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마린시티의 주상복합 아파트 62층, 1940년대 중반 부산에서 태어난 경주 최씨 충렬공파 35대손 최익현(최민식)씨는 거실 창 너머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지난해 부산에 들이닥친 부동산 열풍 덕분에 또다시 자산 목록을 늘릴 수 있었다. 생애 마지막일지 모르는 기회라 악착같이 달려들었고, 그만큼의 수익을 챙겼다. 그런 그가 지금 아들의 검사 임용 소식을 전해 듣고선, 자신이 경험했던 가난과 궁핍의 기억 맨 끝자락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영도 달동네의 방 한칸짜리 집이 버티고 서 있다.
그의 유년기는 6·25 전쟁의 소용돌이가 비켜나갈 정도로 구김살이 없었다. 그의 가족이 거주하던 일식 적산가옥은 외부의 불행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든든한 성채였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다. 자유당 시절, 야당도 아닌 무소속 간판을 달고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연전연패. 땅 문서가 하나둘 사라지더니, 마침내 집도 빚쟁이들 손에 넘어갔다. 그 이후 익현씨의 청춘은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걸었다.
영도의 집은 익현씨가 결혼 뒤 처음으로 장만한 것이었다. 이삿짐을 옮기는데 리어카 한대로도 충분했던 부실한 세간이었다. 하지만 익현씨가 밑돈을 꽂아주며 세관에 취직하면서 살림살이는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한쪽 벽면에 허리 높이의 자개농, 덩치만 큰 목재장, 그리고 다리가 달린 캐비닛형 텔레비전이 차례로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붙박이장의 미닫이문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앉은뱅이책상 두개와 책장을 놓았다. 책장에는 어린이용 전집류 책들이 빽빽하게 꽂혔고, 영어회화 카세트테이프가 담긴 가방도 놓였다. 그리고 때묻은 벽지가 드러나는 빈 공간마다 가족사진과 함께 상장들도 줄줄이 붙여졌다. 그 시절 익현씨는 퇴근 뒤 그 상장들을 바라볼 때면 하루의 피로가 일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한편, 이런 집안 풍경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행색의 전자제품들도 있었다. 익현씨가 세관에서 빼돌린 턴테이블, 포터블 컬러텔레비전, 비디오플레이어, 카세트라디오 등.
이 갖가지 세간들 중 아내가 가장 애지중지한 것은 국산 꽃무늬 전기밥통이었다. 다른 집 부인네들이 환장한다는 코끼리표 밥통을 구해준다고 해도, 한사코 반대였다. 그녀는 스테인리스스틸의 금속 질감이 두드러진 일제 밥통보다는 꽃무늬가 그려진 국산 밥통이 더 정감이 간다는 것이었다. 하긴 지금, 아들 명의로 구입한 이 주상복합 아파트의 주방도 온통 꽃무늬투성이다.
아무튼 영도에 살던 시절, 익현씨는 얼마 뒤 자신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게 될 것이라는 사실, 가족을 위해 번듯한 이층양옥과 피아트 132를 구입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뒤로 인생의 반전이 찾아왔고, 지금 그는 부와 권력으로 쌓아올린 조망의 자리에 서서, 옛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감에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