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2시 종이 울리면 오래된 푸조를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간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헤밍웨이가 불쑥 “당신은 어떤 소설을 쓰지? 문장은 간결해야 해” 하고 조언해주며, 거트루드 스타인이 내가 쓴 글을 평가해준다.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고 기발한 발상이지만, 우디 앨런의 영화이기에 놀랍지 않았다. 지금껏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는 별의별 기상천외한 일이 다 일어나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으니까. 죽은 사람이 저승사자 눈을 피해 이승으로 도망쳐왔고, 영화를 보는 것만이 낙이던 한 여자는 스크린 속으로 진짜 들어가버렸으며, 우디 앨런은 젊은 시절 직접 정자 한 마리가 되어 다른 정자들과 경쟁하며 난자로 돌진했었다.
놀랍기로 따지자면, 파리의 관광객인 길(오언 윌슨)이 프랑스어 한마디 못하는 여행객이면서도, 가까운 친구네 집 놀러가는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파리를 돌아다니는 게 난 더 놀라웠다. 그리고 오언 윌슨마저 우디 앨런 영화에 나오니 그의 분신처럼 보였다는 점도. 요컨대, 파리의 관광객인 윌슨이 자기 동네 뉴욕을 돌아다니는 앨런처럼 보였다는 얘긴데, 그 결정적 요인은 옷차림에 있었다. 헐렁한 면바지에 느슨하게 맨 벨트, 평범한 가죽 구두, 연한 색상의 폴로셔츠 정도로 구성된 수수하기 그지없는 우디 앨런식 스타일을 그도 고수하고 있었다.
우디 앨런이 출연하는 영화를 지금까지 못해도 수십편은 본 것 같은데, 그는 매번 뿔테 안경을 끼고- 기억하기론 <비취전갈의 저주>에서 단 한번 얇은 은테로 된 안경을 꼈다- 비슷하고 수수한 옷들만 입고 출연했다. 어떨 땐 ‘아, 정말 너무하다. 저 뿔테 안경으로 수십명의 캐릭터를 똑같이 만들어버리다니’ 하는 생각도 했었다. 정말이지 영화업계에 이렇게 매번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며 옷으로 멋을 부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업계로 눈을 돌려 경쟁자를 찾는다면,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정도가 있을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멋을 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늘 멋지다는 인상을 준다. 세상에는 우디 앨런처럼, 혹은 스티브 잡스처럼 365일 똑같이 입고도 멋진 사람들이 있다. 사시사철 같은 옷을 입고도 그 옷 어디서 샀어, 하는 질문을 받는 사람도 있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옷을 입을 줄 알고, 적절한 액세서리를 하고, 패션 트렌드를 줄줄이 꿰고 있음에도 매력적이지 못한 사람도 분명 있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멋이란 숙명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참 만만하고 당연한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참 냉정하고 먼 것인가보다. 멋진 사람들에게는 흐뭇한 일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비통한 일이다. 아, 다음에 파리에 갈 때는 나도 관광객 패션은 접어두고, 동네에서 입던 조금도 멋부리지 않은 수수한 옷을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센 강변을 활보해봐야겠다. 설사 비통함이 느껴져도 오언 윌슨처럼 유쾌하게 웃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