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어머니
2012-04-02
글 : 문석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이소선 여사의 유머 감각이 번뜩일 때다. 이를테면 이런 대화.
전태삼(전태일의 동생): “저 개는 왜 여기에 오줌을 싸?”
이소선: “개도 오줌을 싸야 살지.”
전태삼: “자기 집에서 싸야지.”
이소선: “아 그러니까 개잖아. 자기 집에 싸면 개가 아니지.”

지인이 이소선 여사의 피부가 좋다고 칭찬하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인: “그 연세 잡숫도록 피부가 이렇게 깨끗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전태삼: “아이고 어머니 참 모르세요. 내가 얼마나 관리를 했길래 (이렇게) 예쁘게 생겼겠어요.”
지인: “그건 내가 인정해.”
이소선: “아따 내가 낳을 때부터 네가 관리했냐?”

그러니까 <어머니> 속 이소선은 ‘여사’라기보다 정말 ‘어머니’에 가깝고, 그보다는 ‘엄마’에 더 가깝다. 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내내 큰어머니를 떠올렸다. 큰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큰어머니는 봉제공장을 다니면서 4남매를 억척스럽게 키웠다. 노동운동을 하시지야 않았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억센 기운을 갖고 계시던 분이었다. 큰어머니 또한 유머의 촉이 예리했는데 그건 어쩌면 세파에 맞서는 나름의 처세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극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인다면 4남매의 둥지로서 어찌 버틸 수 있었겠는가. 모든 노동자를 자식으로 거느렸던 이소선 여사의 경우도 그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어머니>는 삶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이소선 여사를 보여준다. 물론 그녀가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 이후 어떤 심정으로 지내왔으며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서 어떻게 역경을 헤쳐왔는지도 묘사되긴 하지만, 고스톱을 치기 위해 동전을 어마어마하게 바꾸어놓는다거나 발목 통증 때문에 고단해하는 보통의 어머니의 모습 또한 상세하게 드러난다. 너무 센티멘털하다고, 또는 너무 그녀의 업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머니>가 가진 겹겹의 결이 외려 감동적이었다. 그럼으로써 이소선 여사는 노동운동가와 인권운동가에만 머물지 않고 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로 와닿는다.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아쉬웠던 점은 전태일 열사를 너무 성자(聖者)화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성자의 반열에 오르면 존경과 경의의 대상이 될지는 몰라도 자칫 찬란하기만 한 화석이 될 수도 있다. <어머니>는 이소선 여사를 보통의 어머니로 ‘끌어내림’으로써 그녀를 살과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만들어 그 체취까지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지난해 9월3일 타계한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모습은 더 슬프고 더 안타깝다. 이번호에 실린 오도엽 시인의 글과 태준식 감독 인터뷰를 읽은 뒤 그녀의 향기를 맡으러 극장에 가보시길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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