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누가 바쁘지 않으랴마는, 뮤지컬 TV시리즈 <글리>의 크리에이터 라이언 머피는 적어도 톱10에 들 만큼 바빠 보인다. 바로 지금, 그의 손안에서 채널과 방영일자까지 결정된 TV시리즈는 3편이고, 제작하는 리얼리티 TV쇼가 1편 있다. 머피가 이토록 바빠진 건 이제는 신화가 된 <글리>의 대성공 때문이었을 것이다. 머피는 2009년 시작한 <글리>가 안정권에 오르자, <글리>를 함께 만든 브래드 팔척과 함께 케이블 채널 <FX>에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를 시작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는 저주에 걸린 집에 이사 온 가족이 겪는 사건들을 ‘섹스’라는 프리즘에 통과시켜 만들어낸 새로운 드라마로, 낙태, S/M, 약물, 총기난사, 불륜, 강도 등 매주 논쟁적인 소재를 끌어들였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낙천주의로 희망을 노래하는 <글리>의 창조자에게 이토록 어둡고 음흉한 면이 숨어 있었다니 놀랄 법도 하지만, 머피는 이렇게 말한다. “매일 행복만을 이야기하다보니 내 안의 뒤틀리고 망가진 무언가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하나. <글리>의 시즌4,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시즌2를 동시에 작업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라이언 머피는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는 계획표형 인간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글리>는 오전에 쓰고,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는 밤에 쓴다”는 것이, 전혀 다른 두 쇼의 각본을 쓰기 위해 그의 에너지를 전환하는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한데 머피는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다. <러닝 스케어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연출한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는 지금은 <글리>에 특별출연하면서 친분을 쌓은 기네스 팰트로와 함께 <One Hit Wonder>라는 “매우 지저분한” 뮤지컬영화를 제작 중이며, 래리 크레이머의 브로드웨이 연극 <The Normal Heart>의 영화화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One Hit Wonder>에는 기네스 팰트로, 리즈 위더스푼, 카메론 디아즈가, <The Normal Heart>에는 마크 러팔로, 줄리아 로버츠, 알렉 볼드윈, 맷 보머, 짐 파슨스가 캐스팅됐다.
브리트니 스피어스, 리키 마틴, 올리비아 뉴턴존 등이 <글리>의 특별 출연진으로 이미 확인된 바이지만, 라이언 머피의 캐스팅은 화려하다. 비밀은 따로 없다. 그는 원하는 배우가 있으면 직접 연락해 왜 당신과 일하고 싶은지를 속속들이 고백한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2에 제시카 랭이 새로운 캐릭터로 시즌1에 이어 계속해서 출연하고, 클로이 세비니가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섹스중독자 역할을 수락한 배경에는 머피의 삼고초려가 있었다. 이 열정은 그가 이미 꾸려놓은 캐스팅에도 유효하다. <글리>의 연기자들이 극중 캐릭터들의 미래를 궁금해하고 두려워할 때,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어떤 캐릭터로 성장하고 싶은지 모두의 말에 귀기울였고, 원한다면 계속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을 주었다. 아마 그는 어린 배우들의 트위터를 일일이 읽어보고 반응해주는 유일한 쇼 운영자일 것이다.
새 TV시리즈들이 각축을 벌이는 9월에 라이언 머피는 <NBC>에서 <더 뉴 노멀>이라는 시트콤을 시작한다. <더 뉴 노멀>은 대리모를 통해서 아이를 출산함으로써 가족을 꾸리려는 게이 커플의 이야기다. <글리>와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가 “TV에서 성공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면, 이번에는 그 철학과는 다소 멀어 보인다. <NBC>는 이 드라마를 “2012년은 모든 형태의 가족이 가능하다”라며 광고하는데, 21세기에 가능한 거의 모든 가족 유형을 다룬 <ABC>의 히트 시트콤 <모던패밀리>와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