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춤>(2009)에서 쿠바로 떠났던 송일곤 감독이 이번엔 일본 야쿠시마 여행기를 들고 돌아왔다. 4월19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시간의 숲>은 7200년이나 된 신령한 삼나무 조몬스기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박용우, 다카기 리나 두 배우의 짧은 여정을 담았다. 조몬스기의 거대한 시간 앞에서 모든 인간의 고뇌는 하찮고 부질없는 것이 된다고 말하는 이는 두 배우뿐만이 아니었다.
-배우 박용우와의 친분으로 야쿠시마 여행이 시작됐다고 말했던데.
=정확히는 예전에 M&F에서 제작이사로 일했던 백승창 감독이 제안한 <아시아의 영혼>이라는 프로젝트에서 비롯됐다. 타지키스탄, 몽골, 일본 등에 있는 신성한 장소들을 찾아가는 여행다큐멘터리였는데 난 일본쪽에 관심이 많았다. 박용우씨랑은 예전부터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는데, 말을 건넸더니 흔쾌히 가겠다고 하더라.
-여행을 떠나기 전의 박용우는 굉장히 지친 모습인데.
=<아이들…>(2011) 후시녹음을 막 끝낸 상태라 더 그랬다. 여행을 너무 하고 싶었을 텐데, 그런 마음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직 그대만>(2011) 캐스팅이 지지부진해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다. 그 전설의 삼나무를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더라. 실제로 야쿠시마 가서 소지섭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웃음)
-7200년 된 조몬스기를 처음 대면했을 때 느낌은 어땠나.
=조몬스기가 석기라는 뜻이다. B.C. 5천년부터 살고 있었던 나무니까, 엄청난 시간을 살아낸 거다. 그 나무 앞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떻게 죽지 않고 몇 천년씩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야쿠시마는 바람이 많고, 비가 매일 온다. 그런 곳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나무 스스로 몸을 작게 만드는 수밖에 없다. 야쿠시마 삼나무들은 5년에 30cm밖에 안 자란다. 빨리 자라면 빨리 죽는 거지.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에 나무를 많이 잘랐는데 그곳의 삼나무들은 건들지 않았다더라. 사람들이 신처럼 모셨으니까. 야쿠시마는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스탭들을 데리고 삼나무 숲에 가서 직접 스케치를 했다. 온다 리쿠의 소설 <흑과 다의 환상>에도 신성한 나무 조몬스기를 만나러 가는 인물들이 나온다.
-일본 배우 다카기 리나를 박용우와 동행하게 한 이유는 뭔가.
=남자 혼자서 여행하면 재미없지. 지루하잖나. 박용우는 농담도 잘하지만 기본적으로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다. (웃음)
-<시간의 숲>을 보면서 <시간의 춤>보다는 <깃>을 더 많이 떠올렸다.
=<깃>은 <비포 선라이즈>를 너무 좋아해서 만든 영화인데. 낯선 곳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긴장감이 생긴다. 다카기 리나를 끌어들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배우들에게 어떤 주문을 했나. 오늘은 여기 가서 좀 찍자, 가 전부였다. 그래야 숲에서 내가 느꼈던 소리와 냄새들과 기운들을 배우들도 맘껏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우 박용우가 갖고 있는 고민을 좀더 드러냈으면 어땠을까.
=인위적으로 도발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할 경우 여행 에세이라는 애초 기획이 틀어지고 만다. 두 배우가 숙소에서 8시간 동안 고민들을 털어놓는 장면을 찍긴 했는데 <혈의 누> 촬영 에피소드만 제하고 다 빼냈다.
-폴란드 유학 시절에도 여행을 좋아했나.
=100만원짜리 탈탈거리는 고물 벤츠 사서 한달 내내 여행하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단편 <소풍>(1999) 들고 발렌시아영화제 갔을 때다. 비행기에서 스튜어디스에게 가장 좋은 해안이 어딨냐고 물어봤는데 자신이 직접 가이드를 해주겠다면서 개막식 다음날 남자친구와 함께 차를 몰고 왔다. 그들이 데려간 곳은 발렌시아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사군토라는 해변이었다. 낮엔 수영하고, 밤엔 술마시고 노래하고 천국이 따로 없다. 너무 좋아서 1주일 내내 있었다.
-여행다큐멘터리를 계속 찍을 생각인가.
=남미 횡단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이를테면, ‘남미의 소리를 찾아서’다. 일단 방준석 음악감독이랑 지진희씨가 같이 가기로 했고, 다섯명쯤 모이면 2달 정도 안데스 산맥 가서 신나게 놀아볼 계획이다. 당장 떠날 수는 없고, 2년 정도 뒤에.
-신작은 뭔가.
=사극 첩보영화다. 이순신 장군 암살을 막아내려는 비변사 낭청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은 원작(<전쟁의 늪>) 각색 중이다. 부지런히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