시하며 여자를 유혹하는 인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뿐인가, (한국에서 아직 공개되진 않았으나)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디 아이즈 오브 마치>에선 또 다른 인물을 연기해 호평을 들었다. 막 서른을 넘긴 배우는 두 번째 시작점 위에 서 있다.

한국에서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는 홈비디오로 직행했다. 본토의 흥행 성공과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감안하면 어이없는 일이다.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는 마흔 중반의 부부와 주변 사람들에게 벌어진 사랑 소동을 다룬다. 레스토랑의 탁자 밑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발들을 비추던 카메라가 운동화와 하이힐을 신은 남녀 앞에 멈추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에밀리가 “이혼하고 싶다”고 고백하자 칼은 별난 일인 양 눈을 크게 뜬다. 당황한 그는 집을 바로 떠나겠다고 답했고, 부부의 25년 결혼생활은 파경을 맞는다. 슬픔을 달래려 찾은 바에서 매력 넘치는 남자 제이콥을 만난 뒤로 칼은 낯선 생활을 맛본다. ‘뉴밸런스’ 신발과 ‘갭’ 청바지 차림의 촌스럽던 중년 남자는 어느덧 명품을 걸치고 복근을 뽐내는 계집애 같은 남자가 판치는 쾌락의 시장에 적응한다.

이후 이야기는 예상한 대로인지 모른다. 결국 칼과 제이콥이 정신을 차려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는 흔한 로맨틱코미디와 급이 다르다. 달콤한 대사나 말랑한 설정 따위는 없다. 칼은 아들 로비의 영어 선생과 잠자리를 했고, 에밀리는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났고, 제이콥은 순진한 예비 변호사 해나의 색다른 매력에 빠지고, 이웃에 사는 베이비시터인 제시카는 칼을 짝사랑하고, 로비는 연상의 제시카를 솔메이트로 여긴다. 이들의 얽히고설킨 사랑이 빚는 소극은 영화의 즐거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존 레쿠아와 글렌 피카라는 전작 <필립 모리스>의 사랑 이야기를 보편적인 수준으로 넓히면서 동시에 사랑이란 괴물의 얼굴에 깊이를 입힌다. 인터뷰에서 레쿠아는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정신적으로 병든다는 게 어떤건지 알 거다. 사랑으로 인한 정신이상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삶을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공동으로 각본 작업을 해온 두 사람은 상업성에 맞춘 달짝지근한 코미디가 아닌 사실적이고 진실한 사랑 이야기를 장르영화에 담았다. 그들은 ‘로맨틱코미디’보다 ‘감정적인 코미디’란 장르명을 선호한다(그러니까 원 제목의 콤마는 세 감정 사이의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 <크레이지 스튜피드 러브>는 어떤 사랑도 소중하며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작품이다. 그 믿음이 너무 확고하기에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게 하며, 그들의 사랑이 지닌 가능성을 눈으로 확인했기에 다시금 우리의 사랑을 믿게 하는 작품이다. DVD는 부록으로 별도의 엔딩을 포함한 삭제장면(12분)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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