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
[클로즈 업] “가장 힘든 건 늘 다음 작품”
2012-06-05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마다가스카3: 이번엔 서커스다!>를 제작한 드림웍스의 한국인 애니메이터 송정진, 김정현
김정현, 송정진(왼쪽부터).

<마다가스카3: 이번엔 서커스다!>(이하 <마다가스카3>) 프로모션차 서울에 온 드림웍스 스튜디오의 한국인 애니메이터 송정진, 김정현씨는 얼마 전 모교인 상명대와 서울대를 찾았다. 두 사람이 학교 후배들을 위한 일일 특강에 나선 것이다. <마다가스카3>에서 라이팅(Lighting, 극영화의 조명에 해당)을 맡은 송정진씨는 “서양화를 전공했고, 영어를 거의 못하는데 드림웍스에 갈 수 있을까요?”라는 한 학생이 던진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서양화는 애니메이션의 기본이고,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실력만 있으면 된다. 매년 영어를 잘 못하는 유럽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드림웍스의 문을 두드린다. 쫄지 마라. (웃음)” 맞다. 아래 인터뷰는 드림웍스에서 쫄지 않고 여러 편의 애니메이션을 작업하고 있는 라이팅 파트의 송정진씨, 캐릭터에 일일이 생명을 부여하는 테크니컬 디렉터 김정현씨의 <마다가스카3>와 드림웍스 스토리다.

-프로모션차 서울을 방문했다. 어떤가.
=(두 사람 동시에) 너무 재미있다.

-뭐가 재미있나.
=김정현_인터뷰를 하면서 그동안 뭘 배웠고 뭘 얻었는지 다 쏟아내니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닫게 됐다. 과거의 긴 시간을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송정진_예전에 관련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한 적도 있고, 몇년 전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심사와 멘토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모션차 서울에 와서 인터뷰하는 건 나를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마다가스카3>의 주인공들은 유럽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닌다. 한 도시가 아닌 여러 도시를 표현해야 한다는 게 도전이었을 것 같다.
=김정현_맡은 파트가 테크니컬 디렉터다. 모델링 팀에서 만든 캐릭터들을 전달받으면 캐릭터에 일일이 생명을 부여해야 한다. 보통 한번 썼던 캐릭터를 다른 시퀀스에 재활용하는데, 이번에는 도시마다 사람들의 생김새와 의상, 피부 톤이 다르다보니 그게 불가능했다. 가령, 런던 사람들은 피부가 창백하면서도 하얗고, 어두운 의상을 주로 입는다. 반면 모나코 사람들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카지노 안에서는 드레스와 슈트를 갖춰 입는다. 극중 계절적 배경이 가을인 뉴욕은 브라운 계통의 긴 팔과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많고.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도시 사람들을 일일이 만들어야 했다. 이건 드림웍스 역사상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었다.
송정진_라이팅도 마찬가지다. 도시마다 빛이 다르다. 모나코는 햇빛이 강렬하고 전체적으로 오렌지 톤이 강하다. 반면 로마는 오래된 도시 느낌이 나야 하고. 런던은 런던대로 색감이 다르고. 전작보다 일이 훨씬 많았다.

-로케이션 헌팅 때 톰 맥그래스 감독과 주요 스탭이 찍어온 수천장의 로케이션 사진이 도움이 됐나.
=송정진_그 사진을 토대로 아트 디렉터가 아트 키(Art Key)를 정한다. 각 도시 건물의 색깔과 특징, 캐릭터의 특징 등 비주얼 스타일 가이드가 아티스트들에게 기준이 된다.
김정현_아트 디렉터가 속한 아트 디파트먼트(Art Departmaent)의 역할이 중요하다. 애니메이션이라 캐릭터에 의상을 입힐 때도 사진에 찍힌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실제 풍경 중 주요 특징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부분을 부각하는 게 아트 디파트먼트의 역할이다.

-도시별로 사람들의 성격이 분명한 캐릭터 작업에 비해 조명은 그 도시에 직접 가보지 않은 이상 감을 잡기가 어려울 것 같다.
=송정진_라이팅 역시 아트 디파트먼트에서 정해준 라이트 키(Light Key)가 있다. 라이트 파트 아티스트 역시 그 키를 기준으로 작업한다. 도시마다 컬러 스타일이 다르다. 가령, 모나코는 강렬한 파란색이 많이 들어가고, 도시 빌딩은 아주 눈이 부시다. 그림자 역시 어두운 색이 아닌 푸른색 계통이다.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그 키 안에서 각 도시의 특성을 강조한다. 어떤 점에서 애니메이션의 라이팅은 색 작업인 셈이다.

-서커스가 이번 시리즈의 하이라이트다.
=김정현_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서커스의 모습이 있잖나. 서커스가 재미있는 이유는 사람이 물리적인 법칙을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걸 그대로 애니메이션에 펼쳐놓으면 재미가 없다. 사람들은 CG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그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초현실적인 서커스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카메라의 움직임, 무대 디자인, 조명 움직임 등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서커스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송정진_거대한 코끼리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날아다니며 불을 내뿜는 것처럼 말이다. (웃음) 그것도 3D로.

-주인공의 유럽 여행과 기상천외한 서커스와 관련해 감독이 전체 아티스트들에게 주문한 것이 있나.
=김정현_기술과 관련한 특별한 말은 없었다. 위에서 말한 아트 키가 있으니까. 다만, 항상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다. “인생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다.” 이번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매번 가려고 하는 곳에 가지 못하고 사건들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사랑하고, 싸우고, 실패한다. 그게 인생이라고. 작업이 끝난 뒤 그 말이 기억에 남더라.

-어떤 점에서 이번 시리즈는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간 작업일 것 같다.
=송정진_그렇다. 그러나 다음 작품은 더 많은 힘이 들어갈 것이다. 서울에서 가진 인터뷰 때마다 가장 힘든 건 “다음 작품”이라고 말했다. 테크놀로지가 항상 발전하고, 매번 새롭고 더 큰 걸 시도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메가마인드> 때 도시를 자동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시스템화했는데 이번에는 하나가 아닌 여러 도시를 하는 거잖나.
김정현_테크니컬 디렉터로서 매번 드림웍스가 하는 새로운 시도가 상당히 불편하고 짜증난다. (웃음) 지난 6년 동안 여러 작품을 하면서 한번도 같은 방법으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이번 영화를 통해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그 방식을 다음 작업 때 써먹으면 편하고 안정적인데, 드림웍스는 그렇게 작업하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모든 팀이 모인다. 그때 다른 영화 작업 이야기와 정보 그리고 기술을 서로 주고받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다른 작업할 때 시도한다. 그게 성공하면 그다음 작품 때 또 다른 걸 시도하고. 그런 태도가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

-드림웍스는 어떻게 들어갔나.
=김정현_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교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전공 1학년을 다니던 중 드림웍스에서 인터뷰하러 왔다. 미국에서는 드림웍스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들이 대학을 돌아다니며 회사 설명회를 하고, 관심있는 학생을 인터뷰한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드림웍스에 갈 생각은 안 했고 1학년이라 영어 인터뷰 연습을 해야겠다 싶어서 인터뷰를 했다.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지만 취미가 그림을 그리는 거였는데, 드림웍스가 그걸 흥미롭게 본 것 같다.
송정진_대학 시절 조각과 조소를 전공했다. 원래 뭐든지 금방 싫증을 내는 성격인데, 대학 졸업할 때쯤 순수미술에 조금 싫증이 났다. 어떻게 벌이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했고. 만화책과 영화 보는 걸 매우 좋아해서 컴퓨터가 생소했던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비주얼아트 스쿨에서 컴퓨터 아트, 3D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지인의 소개로 학교에 다니던 중에 뉴욕의 한 멀티미디어 게임회사에 들어갔고, 닷컴(.com) 열풍이 불 때 다니던 회사가 닷컴으로 방향을 바꾸자 드림웍스, 픽사에 지원했다. 두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았지만 먼저 제안한 드림웍스에 가기로 결정했다.

-입사하자마자 맡은 첫 작업은 뭐였나.
=김정현_지금은 디파트먼트 소속 아티스트지만 누구나 그렇듯 입사하자마자 엔트리(Entry) 부서에서 적응 기간을 가진다. 처음 한 작업은 나무였다. 슈렉이 지나갈 때 나무가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흔들리는지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작업한다. 그런 작은 요소 하나가 스토리를 돕고, 전체 극 분위기를 만들고, 보는 사람들이 어색하지 않게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송정진_<슈렉>이 극장 개봉한 주에 입사했다. 극장 상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DVD 출시를 준비하는 일이다. 공룡에 먹힌 키 작은 왕자가 공룡 뱃속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2번째 디스크 부가영상에 들어가는데, 그게 첫 번째 맡은 임무였다. 난쟁이 왕자 혼자 촛불 들고 뱃속에서 노래하는 단순한 장면인데, 드림웍스 라이팅 프로그램 툴이 복잡해서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연말에 <슈렉> DVD가 출시돼서 손에 쥐어졌을 때 기분이 묘하더라.

-이후 두 사람은 <메가마인드> <드래곤 길들이기> <마다가스카2> <슈렉3> <몬스터 vs 에이리언> 등 많은 애니메이션을 작업했다. 다음 도전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김정현_<피버디 앤드 셔먼>(Mr. Peabody & Sherman)으로, 똑똑한 소년과 강아지가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다. <마다가스카3>가 동시대 유럽의 도시를 여행했다면 이번에는 과거의 시간대를 여행한다. 더 많은 종류의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한다.
송정진_역시 <피버디 앤드 셔먼>에 합류한다. 그전에 드림웍스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라이즈 오브 더 가디언스>(Rise of the Guardians)팀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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