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너를 낳았어" <이민자>
2012-04-11
글 : 강병진

“돈도 없으면서 왜 나를 낳은 거야?” 아들의 비난에 아버지는 묵묵부답이다. <이민자>는 모든 자식들의 공통된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힘겨운 대답에 관한 영화다. 멕시코인인 카를로스(데미안 비쉬어)는 불법이민자로 미국에 들어와 정원사로 일하는 남자다. 미국에 함께 왔던 아내는 아들을 낳은 뒤 집을 떠났고, 어느덧 15살이 된 아들 루이스(호세 줄리안)의 주변에는 갱들이 맴돌고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에 어느 날,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가진 돈을 긁어모아 트럭을 산 카를로스는 이제 자신이 사람을 부리며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트럭이 사라지면서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고 아들과 놀러다니려 했던 그의 꿈이 깨진다. 불법이민자라 경찰에 신고할 수도 없는 신세인 카를로스는 직접 트럭을 찾아나서고, 아버지에게 짜증만 내던 루이스도 그와 동행한다.

트럭을 찾으려 거리를 배회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자전거를 찾아 로마를 누볐던 또 다른 부자를 떠올리는 건 당연하다. 이들의 여정이 자신들을 포함한 모든 불법이민자의 삶을 환기시키는 에피소드들 또한 <자전거 도둑>을 연상시킨다. 카를로스와 루이스는 도둑을 찾는 과정에서 더 열악한 삶을 살고 있는 이민자들을 만나고, 서로의 꿈을 질식시켜야만 자신의 꿈을 꿀 수 있다는 각박한 현실을 확인한다. LA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작심한 영화는 이들의 삶과 어둠의 세계를 가까운 자리에 붙여놓는다. 만약 트럭을 찾지 못하면 루이스는 갱단에 들어갈 것이고 카를로스는 병든 노숙자가 될지 모른다. 영화 속의 모든 이민자들은 같은 벼랑 끝에 서 있다. 하지만 <자전거 도둑>이 지독한 현실을 드러내는 데 방점을 찍었다면 <이민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두 부자의 속내를 비추는 영화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 시작하는 건 우연히 멕시코 전통행사를 관람하고,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며 멕시코인으로서의 뿌리를 더듬으면서부터다. 그렇게 아들과 멋진 하루를 함께 보낸 아버지는 결국 아들의 질문에 답한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너를 낳았어.” 좌절감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던 <자전거 도둑>의 부자와 달리, 이들은 절망 속에서도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로 약속한다.

<이민자>는 <뉴문>과 <황금나침반>을 연출했던 크리스 웨이츠 감독의 작품이다. 전작들의 규모가 낯설어 보이지만, 사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어바웃 어 보이>도 있다. 어른과 아이의 교감이라는 테마로 볼 때, <이민자>는 <어바웃 어 보이>보다 관습적이지만 더 성숙하다(로저 에버트는 그가 <뉴문>보다는 <이민자> 같은 영화를 더 잘 만들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추측일 뿐이다.”). 멕시코 스타인 데미안 비쉬어의 담백한 연기 또한 눈에 띄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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