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판.판]
[충무로 도가니] 인생은 60부터라는데…
2012-07-16
글 : 조성규 (스폰지 대표)
영화인의 정년에 대해 생각하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를 연출한 알랭 레네 감독

마흔이 넘으면서 여러 가지 정신적, 육체적 변화를 겪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안경 렌즈를 바꾸려고 시력검사를 받았는데, 다초점 렌즈를 사용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가까운 곳을 잘 못 보는 노안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20대 초반의 안경사 얘기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언제부터인가 배는 항상 임신 9개월 상태에서 변함이 없다. 주변에서 ‘운동을 해라’, ‘그만 좀 먹어라’, ‘언제 출산하느냐’ 등 별별 비난의 소리를 하지만 한번 망가진 몸을 예전 상태로 돌리는 건 쉽지 않다. 육체적인 변화보다 더 심각한 건 사실 정신적인 변화다. 우울증은 그냥 특별한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병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요즘 들어 감기처럼 주변에 일상적으로 퍼져 있는 증상이 되었고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 와중에 혼자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평균 수명이 더 짧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노후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증폭되었다.

처음 영화를 시작하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겁도 없었고 욕심도 많았는데, 벌써 15년이 지났다. 만났던 사람들 중에 여전히 영화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사람도 적지 않다. 분명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나이 먹은 사람이 영화판에서 버티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정년퇴임 나이가 60살(공무원 기준)이라면 그래도 지금까지 일한 만큼 영화일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인데, 주위를 둘러보면 60살이 넘어서도 영화일을 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지금부터라도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자격증이라고 해봤자 운전면허자격증 달랑 하나에 제대로 된 보험, 적금 하나 없는 현재의 처지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길은 하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화로 시작한 인생, 영화로 끝내야 하는데,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 중 1922년생인 알랭 레네 감독의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You Haven’t Seen Anything Yet)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아흔이라는 나이에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영화 자체가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컸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히로시마 내 사랑>의 여주인공 에마뉘엘 리바는 황금종려상을 받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 작품 <아무르>의 여주인공으로 돌아왔다. 1927년생인 그녀의 나이는 85살이다. 그러고 보니 2월에 열린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은 이탈리아 출신 타비아니 형제의 <시저 머스트 다이>(Caesar Must Die)에 돌아갔다. 1929년생인 형 비토리오 타비아니의 나이는 83살이다. 운이 좋게 심사위원장인 마이크 리와 가까운 자리에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상영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졌을 때 마이크 리 감독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도 개의치 않고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기립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주책스럽게 눈물이 찔끔 났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으면 죽는다. 삶은 상대적으로 보면 무한한 자연의 시간에 비해 한점도 되지 않는 순간이다. 무슨 팔자인지 영화라는 일을 하게 되었고, 성공보단 실패에 더 익숙한 사십대가 되었지만, 다행히 이곳에선 정년이 없다.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안 하고는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기보다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올해 104살인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의 신작 <제보와 그림자>(Gebo Et L’Ombre)가 곧 열리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공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스로에게 얘기한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You haven’t done anything yet!

약 46.9%. 한국의 영화 관련업체 가운데 1차 시장(제작, 수입, 투자, 배급, 극장, 마케팅 등)에서 설립연차가 5년 미만인 업체의 비중이다(영화진흥위원회가 연구 발표한 2010년 영화산업실태조사자료. 2011년 연구는 현재 진행 중이다). 5년에서 10년차인 업체는 전체에서 약 30.9%, 10년에서 15년차인 업체는 약 14.2%를 차지했다. 15년 이상이 된 업체는 약 7.4%에 불과하다. 이들 업체의 대표가 가진 관련 분야 경력으로 봐도 한국영화산업은 비교적 젊은 층 위주로 편재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5년 미만의 경력자가 약 24.2%. 5년에서 10년 미만의 경력자는 20.8%. 10년에서 15년 미만의 경력자는 24.2%를 차지했다. 25년 이상의 경력자는 전체에서 7.1%가량의 비중을 보였다. 연령별 조사는 없지만 업체의 설립연차와 업체 대표의 경력연차를 볼 때 한국의 영화산업에서 60살이 넘어서도 일을 하는 건 확실히 희귀한 경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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