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씨를 파리에서 만났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그런 건 아니고 그런 척하고 한번 써봤습니다. 대부분 우디 앨런씨가 한 말들과 기존의 사실들을 고려하며 썼습니다만 거기에서 벗어나는 내용도 있으니 때론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웬 소설을 쓰고 있느냐고요? 맞습니다. 우디 앨런씨의 단편소설 느낌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이제 곧 개봉하는 우디 앨런씨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12시만 되면 1920년대의 파리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 당대의 예술가들과 놀고 사랑하는 2010년의 어느 미국인 여행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라고 해서 우디 앨런씨와의 만남을 상상해보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여 그를 만나지 않고도 그를 만났습니다.
우디 앨런씨가 한국말을 중얼거리는 걸 목격했다는 사람들이 전에도 더러 있기는 했다. 대개는 “엄마…, 여자…, 오늘밤 뭐 하세요…” 같은 말들을 얼핏 들었다고 했다. 부인 순이씨에 대한 애정이 병적으로 지나쳐서 안 배워도 되는 한국말까지 배웠을 거라는 해석도 뒤따랐다. 어쨌거나 그 목격자들은 UFO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부류로 취급되었다. 얼마 전 파리에 갔던 <씨네21>의 한 기자가 모네의 <수련>이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을 찾다가 실패하고 허탈한 마음에 인근 콩코드 공원 구석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중 옆에 앉아 책을 보는 척하면서 여자들의 다리만 훔쳐보는 70대의 깡마른 백인 노인이 우디 앨런씨인 걸 알아차려 말을 걸기 전까지는 말이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한번 말을 시작한 우디 앨런씨는 결코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요,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요. 약속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 반갑소. 10년 전 <할리우드 엔딩> 때였던가. 당신들이 보내온 서면 질문지에 내가 성의없이 답했던 거 기억하오. 뭐라고 묻는 말들마다 “그건 잘 모르겠소”, “하하 그거 참 재미있는 말이구려” 뭐 그렇게 짧게 답했던 거 말이오. 미안했소. 아니 실은 지금도 별로 미안한 건 없지만 이렇게 만난 사이니 그렇다고 해둡시다. 솔직히 그때는 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소. 당신도 알 거요. 나의 예술적 능력이 꺾였다느니 이제는 은퇴할 때가 됐다느니 하는 조롱들이 쏟아져나오던 때 아니었소. 하지만 내가 그 이후에도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왔는지 당신은 알고 있을 거요. 그중에서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드시오? 뭐 당신 생각이 크게 궁금하진 않소. 그러니 내가 하던 이야기나 계속 들어보시오.
나만 그런지 모르겠소만 날이 갈수록 미국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데 복잡한 일들이 너무 많소. 돈을 모으는 데 복잡한 일들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긴 할 거요. 얼마 전 <뉴스위크>였던가, <뉴욕타임스>였던가, 내가 유럽을 돌며 영화를 만드는 걸 두고 영화적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어떤 망할 놈이 표현했던데 꼭 그런 건 아니오. 나는 내가 편한 곳에서 마음 가는 대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뿐이오. 런던에서 <매치 포인트>를, 바르셀로나에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미드나잇 인 파리>를 만든 뒤에 로마에서 <투 로마 위드 러브>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요. 지금도 러시아, 중국, 이스라엘 등에서 자기 나라에 와서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들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북경의 한 여름밤 섹스 코미디> <당신이 모스크바에 관하여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것…(그러나 두려워서 묻지 못했던 것)> <예루살렘의 검은 장미> 같은 영화를 못 만들 이유는 없소.
아름다운 환상의 도시, 파리
그중에서도 여기 파리는 내게 정말 특별한 도시요. 파리를 처음 본 건 1964년쯤 됐을 거요. 나의 시나리오 데뷔작 <별일 없니, 암고양이야?>를 쓸 때쯤이었소.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 길(오언 윌슨)은 영화에서 미국 생활을 접고 파리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그때 내 마음이 정말 딱 그랬소. 그러지 못한 걸 살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내가 1996년에 만들었던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한 장면 기억나시오? 센 강변을 따라 걷던 나와 골디 혼이 서로 춤을 추다가 허공으로 떠오르던 그 장면 말이오. 그때 빈센트 미넬리의 <파리의 미국인>에 나오는 한 장면에 오마주를 바치는 것이었다는 걸 누구나 다 알았을 거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대사로까지 인용했던, 존경하는 헤밍웨이 선생의 말을 경청하는 게 좋을 거요. “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나는 평생 파리를 사랑했다. (중략)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물론 파리라고 해서 그 오만한 장사치들과 무섭게 생긴 십대들과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소매치기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파리는 아름다운 환상의 도시로 내게 남아 있소.
그런데 제일 걱정이었던 건 파리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되 무엇을 말할까 하는 것이었소. 그러다 번쩍 생각난 것이 있소. 파리는 로맨스의 환상이 깃든 도시 아니오. 남녀가 밤새 같이 길을 걸으며 영화 이야기를 하면 새벽에는 반드시 함께 섹스하게 되는, 아니 그렇게 된다고들 상상하는, 그래서 밤새 걷지만 대부분은 다리만 아프고 각자 그냥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뭐 그런 곳 아니오. 그렇다면 로맨스의 환상은 어떻게 일어나지, 하고 고민하다가 파리를 사랑하는 얼치기 방문객이 있고 그가 한밤에 길을 잃어버리고 시간을 건너뛰는 구형 푸조 자동차를 타고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는 설정이 생각난 거요. 거기서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는 거요. 그렇게 해서 길이라는(제발, <무한도전>에 나오는 그 길이 아니오) 할리우드 시나리오작가는 1920년대로 들어가 아드리아나라는 멋진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거요. 나는 길 역할을 맡은 오언 윌슨의, 뭐랄까, 울퉁불퉁 비뚤어져 있는 코가 참 좋소. 그리고 아드리아나를 연기한 마리온 코티아르의 암고양이 같은 분위기도 사랑하오.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성사된 거요.
잃어버린 세대들과 뮤즈
<미드나잇 인 파리>의 또 다른 매력을 빼놓고 싶지 않소. 길이 만나게 되는 1920년대 예술가 집단들 말이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젤다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루이스 브뉘엘, 만 레이. 그들은 거트루드 스타인이 붙인 말에 따르면 ‘잃어버린 세대’들이오. 이 예술가들이 한명씩 등장하여 난 피츠제럴드요, 난 헤밍웨이요, 난 달리요, 난 브뉘엘이오 하고 능청스럽게 말할 때마다 당신이 아이 같은 목소리로 흥분을 토해낸다면 당신도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일 거라 확신하오. 이 예술가들 말인데, 내가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오. 특히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는 내가 책이라는 걸 처음 읽기 시작한 십대 후반, 그때에 감명을 주었던 작가들 중 하나라고 이미 인터뷰에서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소. 사실은 그 당시에 내가 따라다닌 여자들이 하필이면 그런 책들을 읽는 이들이었고 그들의 대화상대로 뒤처지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는 건, 부끄럽기는 해도 여기저기서 고백한 사실이기도 하오.
이 영화에서도 뮤즈는 중요하오. 그러니 길과 사랑에 빠지는 아드리아나에 관해서라면 몇 마디 더 덧붙이고 싶소. 영화 속에서는 보르도 출신이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 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오. 다만 이런 일은 있었소. 헤밍웨이 선생이 흠뻑 빠진 여인이 한명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이 아드리아나 이반치치였소. 하지만 그녀는 프랑스 여인이 아니라 이탈리아 여인이었지. 헤밍웨이 선생의 <강 건너 숲으로>는 그 여인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오. 비록 당시에는 형편없는 멜로드라마라고 비난받았지만 말이오. <노인과 바다>를 썼을 때는 책의 초고 디자인을 아드리아나에게 부탁했을 정도였소.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아드리아나는 피카소의 연인으로 설정되어 있소. 역시 내가 존경하는 피카소 선생의 애정사가 끼어든 것인데, 마리 테레즈 발터라는 여인에 관한 것이오. 당시 피카소 선생보다는 30년쯤 연하인 십대 소녀였는데 그 여인은 훗날 주장하기를 자신이 피카소 선생뿐 아니라 모딜리아니, 브라크 선생과도 연인 관계였다고 말하지 않았겠소. 영화 속 아드리아나도 그렇게 말하오. 이 인물은 그러니 사실과 환상 그 어디쯤에 걸쳐져 있는 인물로 받아들여주면 좋을 것 같소.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주제와 연결되는 그런 인물이라 생각해도 될 것 같소.
현실과 환상 그 어디쯤
이미 알아들었겠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나의 영원한 주제 중 하나인 현실과 환상 그 어디쯤에 관한 영화요.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기억하고 있을 거요. 극장에서 상영 중이던 영화가 갑자기 멈추고 스크린 속 남자주인공이 현실 세계로 넘어와 관객 중 한명인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모험을 벌이는 나의 옛 영화 말이오. 혹은 <사랑과 죽음>도 기억할 거요. 보리스라라는 얼치기 러시아 청년(내가 연기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코믹 연기였소)이 별별 가상의 일들을 다 겪는 작품 말이오. 혹은 미국의 역사적 현장마다 주인공이 재치있게 등장하는 가상의 역사극 <젤리그>는 또 어떻소. 이번에도 그 현실과 환상이라는 나의 큰 주제를 즐기되 파리를 배경으로 즐긴 것이고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황금시대는 언제인가 하는 질문까지 덧붙여 던져본 것이오. 그러니 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가며 파리 홍보 영화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불평한다고 해도 난 어쩔 수가 없소. 난 이 영화를 만들며 그런 상상들로 즐거웠기 때문이오.
내가 쓴 단편소설 <회상, 그 장소 그 사람들>, 거기 일부 내용으로 담겼던 파리에 대한 나의 상상을 기억하시오? “마술사와 복화술사들이 파업을 일으키고 초록색 눈에 긴 갈색 고수머리를 한 열살배기 소녀가 내무부 장관이 먹는 초콜릿 크림에 플라스틱 폭탄을 장치하던” 그 시절에 길을 가다 야외 카페에서 내가 앙드레 말로를 만났던 것 말이오. 그는 내게 “인간은 자유로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으며,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실존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충고해준 다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토끼발 부적을 팔아먹고 가버렸소. 그때 그는 나보고 자꾸 말하지 않았겠소. 그가 아니라 내가 앙드레 말로라고. 그러니 지금 나는 말하겠소. 내가 아니라 당신이 우디 앨런이라고. 가끔은 이런 식으로 환상을 보며 너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가리키는 일들이 벌어질 때가 있소.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런 즐거운 착각에 관한 동화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려. 가야 할 시간이오. 순이에게는 공원에서 잠시 책 좀 보고 오겠다고 하고 나왔소. 그러다 프랑스 여인들의 발걸음에 취해 나도 모르게 한나절을 다 보낸 거요. 내 귀가 많이 어두워졌소. 지긋지긋한 난청이 심해진 거지. 그러니 다음에도 부디 왱왱거리는 전화 통화는 삼가고 이렇게 오다가다 만나서 또 얘기합시다. 나는 이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오가며 다음 영화를 찍을 생각이니 그때쯤 금문교 어디쯤에서나 센트럴파크 어디쯤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남은 이야기를 들려드리리다. 부디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요. 당신은 내가 한 이 말을 믿어야 하오. 잊지 마시오. “마술적 해결만이 우리를 구하오.”어려울 것 없소. 허튼 환상을 마음껏 즐기라는 뜻이오. 그럼, 잘 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