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design+] 리플리컨트 vs 데이빗8
2012-06-29
글 : 박해천 (디자인 연구자)
<프로메테우스> 웨일랜드사의 간략한 역사
<프로메테우스>의 데이빗

21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인력-대체물 시장은 타이렐사의 독무대였습니다. 이 기업은 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의 탁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리플리컨트’라고 불리는 복제인간을 양산해 우주 식민지 개척에 나선 군산복합체에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이 되자 이 기업에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던 것입니다. 환경프로세서 시스템을 개발해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뚜렷한 성과를 거뒀던 뭄바이 태생의 영국인 천재 과학자, 피터 웨일랜드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벤처 기업의 사업방향을 인력-대체물 시장으로 확장하면서 ‘데이빗’이라는 안드로이드 로봇을 개발했습니다. 사이버네틱스, 내골격 메커니즘, 합성피부 등과 관련된 첨단기술을 집대성한 결과였습니다. 그동안 구글에 의해 스크린 안에 감금되었던 인공지능이 현실 세계로 뛰쳐나와 제 몸을 가지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에 따라 시장도 타이렐사와 웨일랜드사의 대결 구도로 재편되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진행된 이 경쟁의 최종 승자는 웨일랜드사였습니다. 2042년 군산복합체만이 접근 가능했던 인력-대체물 시장을 민간 소비자에게도 개방하기로 한 연방정부의 결정이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타이렐사는 리플리컨트를 통제하기 위해 유전적으로 생명주기를 프로그램했지만 제품이 감정을 느끼고 자유의지를 획득하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습니다. 반면 웨일랜드사는 로봇의 정보처리 과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로봇은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복잡한 연산을 거쳐 어느 정도까지 사용자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지요. 요약하자면 타이렐사의 복제인간이 반골 기질의 근력 좋은 노예였던 반면, 웨일랜드사의 로봇은 탁월한 지능을 갖춘 친절한 집사였다고 할까요? 승부는 뻔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하향곡선을 그리던 타이렐 왕국은 결국 2045년에 경쟁사에 합병되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웨일랜드사의 독점적 지위가 확고해진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피터 웨일랜드가 이 합병을 추진했던 진짜 이유는 타이렐사가 특허로 보유한 가상기억 이식기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 기술을 이용하면 감정을 느끼는 로봇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놓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물론 이 기술을 활용해 꿈 재생 장치를 개발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긴 했습니다만 본래의 야심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웨일랜드사는 최초의 데이빗을 개발한 지 60여년이 지난 뒤 궁극의 로봇이라고 평가받는 8세대 모델을 발표합니다. 설계 과정에 참여한 웨일랜드는 <아라비아 로렌스>의 주연배우였던 피터 오툴을 모델로 삼아 이 로봇의 외형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렇다면 합병 이후 타이렐사의 리플리컨트 복제 기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웨일랜드사는 특정 계층의 고객들에게 예약 주문 형태로 뛰어난 성적 기능을 갖춘 여성 리플리컨트를 소량 생산, 판매했습니다. ‘레이첼’이라는 타이렐사의 이전 모델을 발전시킨 이 제품은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특정 패턴의 이미지가 망막에 맺히면 반사적으로 “파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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