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김의석, 이하 영진위)가 2월7일 발표한 2012년 사업계획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애니메이션 지원제도 부활’이다. 영진위가 애니메이션 관련 진흥사업을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으로 이관한 지 6년 만이다. 이번에 영진위가 내놓은 지원제도는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국내외 개봉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개봉지원(예산 8억2천만원) 사업은 50개관 이상 개봉하는 작품 3편에 각 2억원씩, 10개관 이상 50개관 이하 개봉하는 작품 2편에 각 1억원씩 지급한다. 해외개봉 및 상영행사 지원 사업은 1억8천만원의 예산 한도에서 해당 작품의 자막프린트 비용 등을 지원한다.
영진위의 ‘애니메이션 지원제도’ 부활은 2011년 한국 애니메이션이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 오성윤 감독의 <마당을 나온 암탉>,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 한혜진·안재훈 감독의 <소중한 날의 꿈> 등 3편의 애니메이션이 연달아 개봉했다. 특히 <마당을 나온 암탉>은 국내에서 22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해외 40여개국에 수출됐다. 영진위의 담당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을 기점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설명한다. 참고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지원 사업 예산 10억원은 여타 사업들처럼 영화발전기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고에서 특별 출연된다.
하지만 정부의 선심에도 불구하고 현장 분위기는 싸늘하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우호적인 반응도 있지만 ‘생색내기’ 아니냐는 힐난의 목소리가 더 높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실제로 애니메이션 제작을 해보니 개발 단계부터 엄청난 하드웨어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제작지원 없는 개봉지원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지금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정부가 제작비 50% 정도를 지원하지 않으면 부분투자를 이끌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애니메이션이 고부가가치산업이며 미래영상산업이라고 말만 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에 대한 배려가 전무하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우리별 1호와 얼룩소>를 제작 중인 장형윤 감독은 “영진위가 5편의 작품을 선정해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올해 개봉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 5편이 될지 모르겠다”고 우려한 뒤 “영진위는 50개관 이상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에 2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그 정도 규모의 애니메이션은 상업애니메이션만을 뜻한다”고 비판했다. <돼지의 왕>의 조영각 프로듀서는 “심형래 사태를 보라. 그런데도 콘진은 글로벌만 외친다. 애니메이션 지원도 마찬가지다. 국내시장에 콘텐츠가 나와 자연스럽게 경쟁하고 그래야 또 해외에도 가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콘진으로 이관된 애니메이션 지원 사업을 영진위가 다시 맡아야 할까. 문제는 철학이고, 마인드다. “이전부터 (이 사업을) 준비했다기보다는 그게 필요하다고 (위쪽에서) 사업 제안이 와서 급하게 한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콘진이 지적을 받은 것 때문에 콘진이 추진하던 사업 중 일부가 우리쪽으로 위탁들어온 것 같다.” 영진위 관계자의 이 발언은 해당 사업의 미비함을 자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영진위는 보도자료에서 ‘애니메이션 지원제도 부활’을 올해 사업계획의 핵심으로 꼽았다. 현장 영화인들이 저간의 사정을 모를 바보인가. 잊었다면, 기억하자. 올해는 다름 아닌 2012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