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가 되려고 무작정 할리우드로 상경했단 말이에요? 대체 뭘 믿고….
=제 외모와 목소리요. 이 정도면 인생 베팅 한번 걸어볼 만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네요. 자세히 보면 어딘지 모르게 80년대 여성 록그룹 하트가 떠오르는 것이.
=하트라니…. 제가 윌슨 자매처럼 그렇게 살집이 많진 않다고요.
-아니 하트가 어때서? <What About Love?> 같은 명곡을 부르던 그 시절의 윌슨 자매가 얼마나 근사했는데!
=아. 죄송해요. 윌슨 필립스랑 잠시 착각했어요.
-하트의 윌슨 자매와 윌슨 필립스의 윌슨 자매를 헷갈리는 당신은 진짜 80년대 청춘 맞아요?
=<씨네21>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도 둘을 구분 못할걸요. 어휴. 늙은 아저씨.
-아저씨라고 놀리지 마요. 저도 고교 시절엔 로큰롤 좀 했죠. 학교 메탈 동아리에 가입했거든요. 만날 건스 앤드 로지스나 메탈리카 티셔츠를 입고 CD플레이어를 손에 들고 다녔죠. 캬. 추억 돋네.
=저처럼 용감하게 할리우드로 상경해서 록밴드라도 하시지 그랬나요. 보컬이 아니라도 키보드 정도는 칠 수 있었을 텐데.
-그러고보니 사실 메탈 동아리 친구와 LA로 밀항할 계획을 세웠던 적은 있습니다. 부산 컨테이너 항구에 식량과 물을 들고 몰래 들어가자는 아주 치밀하고 완벽한 계획도 짰죠.
=그래서? 실행했나요?
-그걸 한참 실행하려는데 갑자기 너바나가 등장했어요. 메탈의 시대가 가고 그런지의 시대가 오니 LA에 가기가 싫어집디다. 시애틀로 가야 하는데 거긴 부산에서 무역선이 가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김샜죠 뭐.
=어쩔 도리 없네요. 시대는 변하는 법이니까요. 그럼 LA에 함께 밀항하려던 친구는 지금 뭐하고 있나요.
-세상을 등졌어요. 보험회사에 다니던 친구였는데, 아시잖아요 몇년 전 금융시장 붕괴 때… 그렇게 됐습니다.
=젊음은 그렇게 사라지고 시대는 그렇게 변해가는군요. 묵념을….
-여하튼 오늘은 저의 마지막 가상 인터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흘러간 시대를 위해 느끼하게 노래 한곡 할까요? 제목은 스타십의 <우리가 이 도시를 만들었다>!
=높은 분들은 만날 돈놀이나 하고 있어요! 인수고 합병이고 누가 그딴 거 신경쓰나요! 우리는 춤을 추고 싶을 뿐인데! 그들이 무대를 훔쳐갔어요! 그들은 우리를 무책임한 종자들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이 도시를 만들었어요! 우리가 이 도시를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