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행복한 삶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 <해로>
2012-03-21
글 : 이주현

“삶이 즐겁다면 죽음도 그러해야 한다. 그것은 같은 주인의 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해로>는 미켈란젤로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민호(주현)와 희정(예수정)은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부부다. 함께 살면 닮아간다는데 이 부부는 그렇지 않다. 꽃가게에 들른 민호는 만개한 꽃들을 보며 “시들면 쓰레기가 될 텐데 왜 꽃들을 사가는지 모르겠다”고 에둘러 아내에게 핀잔주는 무뚝뚝한 남편이다. 희정은 “난 여기가 그렇게 좋더라”라며 남편을 먼저 집에 돌려보내지만 정작 삼시 돌솥밥을 지어 내놓는 지극정성 아내다. 그러던 어느 날 민호가 심장병으로 쓰러진다. 금방 퇴원을 하지만 이후 부부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는 것을 깨닫고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희정에게 먼저 당도한다. 췌장암 말기. 희정은 길어야 2개월을 더 살 뿐이라고 선고받는다. 그때부터 부부는 항암치료의 고통스런 시간을 함께 견뎌낸다.

<해로>는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귀결될지 계속해서 암시를 던진다. 일단 쓸쓸한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고 계절도 겨울이다. “이번 겨울은 길 것 같네. 난 겨울이 싫은데” 같은 희정의 대사는 직접적이다. 또 며칠 전까지 쌩쌩하던 민호의 친구는 새벽 등산길에 갑작스레 죽음을 맞는다. 모든 정황이 죽음을 예고하는 가운데 영화는 죽음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야 한다면 남겨진 사람과 먼저 떠나는 사람 중 누가 더 슬플까, 이승에서의 행복했던 삶을 고이 간직한 채 한날 한시에 떠나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행복한 삶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한다. 그러나 가슴 뭉클한 얘기임에도 눈과 가슴 모두 뜨거워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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