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100년간의 꿈 속 모험 <잠자는 숲속의 미녀>
2012-05-03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영화는 서늘한 가위질로 시작된다. 검은 망토를 둘러쓴 노파가 방금 태어난 핏덩이의 탯줄을 싹둑 잘라낸다. 그러고는 사악한 웃음을 흘리며 왕비에게 넘겨진 핏덩이에게 저주를 건다. 공주 아나스타샤(칼라 베사이누)는 16살이 되면 물레 가락에 손을 찔려 죽을 것이라고. 뒤늦게 세 요정이 도착하지만 그들은 저주를 푸는 대신 공주가 6살부터 100년 동안 잠들었다 깨어나도록 새로운 주문을 걸어줄 수 있을 뿐이다. 잠든 여섯살배기는 꿈나라로 떠나고, 그곳에서 피터(케리안 마얀)를 만나 그를 오빠처럼 따른다. 그런데 어느 날 피터가 눈의 여왕에 홀려 집을 떠나고, 아나스타샤도 피터를 찾아 나선다.

그 여정이 수상하다. 흡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 소녀는 연기를 타고 유령 기차역에 도착한다. 그곳의 난쟁이들의 인도로 왕자와 왕자비가 사는 성에 도착하지만 피터는 없다. 이어 집시들의 습격이 이어지고 소녀는 집시 소녀의 도움으로 탈출해 바람을 다스리는 여인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따라 눈밭 한가운데에 있는 빨간 열매를 찾아낸다. 그 열매를 먹자 100년간의 꿈속 모험이 끝난다. 눈을 뜨면 자신을 사내로 착각했던 소녀는 여인(줄리아 아르타모노프)으로 자라 있다. 그리고 그녀 앞에 서 있는 것은 피터가 아닌 그의 손자 요한(데이비드 쇼세)이다. 피터를 향한 아나스타샤의 우애는 어느새 요한을 향한 성애로 변한다. 흰옷의 성녀는 더럽혀지고 영화는 그녀의 찢어지고 구멍 난 검은 스타킹을 비추며 끝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샤를 페로의 동명 원작을 카트린 브레야식으로 재해석한 영화다. <푸른 수염>에 이은 ‘동화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세 번째 작품이 될 <미녀와 야수>를 보지 않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로망스>(1999), <팻걸>(2004), <미스트리스>(2008) 등으로 여성의 욕망에 천착해온 감독이 백옥의 소녀들을 앞세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자가 되는 과정의 고통과 쾌락을 남성의 시선에서 독립해 바라보기’인 듯하다.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쟁반 위에 얹힌 푸른 수염의 목이 그 독립선언이었다면, 아나스타샤의 꿈은 첫 경험을 지연시키며 소녀와 여자의 경계를 통과하는 순간의 희열을 예비한다.

그것은 그러나 남성적 기준에서의 순결의 가치에 여성 스스로의 쾌락을 복속시키는 결과를 낳고 만다. 처녀성을 잃은 아나스타샤, 그리하여 아득한 과거를 벗고 현재를 살기 시작한 아나스타샤를 보며 눈물 흘리는 요한을 보고 있으면 아나스타샤가 남성의 판타지에 포섭된 여성의 욕망의 현신이라는 의심마저 든다. 괘종시계 안에서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조심하라’는 난쟁이의 당부를 되뇌며 누군가가 자신을 데리러오길 기다리는 소녀의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온전히 그녀의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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