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소로 들어선 그의 얼굴이 여전히 개구지다. 항상 웃음기가 어린 얼굴은 10여년 전 데뷔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천진하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얼마간 차분하고 복잡한 뉘앙스가 더해졌다. 스물의 잔상이 남은 서른의 얼굴, 소년의 잔상이 남은 남자의 얼굴이다. ‘소년이 남자가 되다.’ 이른 나이에 연기를 시작한 남자배우가 어느 시점에 이르면 반드시 한번쯤 듣게 되는 말이다. 그래서 그만큼 닳은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돈의 맛>의 윤철로 돌아온 배우 온주완의 변곡점을 이야기하자니 그만한 관용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입대 전 그는 방황하는 10대의 초상이었다. 출발선에는 <발레교습소>의 백댄서 지망생 이창섭이나 <태풍태양>의 인라인 스케이터 쨍이 있었다. 두 영화에서 그는 높은 하늘 위로 두둥실 떠가는 꿈을 올려다보며 때로는 세상을 때로는 자신을 원망하는 새파란 젊음을 연기했다. <피터팬의 공식>의 수영선수 김한수의 사정은 좀더 울적했다. 자살을 기도한 어머니의 짐을 대신 짊어진 채 전국체전 금메달로도 채울 수 없을 허무의 늪에 빠진 열아홉 소년에게 엄혹한 현실을 밝혀줄 등대는 아득했다. 이후 <해부학교실> <무림여대생>에서 대학에 들어가긴 했으나 그의 보금자리는 아직 어떤 울타리 안이었다.
그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세상은 자본가들의 혈투가 난무하는 시뻘건 피바다다. “어른들의 세계에 입성한 거죠”라고 그는 말한다. ‘청소년기’는 이제 지나갔다고 못까지 박는다. 2년2개월. 공군으로 남들보다 “조금 길게” 다녀왔다는 그가 마음에 새겨진 나이테를 또렷하게 드러내보였다. <돈의 맛>으로 ‘성인 연기’의 맛을 알게 됐다는 그에게 그 맛에 대해 물었다.
복귀의 맛
-영화 현장에 돌아오니 어땠나요.
=부모님이 계신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편안했어요.
-제대 전에 생각이 많았겠어요.
=군대에 있다 보면 오만 생각이 들잖아요. (웃음) 입대 전에 운이 좋아 주연도 맡았었지만 돌아올 때는 날 찾아주는 곳이 있다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가리지 말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기다렸어요.
-복귀작으로 영화가 아닌 드라마 <내사랑 내곁에>를 선택했어요.
=제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기에 영화보다는 드라마가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50부작짜리를 골랐고요.
-<돈의 맛>에는 오디션 없이 캐스팅됐다고 들었는데 미팅 때 임상수 감독과 어떤 부분이 통했나요.
=저는 잘 몰라요. (웃음) 드라마 촬영 끝나고 1주일 뒤에 감독님이 미팅을 하고 싶어 하신다기에 나갔어요. 대뜸 리딩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리딩을 시켜봐야 할 정도로 내 연기가 별로였나 싶었어요. 근데 두 번째 미팅 때 감독님이 옆에 계신 조감독님께 “주완씨는 첫 촬영이 언제지?”라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얼결에 하게 된 건가, 하게 된 것 같은데, 하게 됐네, 이렇게 된 거죠. (웃음) 어쨌든 저를 영화판에 다시 돌아오게 해주신 분이 <바람난 가족> <그때 그사람들>을 찍은 감독님이라는 사실이 영광스럽고 감사해요.
<돈의 맛>의 맛
-윤철을 연기하면서 임 감독님께 가장 많이 받은 주문이 뭔가요.
=“젠틀하게”였어요. 처음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젊은 재벌들의 재수없는 눈빛이나 말투 같은 것을 준비해갔어요. 근데 감독님께서 바로 “그거 아니야. 젠틀하게, 친절하게, 예의 바르게”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젠틀함이 아주 투명해 보이지만 실은 거기에 반사돼서 전혀 젠틀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고 예의 바르지 않은 속이 보여야 했던 거죠.
-그래서 윤철의 표정에 많은 변화를 주지 않은 면도 있나요.
=실제로 재벌가들에 관한 영상을 찾아보니까 그분들은 5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표정이 한결같으시더라고요.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로요. 윤철도 이 영화에서 한번도 인상 쓰지 않았어요.
-영어 대사가 제일 많았어요.
=심지어 매일 현장에 가면 대사가 조금씩 바뀌었어요. 한국말로 연기를 하면 “나는 아침에 밥을 먹었다”를 “나는 밥을 먹었다, 아침에”로 바꿔도 금방 나와요. 근데 영어 대사는 억양부터 하나하나 새로 체크해 연습해야 해서 애먹었어요.
-임 감독과 김우형 촬영감독의 협업방식이 콘티 없이 당일에 카메라 위치부터 많은 것을 결정하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배우에겐 고도의 유연함이 요구되는 방식인 만큼 불안할 때는 없었나요.
=유연함은 필요했지만 불안하진 않았어요. 감독님의 주문이 잘 납득이 안되면 다른 제안을 해볼 수도 있잖아요. 근데 임상수 감독님한테는 어차피 그게 안 통해요. 그냥 유연해지는 게 최고예요. 재밌게 해보려고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려도 바로 “형, 하지 마”라고 하세요. 그때 고집부려봤자 편집돼요. (웃음)
-임 감독의 범상치 않은 주문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렇게 말한 적도 있어요. “저 그대로 따라할 거예요. 지금 감독님의 말투, 억양, 표정까지 전부 그대로! (웃음)”
-주영작을 한방 먹인 캥거루 권법도 그런 주문 중 하나였을 것 같아요.
=저도 남자니까 멋있게 싸우고 싶었죠. 근데 감독님이 갑자기 주완씨 주먹을 이렇게 쥐어봐, 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이렇게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했어요. 근데 있다는 거예요! 주완씨가 의심할 거 같아서 내가 보여주는 거예요, 라며 동영상까지 보여주셨어요. 봤더니 아마추어 복서들이 정말 그렇게 싸우더라고요. 그게 이렇게 빵 터지는 장면이 될 줄 몰랐죠. 찍을 때는 별로 재미없었어요. 엄청 진지하게 싸웠기 때문에. (웃음)
조화의 맛
-그 장면에서만큼은 영화 내적으로는 윤철이, 외적으로는 온주완이 ‘위너’인 셈이었어요.
=그렇진 않아요. 그 신에서 윤철의 역할은 주영작이라는 캐릭터의 다음 액션을 이어주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래야 주영작이 나미한테 사실 백금옥 여사랑 ‘퍽’했다고 고백도 하고 장례식장에서 전보다 가벼워진 얼굴로 나타날 수 있잖아요. 이 영화에서 윤철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네 주인공들의 갈등이나 감정을 밀어주고 폭발시켜주는 거였어요.
-그러고 보면 데뷔작부터 앙상블 연기에 능했어요.
=전체적인 앙상블은 감독님이 봐주시니까 전적으로 감독님께 의지해요. 예를 들어 이 카페 분위기가 유럽 빈티지풍으로 생겼는데 갑자기 플래티넘 테이블이 들어오면 이상하잖아요. 제 연기가 그 플래티넘 테이블처럼 보이면 안되잖아요. 얼른 나무 테이블로 바꿔야죠.
-입대 전 <피터팬의 공식>에서 주연을 맡았을 때 주연으로서 영화 전체의 앙상블에 기여하려 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주연은 현장에서 지치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저보다 스탭들이 체력적으로 훨씬 피곤하잖아요. 그들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들 앞에서 희극인이 되려고 했어요. 주연급이 되면 차 안에서 대기하는 배우도 많잖아요. 저는 못 그래요. 불편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까불어요. (웃음)
-현장에서 예쁨을 많이 받는 편이겠어요.
=가끔 감독님들이 “주완씨는 다음 작품에도 꼭 쓸 거야”라고 하세요. 솔직히 안 쓰셔도 좋아요. 그냥 그 말이 힘이 돼요. 전쟁에 나가는데 벌컨포를 등에 짊어지고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행복의 맛
-연기보다 춤을 먼저 배웠고, 서울예대도 무용과에 가려다 방송연예과에 갔어요. 몸으로 무언가를 하는 걸 좋아하나요.
=그런 편이에요. 쉴 때도 여름이면 웨이크보드, 겨울에는 스노보드를 타요. 아니면 아버지 일하시는 데 가서 도와드려요. 엔지니어시거든요. 일당도 쳐주세요. 5만원.
-학교는 여전히 휴학 중이라 들었어요. 제도적인 연기 교육을 신뢰하지 않는 편인가요.
=연기는 어디까지나 자기 얼굴과 자기 몸으로 표현하는 거잖아요. 사람마다 눈 크기도 다르고 입 모양도 다르잖아요. 쓸 수 있는 근육이 다르다는 건데 잘한다고 남 따라하려고 하면 어색한 것 같아요. 제 거 잘하고 싶어요.
-여러 인터뷰에서 배우를 하는 이유가 ‘행복’하고 싶어서, 라고 했어요. 행복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나요.
=그게, 행복‘하려고’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하니까’ 사는 게 진짜 행복이라는 의미로 한 말이에요. 지금 괴로우면 20년 뒤에도 괴로운 거잖아요. 지금 이 햇살과 여유로움에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얼 해도 행복해질 수 없는 것 아닐까 싶어요.
-낙천적인 것 같아요.
=마인드 컨트롤에 강해요. 아무리 짜증나도 30분이면 털어내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