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석훈] 두 얼굴의 감독
2012-01-20
글 : 김성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댄싱퀸>으로 5년만에 복귀한 이석훈 감독

“모범적인 외모와 달리 가지고 오는 시나리오는 정말 골때린다.” 이석훈 감독의 전작 <방과후 옥상> <두 얼굴의 여친>을 함께한 스탭에게 그가 어떤 감독이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온 이석훈 감독을 보니 확실히 외모는 모범생처럼 보였다. 이 얘기를 들은 그는 웃으면서 말한다. “학교를 졸업한 뒤 스크립터로 현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오전 9시에 편집실에 출근해 순서편집하고 오후 5시에 퇴근했다. 규칙적인 패턴으로 일을 하다보니 ‘공무원’, ‘법대생’, 그런 별명이 많이 붙었다.” 영화는 감독을 닮는다더니 <댄싱퀸> 역시 모범적인 코미디영화다. 서울시장이 되려는 남편 정민(황정민)과 남편 몰래 아이돌그룹 데뷔를 앞두고 가수와 서울시장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내 정화(엄정화), 부부의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 그리고 춤과 음악과 함께 담아낸 작품이다. <두 얼굴의 여친> 이후 5년 만에 충무로에 복귀한 ‘모범생’ 이석훈 감독의 사연을 들어보자.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항상 술자리 마지막까지 안색 하나 안 변하고 남아 있었던 걸로 유명하더라.
=주량이 센 건 아니고. 그러다가 확 취하는 거지. 학교 다닐 때 1년 365일 중 360일은 술 마셨다. (웃음)

-언론 시사가 열린 날에도 술을 많이 마셨다고. 자신감이 생겼나보다.
=왔다갔다하더라. 촬영 도중, 본편 편집 때 모니터 시사를 여러 번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잘 안 웃더라. 그런데 모니터 점수는 또 잘 나오고. 이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는데 모니터 시사를 많이 해본 분들이 ‘원래 모니터 심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잘 안 웃는다’고 하더라. 그래도 언론 시사와 일반 시사 반응이 좋아 다행이다.

-<댄싱퀸>은 <해운대>가 끝난 뒤 윤제균 감독이 엄정화를 염두에 둔 아이템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계기로 제작사인 JK필름으로부터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게 됐나.
=아마 그게 맞을 거다. 과거에 끼가 넘쳤던 며느리가 도저히 넘치는 끼를 버릴 수 없어 남편 몰래 다시 꿈을 가지는 이야기가 초기의 아이템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아이템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예상 가능한 이야기잖나. 나름대로 변화를 주고 싶었다. 이 설정에 ‘평범한 사람이 우연한 어떤 계기로 도전을 하는 이야기’가 더해지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게 로또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기회나 도전이 점점 찾아오기 힘든 세상이니까. 관객도 그런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지 않을까 싶어 2주 정도 시놉시스를 써서 JK필름에 보여줬다. 지지난해 11월이었는데, 그게 지금의 두 부부 이야기다. 회사도 ‘기존의 방향과 달라 재미있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때부터 진행이 빨라졌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록키>를 염두에 뒀다고 하던데.
=잘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평범한 남자가 주변 사람의 권유로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정민 캐릭터가 록키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떤 분이 편집본을 보고 <록키>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고 하더라.

-극중 정민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할 때 시장을 지나는 장면은 <록키>에서 주제곡이 흘러나오면서 록키가 섀도복싱을 하며 시장을 도는 장면이 떠오르더라.
=오마주를 의도한 건 아니고. 그 장면 찍을 때 정민이 시장의 많은 사람과 교감하며 살고 있다는 느낌 정도만 주고 싶었다. <록키>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말아톤>을 비롯해 스포츠영화가 그런 스토리가 많잖아.

-황정민과 엄정화의 역할이 절대적인 영화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두 배우를 염두에 뒀다고.
=처음부터 황정민과 엄정화가 캐스팅되면 좋겠다는 얘기가 회사에서 있었다. JK필름이 제작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커플로 출연한 두 배우의 코미디가 반응이 좋았다. 여러 배우가 한꺼번에 나오는 영화라 두 배우의 비중이 작았는데, 이번에 두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엄정화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부터 책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고. 그래서 처음 글을 쓸 때 캐릭터의 이름을 두 배우의 실명으로 사용했다. 캐릭터의 뉘앙스가 두 배우와 잘 맞기도 했고.

-배우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캐릭터의 이름으로 최종 결정한 이유는 뭔가. 배우는 자신의 실명으로 연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텐데.
=출연이 결정되면서 배우들을 자주 만나 캐릭터 회의도 하면서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수정했는데, 이미 자신의 이름이 너무 익숙해졌다. 본명으로 연기한다는 건 정말 조심스러운 일이잖나. 쉽게 가려고 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고. 크랭크인 며칠 전까지 수십개의 이름을 두고 고민했지만 답이 안 나왔다. 고민 끝에 본명으로 연기하는 게 새로운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었고, 배우 역시 ‘어떡하지’ 고민하다가 ‘왜 안돼’라며 동의했다. 되돌아보면 극중 캐릭터와 두 배우의 실제 모습이 유사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

-두 배우가 경험이 많은 덕에 연기와 일상을 묘하게 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
=확실히 두 배우는 연기를 잘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 황정민은 감독에게 시간을 많이 준다. 지방 촬영의 경우, 촬영일보다 일찍 내려와서 함께 술을 한잔 한다. 촬영 일찍 끝나는 날에는 또 술을 먹는다. 그날 찍은 장면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찍을 장면은 어떻게 찍을 건지도 의견을 나눈다. 그때마다 숙소에 들어가면 배우와 이야기한 것들을 시나리오에 적는다. 그러고는 배우한테 어떤지 꼭 물어본다. 배우가 동의하면 수정된 시나리오로 찍는다. 엄정화는 몸이 불편한데도 술자리에 항상 따라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과정이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노래와 연기를 모두 소화하는 엄정화가 인상적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댄싱퀸>은 ‘엄정화의 영화’라고 부를 만하다.
=엄정화가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절대적이었다. 촬영 때 엄정화가 몸이 안 좋았다. 몸에 무리가 갈까봐 대역도 준비하고. 그런데 대역이 아무리 춤을 잘 춰도, 그 그림을 영화에 쓸 수 없겠더라. 엄정화가 직접 춤을 춘 느낌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춤을 잘 추고, 못 추고의 문제가 아니라 카리스마라고 해야 할까. 영화라는 게 돈을 많이 들여서 좋은 배우를 쓰고, 세트를 만들면서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거잖나. 아무리 연기라도 아침부터 춤을 추기가 쉽지 않은데, 엄정화가 춤추고 노래하니까 모든 게 자연스러워지더라. 보조출연자들도 신나게 춤추고.

-정치인 정민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연설 장면은 민주당 경선 당시 권양숙 여사의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공격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참고했다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을 다시 찾아보진 않았다. 단, 정민의 연설이 그 느낌이면 좋지 않을까 했다. 어떻게 보면 멋지게 정면돌파하는 장면이었잖나. 그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많으니까. 그 장면을 못 보거나 모른다고 해도 남편이라 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들은 항상 아내 앞에서 큰소리치고 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실제로 그런 것 때문에 아내와 많이 싸웠다. 극중 부부처럼 아내가 뭘 하려는데 내가 못하게 한 건 아니고. 잘하고, 잘 못하고를 떠나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었으면 하는데 나는 자꾸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려다 보니…. 결국 아내는 울고 있고 나는 나쁜 놈이 되어 있고. 정민이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면 관객도 함께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서울시장 재보선이 있었고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한편에는 이런 분위기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어디든지 기대고 싶은 마음이다. (웃음) 의도된 기획은 아니겠지만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꼼수다>나 <개그콘서트>의 정치풍자 코너가 기획돼서 나온 것일까. 아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나온 거다. 그만큼 사회가 현재 이런 분위기를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댄싱퀸>을 쓸 때 이런 분위기까지 고려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한창 촬영할 때 서울시장 재보선이 있었고. 우리 부모님 역시 이런 분위기 때문에 대박나는 게 아니냐고 하셨는데 외려 나는 괴로웠다. 영화가 실제 정치 이야기를 따라했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고, 지금은 정치가 더 재미있으니까 영화가 재미없을까봐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꿈을 이루려는 정화와 달리 정민의 인생은 늘 우연에서 시작된다. 이런 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연설장면과 선뜻 연결되지 않더라.
=시나리오 쓸 때부터 고민했던 부분이다. 정치인이 꿈인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정치인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서 그런 건지 정치인이 꿈이라고 하면 순수하게 안 보일 것 같더라. 속물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과정 속에서 자각하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던 게 나의 의도다. 그래서 정민이 멋모르게 접근했지만 권력의 맛을 보면서 타락하는 장면도 넣어볼까 했는데, 코미디영화로서 산만할 것 같았다.

-<두 얼굴의 여친> 이후 거의 5년 만의 복귀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전작이 흥행하지 못했는데 나처럼 세 번째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두 얼굴의 여친> 찍기 전에 이미 CJ E&M과 차기작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았다. 다행스럽게도 두편 찍고 난 다음 공을 많이 들인 뒤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반성했다. 그렇게 꺼낸 소재가 충주 성심야구부 이야기였는데, <국가대표>처럼 감동있는 스포츠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더라. 시나리오까지 썼는데, 강우석 감독님께서 진행하고 계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도 여기저기에 야구영화를 찍는다고 얘기해서인지 아직도 어떤 사람은 <글러브>가 내가 만든 영화인 줄 알고 있다. (웃음) 그렇게 해서 2, 3년이 날아갔고. 이후 이것저것 찾다가 JK필름을 만나게 된 거다. 그게 내게는 돌파구였다.

-한양대 캠퍼스 커플이라고 들었다. 같은 전공이라 아내가 극중 정화가 그랬듯 영화 일을 많이 이해해줬을 것 같다.
=아내를 비롯해 가족들은 내가 오랫동안 영화를 못 만들고 있다고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러나 ‘영화감독인데 영화를 영영 만들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공포심은 항상 있다. <댄싱퀸>을 본 아내의 반응은 어땠냐고? 지금까지 한 것 중에서 가장 낫다더라. (웃음)

-지금까지 만든 작품 모두 코미디 장르다. 코미디영화에 특별한 애착이 있나 보다.
=예전부터 코미디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전작을 코미디영화로 만들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액션영화도 해보고 싶고. 그래도 기왕이면 코미디가 있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다. <다이 하드>처럼 극 중간마다 릴렉스할 수 있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다.

-<댄싱퀸>이 흥행하면 시리즈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나. 가령, 정민이 대통령에 도전한다거나 하는.
=정민이 서울시장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가능하겠다고 농담한 적은 있다. 정말 잘되면 대선에 도전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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