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역사와 가상현실의 사이 <링컨: 뱀파이어 헌터>
2012-08-29
글 : 이주현

뱀파이어와 늑대인간과 인간의 삼각관계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게다가 <트와일라잇> 시리즈만큼이나 진지하다. <링컨: 뱀파이어 헌터>에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뱀파이어 사냥꾼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연출한 이는 <나이트 워치> <데이 워치> <원티드>의 티무르 베크맘베토프 감독이다. 그가 언제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 그는 언제나 한발은 현실에, 한발은 판타지에 걸친 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고수한다. 한발은 역사에, 한발은 가상현실에. 이번엔 원작자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의 도움을 받았다. 시나리오까지 맡은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는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장본인이다.

어린 시절 링컨은 뱀파이어에게 어머니를 잃는다. 청년이 된 링컨(벤자민 워커)은 어머니를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도리어 뱀파이어에게 공격당할 위기에 처하고, 헨리(도미닉 쿠퍼)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헨리는 링컨에게 이 세상에 뱀파이어 무리가 암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링컨을 뱀파이어 헌터로 키운다. 이후 링컨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헨리에게 전달받은 미션(뱀파이어 사냥)을 남몰래 수행하며 법학도로서의 생활을 이어간다. 메리(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와 결혼해 가정도 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경력도 쌓아간다. 한편 노예문제를 놓고 남부와 북부의 갈등은 점차 심해진다. 그 과정에서 링컨은 남부의 대지주들이 뱀파이어이며 그들이 노예를 자신들의 식량으로 조달하기 위해 노예제도의 존립을 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설과 이상을 무기로” 싸우려 했던 링컨은 다시 도끼를 들고 남북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미국의 노예해방을 이끈 링컨을 뱀파이어로부터 인간을 구해낸 영웅으로 바꿔놓는 치환의 과정은 매끄럽다. <링컨: 뱀파이어 헌터>의 패착은 이야기가 아닌 연출에 있는 것 같다. 3D로 구현한 액션장면은 현란하긴 하나 인상적이진 않다. 건물의 벽면을 타고 질주하는 자동차라든가, 꺾여서 날아가는 총알이라든가, 티무르 베크맘베토프는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근사한 액션장면들로 장르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그런데 <링컨: 뱀파이어 헌터>에서의 액션 신은 힘이 달린다. 특별히 힘을 준 듯 보이는 말떼 추격전과 불구덩이 속으로 돌진하는 기차 액션의 경우 시각적 충격까지 안겨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컨: 뱀파이어 헌터>는 관객을 제대로 몰아붙인다. 이야기의 전개 속도는 빠르고, 액션 신의 강약 조절도 나쁘지 않다. 시원시원한 액션뿐만 아니라 섬세한 감정 연기도 훌륭히 소화해낸 벤자민 워커라는 배우를 발견한 기쁨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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