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3일
로테르담영화제 가는 길. 여행이 다 그럴 테지만 특히 장거리 항공 여행은 어느 주머니에 무엇을 눌러 담을지 정하는 출발 전날 고민부터 비행기 안에서 내 팔다리를 어떻게 건사하고 영역을 확보할지에 관한 눈치작전에 이르기까지 ‘수납’의 전쟁이다. 네덜란드 국적기 K항공사는 이코노미 클래스 좌석을, 다리를 뻗고 등받이를 젖힐 수 있는 여유 공간에 따라 세 등급으로 세분해 차등 판매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비단 K항공사만의 시스템은 아니지만 지구상에서 평균 신장이 가장 큰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니만큼 앞장서서 궁리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유서 깊은 상인의 나라답게 터무니없이 비싼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을 늘리거나 체크인의 운에 맡기느니 안락한 정도에 맞는 가격을 아예 매겨놓는 쪽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전세계 영화 스탭을 통틀어 가장 고생스러운 사람은 키다리들 위로 종일 장대를 치켜들고 있어야 하는 네덜란드의 붐 마이크 기사가 아닐까 등등의 하등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기내지를 펴니 마침 “네덜란드인에게 키란?”이라는 주제의 칼럼이 눈길을 끈다. 필자는 천장에 걸린 코너 팻말에 머리를 부딪힐 위험이 있기에 장보러 갈 때에도 안전모가 필요한 키 큰 시민들의 애로사항과, 하필 거인국에 태어나 아이 취급당하기 일쑤인 아담한 네덜란드인의 애환을 나란히 설명했다. 훤칠함을 매력과 동일시하는 세간의 인식은 발육 상태가 곧 경제적 계급을 의미했던 지나간 시대의 흔적이기도 하다는 역사적 고찰을 곁들여. 그런가 하면 암스테르담 시민에게는 자전거로 10분 이상 걸리는 지역은 몽땅 ‘교외’로 간주된다고 귀띔하는 다른 기사도 재미있다. 잡지를 덮으며 깨닫는다. 국적기 기내지라면 자국 전통문화와 관광지에 대한 의례적인 자화자찬보다, 이방인들이 지금부터 도착할 세계와 거기서 만날 현지인들의 특색에 대한 재치있는 인류학적 관찰을 담은 글을 싣는 편이 훨씬 현명한 편집 방향이다.
기내영화로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다. 순수문학을 꿈꾸는 할리우드 작가 길(오언 윌슨)은 파리 여행을 떠났다가 밤마다 무슨 조홧속인지 파블로 피카소, 콜 포터, 스콧 피츠제럴드 등이 북적이는 1920년대 파리의 예술인 공동체로 빨려들어간다. 평소 황금시대라 믿어 의심치 않는 1920년대로 떨어진 길은 황홀해 어쩔 줄 모르지만 정작 20년대 예술인들은 한 세대 전인 세기말을 동경하고 있다. 급기야 20년대에서 재차 웜홀 뚜껑이 열려 19세기 말까지 돌아간 오언 윌슨은 (어떤 단어를 발음해도 O자 모양이 되는) 특유의 입술을 오므리고 더듬거린다. “이놈의 도시는 뭐가 문제야!” 영원한 불평. 우리는 언제나 원하는 일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늙었고, 내 영혼을 알아보고 자유롭게 꽃피게 해줄 황금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거나 지나가버렸다. 반추하거나 내다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예술가들에겐 더욱 익숙한 투덜거림이다. 그들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누에처럼 제 몸으로부터 꾸역꾸역 실을 내어 자기 둘레에 나름의 시대를, 세계를 지어올려야 한다.
탑승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중에는 23개 국어의 기초회화를 익힐 수 있는 메뉴도 있다. 오래된 의문 한 가지. 여행자를 위한 외국어 표현에 “사랑해요”가 꼬박꼬박 들어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모국어로도 말할 기회가 흔치 않은 표현 아닌가? (이탈리아어 여행자 회화책에서는 심지어 즉석 데이트에 필요한 표현을 모아놓은 장이 따로 있었다.) 로맨틱한 행운을 비는 부적의 의미 정도로 이해하는 수밖에.
1월26일
암스테르담 안네 프랑크 하우스에서 예기치 못하게 ‘영화들’과 마주치다. 감금된 채 청춘을 보낸 소녀의 방 좁은 벽에는 그레타 가르보, 힐데 케삭 등 당대 배우들이 한껏 매력있는 포즈를 취한 사진이 붙어 있었다. 가족의 지인은 한창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것들에 미혹될 나이인 안네에게 월간 <영화와 연극>(Cinema and Theatre)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숨어살기 전부터 이미 반유대인 법령 때문에 극장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안네와 언니 마고트에게, 잡지에서 오려낸 영화 스틸과 배우 브로마이드는 정사진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였을 것이다. 마치 어둠상자와도 같은 은신처의 좁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일기를 통해 우리가 짐작하는 발군의 상상력을 지닌 그 소녀가 머리로 찍고 꿈에서 보았을 무수한 영화들이 어른거려 괴로웠다. 전시의 마침표는 안네의 부친 오토 프랑크의 인터뷰 필름이었다. 자식들을 여의고 홀로 살아남아 노인이 된 남자는 역사도 증오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 주제들에 관해서라면 이 집 전체가 웅변하고 있었으니까. 오토 프랑크는 그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모들이란 자식을 진정으로는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1층 로비에서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의 반 단 부인 역으로 1960년 오스카 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셸리 윈터스의 오스카 트로피가 떠나는 방문객을 전송했다.
2월8일
출장이 끝났다. 하루에 네댓편의 영화를 몰아 볼 수 있는 자리인 영화제는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로 지은 집처럼 황홀하지만, 곤한 몸은 자주 졸음에 굴복하고 욕심껏 집어먹은 초콜릿과 사탕의 맛은 지친 혀 위에서 뒤섞여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지곤 한다. 작정하고 영화제에서 며칠을 보낸 관객이라면 아침에 본 영화가 밤에 본 영화 안으로 흘러들어 제3의 존재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이틀 뒤엔 내가 과연 어떤 영화를 봤는지 확신할 수 없는 괴이한 ‘림보’를 경험해봤을 터다. 요컨대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꿈속의 꿈 같다. 그래서 현실 속의 꿈으로 제대로 재회할 때까지 그 영화들에 관해 쓰는 일은 조금의 용기를 요한다.
서울에 돌아와 먼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상영관을 찾았다. 지난 1월 표지 인터뷰를 위해 이 영화를 미리 보았지만 TV 스크린으로 본, 후시녹음과 음악이 빠진 미완성본이었다. 말하자면 거기에는 이용의 <바람이려오>나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풍문으로 들었소>가 없었고,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독백이 (믹싱이 완료되지 않았으므로) 현실의 소리인지 마음의 소리인지 귀로 분별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범죄와의 전쟁…>을 처음 감상한 뒤 내가 가장 마음에 걸렸던 문제는 이 영화가 최익현(최민식)이라는 한 남자의 일대기인지, 한 시대의 풍자적 스케치인지, ‘나쁜 놈’끼리의 치고받음에서 웃음과 스릴을 얻어가게 하려는 갱스터인지 스스로 확실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아마 작자의 의도에 관한 나의 집착은, 현재시제를 맨 뒤쪽에 두고 과거와 대과거를 빈번히 왕래하는 다분히 설계된 시간 구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 불명했던 점은 최익현을 대하는 최형배(하정우)의 감정선이었다. 마침내 극장에서 본 완성된 영화는 음악의 추임새와 사운드가 그리는 풍경이 영화에 어떻게 기여하거나 결점을 가리는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냉담하게 표현하면 앞서 말한 의심을 떠올릴 겨를을 없애버렸다고 할 수도 있다. 소리 이상으로 결정적인 차이는 연기에서 왔다. 딱 한곳만 언급하라면 최형배가 익현의 도움으로 출소해 절벽의 횟집에서 처음으로 속내를 여는 장면. 나는 작게 외마디를 냈다. “아무튼 그래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가족 말곤 아무도 믿어서는 안되는구나. 대부님이 제 옆에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작은 화면에서는 그저 취기에 힘입은 쑥스럽고 의례적인 치하로 보였던 대화를 하는 동안 형배의 눈에는 계속 물기가 돌고 있었다. 그 반짝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고 내가 품은 두 번째 궁금증에 어느 정도 답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