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무겁고 눅진한 시대의 공기가 스며 있다 <마이 백 페이지>
2012-03-14
글 : 윤혜지

영화는 1969년 도쿄대 야스다 사건 직후의 텅 빈 강당을 훑으며 시작된다. 몇년 뒤, <도우토 저널>의 신입기자 사와다(쓰마부키 사토시)는 시대정신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의 눈이 될 것인가, 이성적인 저널리스트가 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다. 사와다는 취재차 무장투쟁조직의 간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우메야마(마쓰야마 겐이치)를 알게 되고, 만남이 거듭되면서 사와다는 그와 가까워진다. 결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우메야마는 정작 ‘진짜 모습을 보이라’는 요구에는 반박하지 못한다. 주변에 휘둘리기만 할 뿐 먼저 나서서 단호하게 행동하지 않는 사와다는 언제나 뒤에 조금 처진 채로 남겨진다. 우메야마는 “행동하지 않는 조직은 의미가 없다”고 외치며 동지들을 압박해 사고를 치고, 사와다는 점점 과격해지는 우메야마를 보면서 기자로서의 신념에 대해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전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가와모토 사부로의 경험담을 기록한 논픽션 소설 <마이 백 페이지: 어느 60년대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혁명의 격랑에 휩쓸려 망가져버린 두 청년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감독의 전작 속 인물들에 비해 <마이 백 페이지>의 청춘은 우울하다. 그들의 움직임엔 무겁고 눅진한 시대의 공기가 빈틈없이 스며 있다. 청년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워야 한다. 그래서 전공투 세대인 사와다와 우메야마의 방황하는 모습은 2012년 청년들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왜 나는 그 녀석을 믿어버린 걸까? 믿고 싶었던 걸까?” 멀리 와버린 뒤에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사와다의 중얼거림이 공허하다. 둘의 손에 끝까지 닿지 못한 ‘진짜’는 어떤 모습인가. “살아 있으면 됐지”라는 한마디에 터져나오는 눈물은 정말 ‘제대로’ 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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