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병훈] “영화도 문화재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기쁘다”
2012-03-09
글 : 주성철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취임 후 2년여를 보낸 한국영상자료원 이병훈 원장

한국영상자료원은 2008년 상암동 신청사 개관 이래 알찬 성장을 계속해오고 있다. 전임 조선희 원장 시절인 2007년 9월 국내 최초로 양주남의 <미몽>(1936) 등 7편의 영화가 동시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뒤,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극영화인 안종화의 <청춘의 십자로>(1934)가 문화재청의 심의 및 실사를 거쳐 지난 2월 등록문화재(제488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시네마테크KOFA 관객 수는 지난 4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는데 2009년 9월 이병훈 자료원장이 취임한 이듬해인 2010년에는 거의 3배 가까운 관객 증가율을 보였다. 한편, 지난 2월17일에는 올해의 주요 사업계획을 발표하며 영상자료원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제2보존센터 건립을 발표했다. 지난 몇년간 이어져온 이런 의미있는 성장 뒤에는 많은 이들이 이병훈 원장의 묵묵한 추진력이 큰 바탕이 됐다고들 얘기한다. 공식임기 3년의 중간평가를 겸하여 자료원장으로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그를 만났다.

-영상자료원장으로서 2년 넘게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영화계 바깥 인물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일단 소감이 어떤가.
=흥미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 우려의 시선에 대해서는 반대로 생각했다. <조선일보> 사진부장 시절 사진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영상디지털아카이브를 6년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오히려 나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자료원의 일들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됐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임명 배경’이나 ‘출신 성분’에 대한 얘기는 지겹도록 들어왔을 것 같다.
=그런 이데올로기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히 개인적으로 더 할 얘기도 없고,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많이 회자된 것도 아니다. (웃음) 자료원장이라는 자리 자체가 오히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이 분야에 숙련된 사람으로서 정통적인 인선이었다고 생각했고, 처음부터 소신대로 진도를 나가고 성과를 거둘 때 자연스레 증명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취임 당시에도 “제2보존센터 건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드디어 올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발표했다. 지난 2년 동안 가장 뜻깊은 순간일 것 같다.
=그렇다. 가장 신경 쓰고 추진한 일이다. 게다가 자료원으로서는 이미 필름 보유량이 보존고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곧 벗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도 했다. 부임하자마자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 등을 뛰어다니면서 모든 신경을 거기 쏟다시피 했다. 현행유지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했고 내 임기 3년 동안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파주 출판문화산업단지 2단계 내 문화시설 용지 일부로 연건평 8600㎡에 총사업비 330억원이 투입된다. 2014년 완공이 목표다.

-추진 과정에서의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예산을 다루는 데 있어 우선순위에서 당연히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중요 국보급 문화재들도 시설이나 관리가 부족한 곳들이 많다. 전반적인 인식 자체가 영화를 다른 문화재와 동급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개인 사업자의 작품을 왜 국가 돈으로 관리하나, 떨어지는 작품들까지 다 보관할 필요없이 좋은 작품들만 선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부터 심하게는 그저 USB 같은 데 간편하게 보관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인식의 틈을 계속 파고들었다. 영화 역시 귀중한 문화재다, 당대에는 그 중요성을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해진다, 게다가 다른 문화재에 비하면 변질 등의 문제가 더 빨리 진행되기 때문에 굉장히 시급하다는 식으로 설득해나갔다. 폐교라든지 주변의 낡은 건물을 보수해서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보존고는 일반 건물과 달리 막대한 하중을 견뎌야 한다. 실제로 폐교도 알아보고 보수, 개선 방향으로도 알아봤는데 리모델링비가 더 많이 드는 것으로 나왔다.

-시네마테크KOFA 관객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도 축하할 만한 일이다. 영화 상영횟수와 더불어 총관람인원이 이전에 비해 대폭 늘었다.
=가장 기쁘게 생각하는 일 두 가지가 있다면 바로 제2보존센터 건립 예산 확보와 관람객 증가다. 2010년 초에 ‘김수용 감독 회고전’이 있었다. 감독님께서 애정이 커서 거의 매일 시네마테크KOFA에 오셨는데 관객이 너무 없었다. 자료원장으로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그래서 전단지를 만들어 주변 지역에 뿌리고 신문에도 끼워 배포했다. 지하철역에서도 홍보활동을 했고, 표지판도 정리했다. 영화제 중반이 지나면서는 관객 수가 꽤 늘었다. 나로서는 이런 좋은 시설에서 이런 훌륭한 영화들을 하는데 더 많이 알리고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기적인 상영회를 무조건 정착시키도록 했다. 이전에는 특정 영화제나 기획전이 끝나면 비는 기간이 있었는데, 휴관일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하루 3편 상영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래서 누구라도 ‘자료원에 오후 2시까지 가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말이다. 모은영, 오성지 두 프로그래머도 늘어난 상영횟수에 걸맞게 국내외의 좋은 프로그램들을 잘 짰다. 구로사와 아키라, 임권택 감독전 등이 거의 매진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놀랐다.

-그외 지난 시간 아쉬운 점으로 꼽고 싶은 게 있다면.
=중요한 일에 쏟는 예산도 중요하지만 원활한 업무환경 개선과 여타 다른 일을 위한 예산 증액과 인원 추가선발도 해야 하는데 그것까지 단기간에 다 끌어안지는 못했다. 영상자료원은 보존과 복원, 그리고 수집이라는 기본 업무 외에도 자체 극장과 박물관, 도서관 운영과 영화데이터베이스 관리, VOD 서비스 등 복합적인 문화기관이다. 그외 출판과 DVD 출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정원이 40명으로 묶여 있어 힘들다. 직원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비정규직이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러다보니 전문성이나 영속성을 띤 일들을 진행하는 데 있어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외에도 전임 자료원장 시절부터 디지털 복원 작품들을 매년 1편씩 진행해오고 있는데, 자료원 예산만으로는 부족해 기업후원 등을 통해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그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틴 스코시즈의 세계영화재단과 함께 김기영의 <하녀>(1960)를 복원해 2008년 칸영화제 클래식 부문에 상영한 것처럼, 그건 자료원만의 영광이 아니라 국가적 홍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남은 기간 동안 <오발탄> 등을 복원하고 싶다.

-문득 직원들에게 어떤 자료원장인지 궁금하다. (웃음)
=일을 좀 많이 벌이는 데다가 서로 페이스가 맞아야 추진력이 생긴다고 보는 입장이라 많이 피곤해할 것 같다. 언론계에서 33년을 근무했고 이후 학교에서 10년 정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즐겁게 지냈는데, 지금 직원들에게는 “이런 식으로 일하면 신문사에서는 큰일난다”고 강조한다. (웃음) 임기의 반을 지나고 보니 지금 가속도가 붙었을 때 좀더 뭔가를 해야 한다는 욕심이 나는 거다. 그렇게 올해도 일찍 시동을 건 편이다.

-영상자료원장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어떤 영화들을 좋아했나.
=마카로니 웨스턴을 비롯해서 서부극을 무척 좋아했다. 게리 쿠퍼, 커크 더글러스, 버트 랭커스터 등 주로 남자들이 나오는 영화들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참 옛날 영화들이다. (웃음) 여배우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바 가드너, 잉그리드 버그만, 데보라 카 등이다. 역시 옛날 여자들. (웃음)

-재임 기간 중 새로이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된 영화들이 있다면.
=어렸을 때도 신상옥, 김기영, 유현목, 이만희, 김수용 감독님들의 영화는 좋아했고 즐겨봤다. 자료원장으로 있으면서 새롭게 보게 된 건 정창화 감독님이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들은 물론이고 <죽음의 다섯 손가락>처럼 홍콩에서 만든 영화들의 힘도 엄청나다고 느꼈다.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도 많은 걸 배웠고 영화제 자체도 성황을 이뤄 참 행복했다.

-영화는 갈수록 필름이 아닌 디지털로 바뀌어가고 있다. 영화아카이브에 대한 기존 개념도 많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필름 상영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영진위 통계를 보면 지난해는 2010년에 비해 거의 절반이나 감소했고 2K 스크린이 200여개나 증가했다. 3D 스크린 역시 크게 증가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막연하게 디지털이 만능이고 최고의 저장매체라고 생각하는 데 대해 나는 반대 입장이다. 자료원장으로 오기 이전부터 디지털보다 필름이 안전하다는 것이 내가 근무하면서 직접 느낀 바다. 일단 필름은 영화의 역사가 그런 것처럼 지난 100년 넘는 세월 동안 그 보존이 증명됐다. 그에 반해 디지털은 아직도 불완전 매체다. 자료원에서도 디지털의 경우 하드와 스토리지 등 3중 안전장치로 백업 작업을 하고 있다. 분명 장소는 적게 차지하지만 오히려 비용도 더 들고 안전성도 떨어진다. 게다가 영화 필름은 한컷만 수정하면 되는 것을 디지털로 할 때는 전체를 다 작업하거나 한꺼번에 날리는 수가 있다. 세계영상자료원연맹(FIAF) 총회에 참석한 각국 관계자들도 섣불리 디지털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여전히 디지털에 대한 불확실성을 유념해야 한다는 입장이 더 강하더라.

-필름과 디지털에 대한 고민은 이전 필름 사진 작업과 영상디지털아카이브 운영을 해오던 때부터 절실히 해왔을 것 같다.
=코닥사 파산 뉴스를 보면서 충격을 좀 받았다. 이렇게 디지털 시대가 빨리 올 줄 몰랐다. 코닥 입장에서는 본업인 필름으로 세계를 제패하고 천천히 디지털 작업을 하려 한 건데, 니콘이나 캐논에서 싸고 성능 좋은 디지털 장비들을 생산하고 기술도 발전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코닥이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디지털 세상이 됐다. 코닥의 사례는 자만하지 말고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직접 사진 작업을 했던 입장에서는 디지털이 확실히 여러모로 신속성과 편의성을 줬다. 요즘은 사진을 찍어서 바로 볼 수 있지 않나. 그런데 예전에 1980년대 말인가, 탤런트 이혜숙씨가 나오는 드라마 현장에 사진을 찍으러 간 적 있다. 카메라가 고장난 줄도 모르고 사진이 계속 안 찍혀 3번이나 현장에 간 적 있다. 찍어서 현상해서 보기 전까지는 계속 불안한 시절이었다. 아마 이혜숙씨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나한테 무슨 딴마음이 있어서 저렇게 현장에 자주 오나, 했을 거다. (웃음)

-FIAF 총회에서의 최근 화두는 무엇인가.
=지난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열렸는데, 식민시대의 필름을 원생산국에 돌려주는 것에 대한 심층적인 얘기를 나눴다. 유럽 열강들이 식민 지역에서 찍었던 필름들을 관련국에 돌려주자는 것이 중요한 의제였다. 우리 역시 비슷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해외에서의 ‘발굴’ 작업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올해 총회는 중국에서 열리는데 애니메이션에 관한 특별 세미나가 있다.

-올해 상영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윤곽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9월에 열릴 ‘이두용 감독전’이다. 2009년 모로코 마라케시국제영화제에서 만난 뒤로 꾸준히 얘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용호대련> <분노의 왼발> <돌아온 외다리> 등을 복원, 상영했었는데 이렇게 이두용이라는 이름으로 액션은 물론 토속 시대극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감독전을 연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8월에 일본의 대배우 나카다이 다쓰야가 자료원을 세 번째로 찾는다는 것도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다. 2010년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에 처음 참석했다가 한국의 열정적인 젊은 관객에게 크게 감동해서는 해마다 한국을 찾고 있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나카다이 다쓰야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대표작 15편 정도를 모았다.

-현재 닥쳐 있는 업무들이 있다면.
=2009년에 테드 코넌트 감독이 한국 관련 소장품의 일부를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에 기증했었는데, 컬럼비아대학 한국학센터의 초청을 받아 ‘한국전쟁과 전후’라는 심포지엄에서 ‘테드 코넌트 컬렉션의 영화적 기억을 중심으로’라는 관련 발표를 하게 됐다. 그리고 4월 말에는 FIAF 총회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다. 아, 그리고 당장 다음주 3월7일부터 이틀간 <청춘의 십자로>(1934)의 등록문화재 지정을 기념해 무료로 변사 공연을 개최한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 있다면 많이들 왔으면 한다. 그렇게 영상자료원을 영화인들만의 것이 아닌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명소’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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