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락선(37) 촬영감독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1990년대 중반 조명 스탭으로 일찌감치 영화 일을 시작했고, <바람난 가족>(2003)으로 남들보다 빨리 조명감독 타이틀도 얻었다. 그랬던 그가 <비스티 보이즈>(2008) 때부터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있다. 윤종빈 감독은 <비스티 보이즈>에 이어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그에게 촬영을 맡겼다. “조명감독 출신이라 빛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 촬영으로 멋을 부리려고 하지 않는다. 내 영화를 찍어서가 아니다.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찍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배우의 눈을 겨냥한 그의 카메라는 투박하고 동시에 묵직한데, 그런 시선은 요즘 찾아보기 힘들다.” 윤종빈 감독은 다른 촬영감독들과 다른 그의 이력이야말로 그의 카메라가 갖는 장점이라면서 “다음 작품도 무조건 같이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촬영감독 고락선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찍은 결과물에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이제야 촬영의 ABC를 알 것 같다”고. <대부>의 고든 윌리스와 <아모레스 페로스> <바벨>의 로드리고 프리에토를 마음에 품고 있는 ‘촬영감독’ 고락선을 만났다.
-윤종빈 감독과는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같이 작업했다고 들었다.
=오래 붙어 있긴 했다. 촬영 들어가기 1년 전부터 제작사 사무실에 모여서 콘티를 그렸으니까. 캐스팅도 안되고, 투자도 안되고, 일단 콘티부터 하자더라. (웃음)
-이전 시나리오는 익현(최민식)과 형배(하정우)의 대결 구도로 짜여졌다.
=윤 감독이 일대기 형식으로 새로 고쳐썼다며 지금의 시나리오를 주더라. 뭐가 더 좋으냐면서. 내 생각엔 전 버전이 더 확실히 잘 읽히고 흥행도 더 잘될 것 같았다. 클라이맥스도 분명하고. 윤 감독 시나리오는 클라이맥스가 따로 없다. 그게 그가 생각하는 리얼한 스토리다. 그걸 모르지 않는 이상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오랜 시간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재밌는 걸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일반적인 남자, 조폭, 액션영화에 비하면 카메라 움직임이 얌전하다.
=‘정석대로 찍자’가 컨셉이었다. 클래식하게. 컷을 많이 나눈다고 그 신이 스피디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잖나. 기교 대신 인물 중심으로 갔다. 최민식, 하정우 모두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니 굳이 컷을 나눌 필요도 없었다. 미디엄 숏은 많이 썼다. 얼굴 표정만이 아니라 손과 몸으로도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라서.
-대결 구도의 시나리오였다면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기 위해 1.85:1 포맷을 썼다. 이전 시나리오였다면 2.35:1 포맷으로 찍었을 거다. 2.35:1은 카메라에 더 큰 공간을 담을 수 있으니까 더 많은 걸 시도했을 테고.
-윤종빈 감독과는 <비스티 보이즈>에 이어 두 번째다. 현장 분위기가 어땠나.
=10회차 촬영까지는 윤 감독도 헤매고 난 더 헤맸다. 콘티를 짜면서 되도록 컷을 나누지 않고 찍기로 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감이 잘 안 오더라. 얼마나 긴장했는지 이런 적도 있다. 윤 감독이 O.S.(Over the Shoulder Shot, 한 배우의 어깨너머로 상대배우의 얼굴이 보이도록 촬영한 숏)를 걸어 투숏을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막상 찍을 때는 조금만 더 들어가달라고 몇번을 부탁했다. 나중엔 투숏이 단독 인물 숏이 돼버렸다. 결국 재촬영했다. (웃음)
-익현이 형배를 만나면서부터 빛이 미묘하게 변한다.
=익현과 형배의 행동 패턴은 서로 다른데 그 차이를 카메라보다는 라이팅으로 많이 표현하려 했다. 익현의 일상이 나올 때는 앰버처럼 따뜻한 톤을 많이 썼고, 익현의 삶 안으로 형배가 들어오면서부터는 차가운 느낌의 블루, 사이언을 많이 썼다.
-형배가 판오(조진웅) 패거리를 치러 가는 장면은 대낮에 찍었지만 묘한 긴장이 있다.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 카메라가 조금씩 흔들리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동차에 탄 상태에서 카메라를 들고 찍었다.
-여건 때문에 촬영하지 못한 장면도 있을 텐데.
=형배가 칼 맞고 쓰러지는 장면이 가장 아쉽다. 이 장면에선 배우의 연기보다 이미지로 상황을 전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원래 4회차였는데 일정도 반으로 준 데다 엑스트라도 반으로 줄었다.
-촬영을 하기 전에 조명부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이철오 조명감독(<추격자> <아저씨>)이 고향 선배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그분 추천으로 엑스포 홍보영화를 찍게 됐다. 첫 촬영지는 강원도 온달동굴이었는데 한겨울에 150m 지하까지 두꺼운 발전기 본선을 끌고 내려가야 했다. 휴일엔 쉬지도 못하고 발전기 고치러 나가고. 다른 스탭 형들은 밤에 잠깐 와서 일당 받아가는데 난 계속 붙어 있어도 돈은 안 주고. 도중에 그만뒀다. 그 뒤로 1년 정도 놀다가 이철오 감독님이 드라마 <파일럿>을 해보라고 하시더라. 거긴 월급을 주니까 괜찮을 거라면서. 신기하게도 드라마 하면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조명을 잘 몰랐지만 드라마 현장의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라이팅이 싫었던 거지. 제대로 배운 건 임재영 조명감독님을 만나면서다. <투캅스2>(1996)까지 3년 정도 세컨드로 일했다. 그 뒤로 최성원 조명감독님 아래서 퍼스트로 일했고. 영화를 동경했다면 조수 시절을 못 버텼을 것 같다. 현실과의 괴리가 너무 컸으니까.
-일하면서 라이팅에 대한 애정이 생긴 셈인데.
=세컨드 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 있다. 왜 오른쪽으로 조명을 옮길까, 왜 키 라이트(Key Light)를 저렇게 높이는 걸까. 한 3년 일하는데도 잘 모르겠더라. 아 정말 난 머 리가 나쁘구나,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됐다. 그건 지시하는 사람 마음이니 알 수 없는 거라고. (웃음) 그 뒤로는 자세히 관찰했다. 이전엔 ‘왜 나는 모를까’였는데, 꼭 저렇게 해야 하나, 이렇게 하면 안되나, 그렇게 되더라.
-촬영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키웠나.
=촬영하고 싶은 조명 스탭들이 주위에 많아서 자연스럽게 그랬던 것 같다. <박하사탕>(1999) 현장에서 한달 동안 촬영부 견습생활을 한 적도 있다. 촬영부를 해보니까 왜 촬영스탭들이 말이 많은지 알겠더라. (웃음) 조명팀에 비해 시간이 많다. 조명부는 현장에서 콘티 볼 시간도 없는데, 촬영부는 연출부에게 이 장면은 왜 이렇게 찍냐고 물어볼 수도 있고. 눈치가 좀 보이긴 했다. 그때 조명부 퍼스트로 일곱 작품 정도 한 상태라 조명팀 친구들이 대개 후배들이었는데 무시하는 눈빛이 느껴지더라. “쟤는 뭐냐” 하는.
-조명감독 데뷔작은 <바람난 가족>이다. 굉장히 빠른 나이에 데뷔했다.
=데뷔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라는 데가 있어서는 아니고. (웃음) 박현원 조명감독님 아래서 <클래식>(2003)을 준비할 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전신인 4부연합의 조명 부문 책임자였다. 광고쪽 스탭들이 파업을 하면서 우리쪽에 CF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해왔는데, 박현원 조명감독님이 광고 일을 굉장히 많이 하고 계셨다. 조수인 내가 못 나가겠다고 하니, 결국 해고됐다. 임재영 조명감독님은 큰 그림과 플랜을 짜고 그 안에서 변화를 준다면, 박현원 조명감독님은 아기자기한 디테일로 전체를 채워가는 분이다. 그걸 배우려고 들어간 건데 일이 그렇게 돼버린 거다. 이럴 바엔 그냥 데뷔하자, 그랬다. 그러고 보면 운이 좋은 편이다. 이철오 조명감독님 대신 <바람난 가족>을 하게 된 것이니까.
-<바람난 가족>에 이어 <그때 그사람들>(2004), <오래된 정원>(2007)에서 김우형 촬영감독과 같이 작업했다.
=존경하는 촬영감독이다. 만들어 찍을 줄 안다. 머리로 미리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으면 만들어 찍을 수 없다. <…ing> 때 함께한 김병서 촬영감독도 좋아한다. 그 친구는 타고난 감각을 지녔다. 카메라 들 때 감성에 푹 빠져 있다.
-중앙대학교 영화학과에 뒤늦게 진학한 이유는 뭔가.
=<오래된 정원> 준비할 무렵이었는데, 임상수 감독님이 “네가 학교 가서 뭘 배울 거냐?”고 하시더라. 대학교를 가지 못했다는 콤플렉스가 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한 학기 다니니까 사라지더라. 그 뒤론 고역이었지. 나이 먹고 몇기 누구입니다, 해야 하니까. 과제 찍으면서 박기웅 교수님한테 헤드룸(프레임 내 피사체의 머리 위 공간)도 잘 못 맞춘다고 지적받고. 현장에선 서로 박 기사님, 고 기사 그랬는데. (웃음) 그래도 이승영, 윤종빈 등 좋은 친구 만나 1학년 때부터 촬영할 기회를 얻은 건 득이다.
-<비스티 보이즈>에서 촬영감독을 맡게 된 연유가 궁금하다.
=원래는 조명을 맡았다. 카메라는 <최종병기 활>을 찍은 김태성 촬영감독이 맡기로 했고. 그런데 투자가 안돼 제작비가 1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처음엔 못하겠다고 했다. 예산이 줄면 라이팅 비용부터 줄게 돼 있다. 라이팅이 줄면 그림이 좋을 수가 없다. 그랬는데 얼마 뒤에 김태성 촬영감독님도 빠지게 됐다. 윤종빈 감독은 내가 DP 시스템과 촬영쪽에 관심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제안을 했고 그걸 받아들였다.
-DP 시스템은 대개 촬영감독이 조명까지 관할하는 것 아닌가. 촬영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촬영쪽에서는 물 흐린다고 하고, 조명쪽에서는 ‘조명도 잘 못하는 애가 무슨 촬영이냐?’ 그러고. 자신감도 없었다. 이거 했다가 조명 일도 못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실제로 <비스티 보이즈> 끝내고 조명쪽 일이 안 들어왔다. 촬영도 마찬가지고. (웃음) 나중에 색보정하려고 사운드 없이 내가 찍은 영상을 보는데 자괴감만 들더라. 그 뒤로 한 2년 놀았는데 가장 힘든 시기였다. 모아둔 5천만원마저 주식에 투자했다가 다 까먹고.
-여건의 문제였나, 실력의 문제였나.
=그 당시에 여건이 좋은 영화가 어디 있나. 비슷한 시기에 김병서 촬영감독이 찍은 <호우시절>을 봤는데 여건 안 좋아도 정말 잘 찍었더라.
-조명감독 출신으로서 카메라를 잡을 때 유리한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간혹 놀린다. 이제 촬영만 잘하면 되겠네, 라고. (웃음) 촬영감독으로선 신인이지만 조명 경력 덕분에 앵글 잡느라고 디테일한 빛을 놓치진 않는 것 같다. 입체적인 비주얼을 위해서는 한 화면 안에 많은 빛의 정보를 넣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조금 이롭고.
-한국에 DP 시스템이 도입된 지 10년이 됐다.
=할리우드에서 촬영감독은 감독과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전체를 통솔하는 관리자다. 반면 우리 경우는 촬영감독이 오퍼레이터다. 외국에선 포커스 풀러, 돌리, 개퍼 등 각 분야가 모두 직업으로 인정받는다. 우린 포커스를 잘 맞추는 능숙한 스탭과 이제 처음 포커스 잡은 스탭과의 개런티가 동일하다. 분업화가 안된 거지. 분업화가 안되니까 관리할 필요가 없는 거다. DP 시스템을 도입했다기보다는 좋은 용어만 가져다 쓰는 식이다.
-차기작은 뭔가.
=지금은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에서 상영될 미디어 아트 작품을 촬영 중이다. 이정재씨와 임수정씨가 출연한다. 영화는 김광식 감독님과 같이 할 생각인데, 아직 시나리오가 안돼서 언제 들어갈지 모르겠다. 앞으로 누아르물이나 캐릭터가 다양한 드라마를 하고 싶다. 윤종빈 감독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기교는 시간이 지나면 촌스러운 것이 된다. 시간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는 오리지널을 찍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