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며 그 안에 등장하는 음식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수도 없이 많다. <걸어도 걸어도> 초반 일본 가정식 요리를 만드는 장면을 봤을 때 당장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고, <음식남녀>의 수많은 요리를 볼 때는 ‘앞으로 평생 중국 음식만 먹으리라’고 다짐하며 참아내야 했으며, <줄리&줄리아>를 보면서는 ‘저 음식들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라는 자기최면을 걸어야만 버텨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영화 속 모든 음식을 탐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에 등장하는 ‘구두 스튜’나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원숭이 해골 요리까지 먹고 싶진 않다. 물론, 어떤 맛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를 볼 때였다. 40대 유부남과 30대 유부녀가 보내는 하룻밤을 담은 이 영화를 나는 식사를 거른 채 봤는데 그게 실책이었다. 섹스를 마친 남녀가 허기지다며 야참을 시켜먹는데 하필 왜 메뉴가 비빔국수란 말인가. 영화 속 남녀가 비빔국수를 후루룩 집어넣은 뒤 그 안에 든 무를 오독오독 아삭아삭 씹어먹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목은 연신 꿀꺽거렸고 뱃속은 요동쳤다. 저 비빔국수에 든 무나물은 빨갛게 양념됐을까 혹시 열무김치도 들었을까, 면은 얼마나 삶았을까, 양념은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몇 대 몇으로 배합했을까 등 머릿속은 비빔국수가 먹고 싶다는 열망으로 꽉 들어찼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한 일은 비빔국수를 만드는 것이었다(불행히도 내가 만든 그날의 비빔국수는 먹어본 중 최악의 맛이었다).
영화를 보며 그 속에 나오는 요리 때문에 몸부림친 뒤 보란 듯 그 요리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던 경험이 있는 이라면 당장 특집기사로 향하라. 5명의 요리 전문가 또는 고수들이 영화 속 그 요리를 직접 만들어 여러분 앞에 내놓을 터이니. 여기에 제시된 레시피를 따른다면 좌절의 맛을 감당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오븐이 없어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레몬머랭파이는 못 만들겠지만, 박찬일 셰프의 조언을 따라 <빅 나이트>의 프리타타 정도는 꼭 해먹어볼 생각이다.
음식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꿔놓은 영화도 있다. 내겐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패스트푸드 네이션>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공장식 농축산 시스템과 패스트푸드의 상관관계를 알게 했고 이젠 그 깨달음을 실천하려 노력 중이다(관심이 있다면 같은 제목의 책을 꼭 보시길). 되도록 고기를 덜 먹고 먹더라도 지역조합에서 생산된 고기를 먹고 패스트푸드는 안 먹는 것. 여기서 죽 나아가면 몬산토나 타이슨, 카길 같은 글로벌 독점기업을 증오하기까지로 이어진다. 먹을 것 갖고 돈 벌려고 장난치는 애들은 혼내줘야 한다. 세상에 먹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가 또 있냔 말이다.
PS. 아, 그리고 혹시 맛있는 비빔국수 레시피를 알고 계신다면 제보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