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선배 기자를 따라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 막바지 촬영현장에 간 적이 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스무명 남짓한 고구려군이 단체로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게 아닌가. 크랭크업을 며칠 앞두고 강행군을 했거니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사람을 가장한 더미(Dummy: 영화에 쓰이는 대역인형)였다. 말로만 듣던 특수분장사 LCM 이창만 대표의 솜씨를 두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와의 만남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3월4일 이창만 대표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3살. 원체 말이 없는 성격인 데다가 자신 때문에 영화 진행에 차질을 빚을까봐 그는 마지막까지 동료 영화인들에게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그였지만 작업에 대한 욕심은 누구 못지않았다고 한다. 1993년 특수분장 일을 시작한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하게 된 건 남기웅 감독의 2000년작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부터였다. 이후 그는 <알포인트>(2004), <범죄의 재구성>(2004), <오로라 공주>(2005) 등을 거쳐 최근의 <차우>(2009), <페스티발>(2010)까지 스릴러, 공포 등 총 40편이 넘는 수많은 장르영화에서 더미 기술을 비롯해 프로스테틱 메이크업(Prosthetic make-up: 얼굴이나 몸에 보형물을 덧붙이는 것) 같은 고난이도 기술 등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한국 특수분장계에 큰 이정표를 세웠다. <범죄의 재구성>의 이석원 프로듀서는 “특히 프로스테틱 메이크업이 아니었다면 박신양씨의 1인2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게 벌써 10여년 전 아닌가. 당시만 하더라도 그렇게 완벽하게 분장하는 사람은 없었다”며 “매일 5시간 동안 배우를 분장했는데 말없이 작업에 열중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그를 떠올렸다. <페스티발>의 이해영 감독은 이창만 대표에게 늘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득하다. 이해영 감독은 “영화에 등장하는 리얼돌은 이야기의 중요 소품이었다. 제작비도 많이 못 드리는 주제에 까다롭게 요구했다. 그때마다 그는 웃으면서 하겠다고 했다”며 “50kg가 넘는 리얼돌 더미를 매번 등에 업고 현장을 찾아오던 그가 떠오른다.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고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평양성>(2011) 두편을 함께 작업한 이준익 감독은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특수분장 작업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 이창만 대표는 “새로운 상상력이 있는 작업”이라면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독립영화도 가리지 않았다. <가발> <세븐 데이즈>의 원신연 감독이 입봉하기 전에 만든 <세탁기>에 참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이처럼 한국영화와 충무로는 그에게 너무나 큰 빚을 졌다. 그의 죽음만큼이나 그의 손길을 거친 특수분장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이창만 대표의 유작은 올해 6월 개봉하는 김태경 감독의 <미확인 동영상>이다. 김태경 감독은 “귀신 분장은 매우 어렵다. 자칫 웃음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만 대표의 분장 덕분에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라고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이창만 특수분장, 더미 제작 주요 필모그래피
<미확인 동영상> (2012)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2011)
<평양성>(2011)
<이층의 악당>(2010)
<페스티발>(2010)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이태원 살인사건>(2009)
<작전>(2009)
<차우>(2009)
<마린보이>(2008)
<므이>(2007)
<세븐 데이즈>(2007)
<구타유발자들>(2006)
<가발>(2005)
<오로라 공주>(2005)
<범죄의 재구성>(2004)
<알포인트>(2004)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