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는 다나카 히로유키, 일명 사부 감독의 선택은 의외다. <탄환질주> <포스트맨 블루스> <하드럭 히어로>에서 봐온, 어쩌다 은행강도나 야쿠자의 세계에 떨어진 사내들의 생존기는 여기 없다. 우니타 유미의 만화 <토끼 드롭스>를 원작으로 한 <버니드롭>은 난생처음 만나 함께 살게 된 6살짜리 이모와 27살짜리 조카가 소소한 일상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도로 위를 질주하는 사내들의 굵은 땀줄기 대신 가족의 웃음과 눈물을 담아내는 과정은 어떻게 달랐을까.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은 감독에게 물어보았다.
-원작을 영화로 옮길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원작에 사건이 너무 없어서 처음에는 무척 단조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반복되는 일상 속에 일정한 리듬이 있더라. 그걸 잘 살려보면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줄 것인가가 문제였다. 새로운 요소가 너무 적으면 반복을 보여주는 의미가 없어지고, 너무 많으면 보는 사람이 지치니까.
-사부 하면 질주장면 아닌가. 다이키치(마쓰야마 겐이치)가 린(아시다 마나)을 안고 달리는 장면을 연출할 때 이전 영화에서와 달랐던 점이 있다면.
=다이키치가 달리는 데는 뚜렷한 일상적 목적이 있다. 아이를 제시간에 보육원에 데려다주고 자기도 제시간에 출근하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니까. 그래서 어찌 보면 특별한 달리기는 아닌데 마쓰야마 겐이치가 굉장한 의욕을 보여준 결과 의외로 좋은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을 찍을 때 내가 차로 따라가며 더 빠르게 혹은 더 천천히 달리라고 지시를 내렸다. 근데 마쓰야마가 ‘빠르게’라는 말만 들었는지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는 거다. 그 길이 내리막길이었거든. 옆에서 보면서 얼마나 무서웠던지. 아시다 마나의 웃는 얼굴이 공포감을 줄 정도였다. 마지막에는 마쓰야마도 너무 세게 뛰었다 싶었는지 폭소를 터뜨려서 NG까지 났다. 근데 영화에는 그 테이크를 썼다. 개인적으로 NG 컷을 쓰는 걸 재밌어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웃는 모습에서 연기를 초월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마쓰야마 겐이치가 할아버지 역도 연기했다고.
=회상장면에 나오는 할아버지는 거의 마쓰야마가 연기했다. 굉장히 섬세한 특수분장까지 한 채로. 하지만 그걸 굳이 보여줘서 관객에게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과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다이키치가 사는 집을 포함해 세트를 거의 쓰지 않았던데 공간 묘사에 어떤 공을 들였나.
=원작에 묘사된 대로 다이키치와 린이 함께 놀 수 있는 정원이 딸린 깔끔한 단독주택에서 찍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집에 린이 들어오면서 집 안의 색이나 분위기가 바뀌는 과정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여유 공간도 있어야 하고. 하지만 도쿄에서는 그런 집을 찾기가 어려워서 고생을 좀 했다. 나머지도 일상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세트보다는 밖에 나가서 찍었다. 길도 ‘보통의 맛’이 드러나는 길을 찾아서 찍었다.
-원작에 개인적인 경험을 더한 부분이 있나.
=나도 공원에서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적이 있다. 그럴 경우 당황한 나머지 극도로 긴장하고 흥분한 상태일 것 같잖나. 근데 막상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울고 싶은 심정이 되더라. 그래서 다이키치와 유카리가 없어진 린과 코우키를 찾아다니는 장면에서도 배우들에게 울고 싶은 기분으로 연기해달라고 주문했다.
-가족드라마인 만큼 제작자나 투자자로부터 감동적인 장면에 대한 주문도 받았을 법한데.
=원작 자체에 억지로 감동을 짜내는 부분이 별로 없었고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특별한 감동을 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코우키와 린이 우는 장면을 제작자가 아주 좋아하긴 했다. (웃음)
-두 아이만 나오는 장면인데 연기 지도는 어떻게 했나.
=코우키를 맡은 루이키에게 엄청 크게 울자고 하면서 아시다에게는 네가 그렇게 울 것이라는 사실을 비밀로 하자고 말했다. 그래서 아시다가 너를 보다가 놀라서 같이 크게 울도록 만들자고.
-차기작 계획은.
=요즘 일본에서는 원작이 있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원작을 써서 그걸 영화로 만들 생각이다. 각본을 쓸 때는 예산 때문에 쓰고 싶은 걸 다 쓸 수 없었는데 소설에는 자유롭게 쓰고 싶은 것들을 모두 써넣을 수 있어서 아주 좋더라.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