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시점이 논란이다. 마약과 군 복무로 이어진 그의 행보 이후, 누군가는 주지훈의 ‘이른’ 복귀를 탓한다. 방송 출연, 광고도 어느 하나 쉽지 않다. 그러나 주지훈은 말한다. “제가 싫어서 죽을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쉬는 동안 제 작품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분들을 봤어요. 아,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했죠.” 물론 어디까지나 이건 주지훈의 입장이고 이 모든 것도 변명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입장은? 주지훈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고, 그가 가진 가능성의 영역은 독보적이다. 주지훈은 항상 50살 이후의 ‘좋은 배우 주지훈’을 이야기해왔고, 지금은 그의 긴 행보 중 한 시기다. 어려운 한 걸음이 될 수도 있지만, 배우 주지훈을 위해선 필요한 보폭이다. 장규성 감독의 코믹사극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개봉을 앞두고 주지훈을 만났다.
탁 까놓고 말하자. 2009년의 주지훈에 대해서. 수순으로 보자면 캐스팅 기사가 나와야 할 시점이었다. 주지훈은 드라마 <궁>의 스타성, <마왕>의 연기력, 뮤지컬 <돈주앙>까지 전천후의 배우였다. 20대 또래 배우로선 독보적이란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가능성이란 수식을 접고 막 인정의 궤도에 오를 그때, 마약 파문과 군 복무가 잇따랐다. 주지훈의 ‘퇴장’은 사고였고, 그래서 느닷없었다. 2년 만이다. 갑작스러운 안녕처럼, 이번 역시 별다른 예고는 없었다. 복귀를 두고 잡음이 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비록 불발됐지만 그간 뮤지컬 주연 자리 이야기가 오갔고, 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의 차기작인 SBS 특별기획 <다섯 손가락> 출연까지 확정된 상태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코믹연기 도전이냐, 김순옥 작가와의 ‘센’ 캐릭터 요리의 문제냐가 아니라, 영화 흥행은 관객이 주지훈을 얼마나 받아들일지의 척도이며, 방송은 공중파 금지령을 깨는 첫 신호탄이라는 중요성이 전제된다. 이 발걸음이 ‘빠른’ 복귀가 될지 아닐지 판단이 쉽지 않다.
그냥 연기가 좋아서… 하루빨리 돌아오고 싶었다
“왜 이렇게 빨리 나오냐,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난 복잡하게 시점을 생각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냥 연기가 좋아서 하루빨리 돌아오고 싶었다.” 군 복무 때도 그를 지배한 건 연기에 대한 생각이었다. “어차피 나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시간이 생긴 거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걸 하기보다 나를 위해 좀더 가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공부를 집중적으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그는 공연과 영화, 음악 분야에 대해 ‘계속 팠다’고 한다. “그동안 불안하지 않았냐고? 사람이니까 분명 불안함이 있었을 거다. 근데 의식적으로 느껴질 만큼은 아니었다. 사람이 경험을 하면 그게 쌓여서 인생이 되는 것 같다. 이 느낌을 딱 집어서 설명하고 싶은데 한 단어로 정의내리긴 어렵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간의 경험들이 표출돼서 끝맺음됐는지 모르겠지만, 난 여전히 그냥 살고 있고 하고 있는 거다.” 마침 연예사단이라 실전의 기회도 얻었다. 이준기와 함께 전국 규모의 뮤지컬 <생명의 항해>를 44회차나 공연했으니, 막상 지난 2년간 주지훈의 시계에 연기가 빠진 적은 없었다.
장규성 감독의 코믹사극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주지훈의 실질적 복귀작이다. 드라마 <마왕>을 끝내고 차기작으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하기까지 걸렸던 1년8개월의 시차를 따져보면, 말마따나 주지훈과의 결별 체감은 오래지 않았다. 그는 다작의 배우는 아니었고, 늘 그렇듯 지금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역시 주지훈에게 또 한편의 ‘다음 작품’이다. 영화는 왕이 되기 싫은 소심한 세자 충녕군과 그와 똑같이 닮은 노비 덕칠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이 운명의 장난이 충녕군에게 훗날 성군 세종대왕이 될 싹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웃고 끝낼 소동극만이 아니라 감동까지 선사하는 드라마다. 작품으로만 보자면 서늘하고 날선 이미지의 주지훈이 코믹연기를 한다는 색다름, 1인2역이라는 과제가 주어진 도전이다. 보통 주연으로 한 영화당 55∼60신이 주어진다면 충녕군과 노비 덕칠을 한꺼번에 연기하는 주지훈의 할당량은 자그마치 120신이었다. 재촬영까지 더하면 140회를 오가는 고된 촬영이었다. “<궁> 끝나고 <마왕> 할 때 다들 그러더라. 왜 그렇게 어려운 걸 하냐고.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를 하니 26살 어린 나이에 32살 역할을, 그것도 게이와 감정선이 있는 파격적인 역할을 하냐고 의아해했다. 뮤지컬을 할 때도 경험도 없는데 선택했다는 타박이 뒤따랐다. 늘 그랬다. 나는 일부러 변화를 주려는 게 아니고 작품 내용이 와닿으면 그때그때 선택하는 것뿐이다.”
비로소 사람 같다고요? 2% 부드러워졌나봐요
작품을 대하는 태도엔 변화가 없지만 그간 주지훈에게 변화가 없진 않았다. 일단 <키친>을 하고 나서 가진 인터뷰 때와 달리 지금은 살이 쪘다. 주지훈도 예비역 후유증이 있는, 비로소 사람 같다. “원래 작품 안 할 때는 좀 살이 찌는 편이다. 난 ‘일반관리’는 안 한다. 평소에는 술도 잘 먹고 동네 친구 만나서 논다. 촬영 두어달 전부터 캐릭터에 맞게 몸을 바꾼다. 머리도 그냥 막 기른다. 그럼 역할에 맞게 자르면 되니까. 요즘은 영화 때문에 좀 찌운 탓도 있고, 빼고 있는 중이긴 한데, 빼도 옛날처럼 면도날 같은 분위기가 안 나더라. 사진 찍으면 다 보인다. 나이를 먹었나보다. (웃음)” 뾰족한 면들이 다듬어지는 동안, 자신과 함께해준 팬들을 편하게 대하는 데 익숙해졌고, 오보성 기사에도 조금 여유가 생겼다. 왜곡되는 걸 못 참고 한참 민감했던 예전의 주지훈과 조금쯤은 멀어졌다. 소속사의 변화도 생겼다. 배용준, 임수정, 김수현 등이 소속된 키이스트로의 이적은 활동이 더 활발해짐을 알리는 결심과도 같다. “지금까지 평생 일한 걸 올해 다 한 것 같다. 소속사가 변해서? (웃음) 강제적인 건 없고, 옆에서 조언해주는 분들이 많아지니 귀가 얇아진다. 젊을 때 경험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 와중에도 주지훈은 “굶어 죽으면 죽었지, 싫은 거 시킨다고 하지는 않는다”며 대쪽 같은 소신을 피력한다. 그럼에도 그의 화법은 확실히 2% 부드러워졌다. “팬들이 원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작품이 좀 많아질 것 같다. 일부러 많이 하는 게 아니고 나이 들면서 공감가는 이야기도, 관심이 가는 세계도 많아졌다.” 최근 그의 영역에는 친구 김재욱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공연도 하는 밴드 활동이 포함된다. 작품 외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주지훈에겐 분명 없던 활동이다. SBS는 주지훈 캐스팅 논란에 대해 ‘남자배우 기근현상’을 이유로 들었다. 굳이 남자배우라는 포괄적 영역을 들지 않더라도, 조금 더 지났더라면 주지훈 기근을 겪을 뻔했지 싶다. 부디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구설과 엮이지 않고 작품 자체로 올곧이 홀로 서길, 지금으로선 그걸 지켜보는 게 순서지 싶다.
<씨네21> SNS를 통해 받은 독자들의 질문
-지금 복귀한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하나만 꼽자면? _밀크티(미투데이)
=늘 필요한 건 집중력이다. 집중력과 진지함, 그리고 릴렉스. 이 셋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복귀 때만이 아니라 평생 풀어야 할 문제다.-김수로님, 임원희님과 연기하셨는데 어느 분이랑 하는 게 더 편하고 좋으셨나요?_raha0926(미투데이)
=원희 형이 당연히 편했다. 수로 형은 나한테 뭐라고 하는 역할이고 원희 형은 내가 뭐라고 하는 역할이니. (웃음) 수로 형과는 과격한 장면이 많은 반면 원희 형이랑은 길 걷는 신 같은 조용한 장면이 많았다. 알콩달콩한 관계다. 웃음이 막 터져야 하는 게 아니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코믹이다. 우리가 가진 이 느낌이 스크린 밖으로 전달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