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곤 감독은 3년 전 <시간의 춤>을 만들었다. 쿠바 한인들의 이민사를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시간의 숲>은 지난해 말 케이블 방송 tvN에서 방영된 방송 다큐멘터리다. <시간의 춤>과는 기획 의도와 제작 방식이 다르다. 하지만 <시간의 숲>을 <시간의 춤>의 연작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송일곤 감독은 이번에도 ‘기억을 지우는 시간’과 ‘시간을 만드는 기억’이라는, 풀리지 않는 매듭과 씨름한다.
배우 박용우는 <아이들…> 후시녹음을 끝낸 뒤 일본 가고시마 남단의 섬 야쿠시마로 여행을 떠난다. 땅에 뿌리박은 지 무려 7200년이나 됐다는 전설의 삼나무 ‘조몬스기’를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서다. 한국어에 능통한 일본 배우 다카기 리나의 도움을 받아 야쿠시마 사람들과 며칠을 보낸 뒤, 박용우는 신령한 ‘숲의 노인’ 조몬스기를 만나기 위해 기어코 설산에 오른다. 배우를 앞세운, 흔한 여행 기록처럼 넘겨짚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송일곤 감독은 고요하고 영묘한 숲의 영원한 시간 안에 보잘것없는 인간의 기억을 슬그머니 밀어넣는다. 그리고 지켜본다. 자연의 시간 안에서 인간의 기억은 소멸될까, 복구될까.
죽은 나무의 밑동에서 기어코 자라난 생명의 놀라움만을 반복해서 읊조렸다면, <시간의 숲>은 단조로운 여정의 기록에 그쳤을 것이다. <시간의 숲>은 다큐멘터리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감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은 극영화의 화법에 가깝다. 처음 만났을 땐 어색해하다가 어느새 농담을 나누고 급기야 숨겨뒀던 속내까지 드러내 보이는 박용우와 다카기 리나는 외딴곳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를 치유하는 로드무비의 주인공들을 닮았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지 않고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원망을 떨쳐내지 않고서 긍정을 기대할 수 없다고 조언하는 ‘힐링’ 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