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전 공부하랴 재판 준비하랴 너무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세요. 허락하신다면 눈으로는 책을 좀 보겠습니다. 대답하는 데는 지장없을 겁니다.
-교수님께서는 제주도 남쪽과 규슈 서쪽 사이 대륙붕에 위치한 해저 광구인 7광구의 석유시추선, 이클립스호 석궁 테러 사건의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셨는데 먼저 심정이 어떠신지요.
=먼저 검사가 석궁이 아니라 최종병기 활로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냐고 묻던데, 저는 결백하니까 무엇이건 관심없습니다. 지난번에는 검사가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며 어떻게 극복했냐고 묻기에 대답도 안 했습니다. 그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정말 이클립스호에 타지 않으셨나요?
=제가 몇번이나 말씀드리지만 저는 배멀미가 있어서 배 자체를 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7광구라는 곳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거기서 제가 괴물을 쏴죽였다니요. 어이가 없습니다. 증거를 대보라고 하세요.
-아무튼 그 괴물은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 굉장히 힘들게 만들어서 훈련 중이었는데, 그런 비싼 괴물을 쏴죽였으니 난리가 날 법도 합니다. 괴물에게 젓가락질이나 오토바이 타기, 그리고 한글과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족히 수백명은 됐었으니까요. 아마도 연기수업을 무사히 마치고 출연해서 완성만 됐다면 1천만 관객은 문제도 아니었을 겁니다. 상황이 그 정도니 괴물의 의문의 죽음은 한국영화계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여길 수도 있지요.
=제 얘기는 들을 생각도 안 하시는군요. 증거로 제시된 괴물의 피 묻은 붉은악마 티셔츠와 부러진 화살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그러잖아도 제가 오랫동안 그것에 대해….
=말 끊지 마세요. 다시 말하지만 괴물이 붉은악마 티를 입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됩니까? 게다가 빨래를 잘못하면 붉은색이 그렇게 번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도 끝까지 재검증 요구는 묵살됐습니다. 분명히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겁니다. 도대체 그 괴물을 만드는 데 얼마를 쓴 겁니까?
-교수님 심정을 잘 알기에 전적으로 믿고 싶습니다만 여러모로 ‘진중’해져야겠기에…. 부러진 화살의 단면을 자세히 보면….
=지금 인터뷰하기 싫죠? 이것 보세요, 괴물이 로봇이 아닌데 어떻게 화살이 부러집니까. 똑같은 종류의 괴물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있다면 꼭 실험해서 혈흔을 대조해보고 싶네요.
-그래도 그 괴물은 전문가들이 꽤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고 있던… 그걸 다시 만든다는 건 너무나 큰 재앙입니다.
=대한민국에 전문가가 어디 있어요. 사기꾼들 빼고.
-죽은 괴물은 말이 없다고, 이것 참 난감하네요. 이클립스호에 블랙박스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진실은 어디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