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만의 미덕’이란 어떤 일관된 원칙이라기보다 개별 작품들에 대한 평가를 총칭한 귀납적인 결론에 가깝다. 짧은 시간 동안 완결된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목표야 공통된 것이지만, 그것을 성취해내는 경로와 극적인 쾌감의 성격은 작품마다 실로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했을 때, 9월6일부터 12일까지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열리는 제6회 대단한 단편영화제는 단편영화의 미덕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올해는 총 429편의 영화가 단편경쟁 섹션에 출품되었고, 그중 25편의 작품이 본선에서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예심 심사평에 의하면 이번에는 소재와 형식이 유독 다양했고 특히 장르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졌다고 한다. 그 생생한 분위기를 뱀파이어 취업준비생의 면접기를 다룬 현문섭의 <최종면접>, 최시영의 공포판타지물 <도마뱀 소녀>, 그리고 아내의 자살 뒤 환각 속에서 씨름하는 부자를 다룬 유후용의 <도깨비숲>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모두 현실의 비극을 장르의 필터로 사유하고 있으며, 공간과 이미지를 패기있게 조율하고 있다.
가사 도우미의 백일몽을 유려하게 그려낸 문성혁의 <그녀>를 포함해 이 영화들이 주로 극적인 긴박감에 기대고 있다면,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면밀히 포착해 전혀 다른 형태의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작품들도 있다.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단편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유은정의 <낮과 밤>을 비롯해, 김정인의 <청이>, 권만기의 <배구레슨>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영화들은 외롭고 고단한 남녀가 상대에게 건네는 위로, 시각장애인 아버지를 둔 소녀의 망설임, 그리고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친구가 나누는 현실적인 고민 등 인물들이 갖는 감정의 결들을 각각 편의점과 자전거포, 동네 골목길, 그리고 학교 운동장과 같은 친숙한 공간 속에 차분히 담아내고 있다. 이정홍의 <해운대 소녀>도 바닷가를 산책하는 가족의 한때를 담은 단 두개의 숏으로 폭력적인 세태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그 밖에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국내단편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김진만의 <오목어>, 부모의 사랑을 짝사랑에 빗댄 윤진아의 <짝사랑>과 같은 애니메이션은 특히 기법적인 측면에서 재기와 과단성이 돋보인다. 남달현의 <재난영화>, 최하나의 <고슴도치 고슴>이 그려내는 발랄한 우정과 사랑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제에서는 경쟁부문 외에도 그야말로 대단한 영화 선물을 준비했다. 먼저 중편초청 섹션에서는 연상호, 김태용, 한지혜 감독의 신작과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했거나 호평을 받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마련되어 있다. 올해 감독 특별전의 주인공은 이우정 감독이다. 2008년작 <송한나>부터 2011년작 <애드벌룬>까지, 미묘하면서도 날선 감정 표현으로 독립영화계의 기대주로 자리잡은 그녀의 단편영화 네편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대단한 선물은 이미 수많은 단편영화를 통해 남다른 매력을 보여준 배우 8인의 특별전이다. 이민지, 김고은, 류혜영, 정연주, 박정민, 이주승, 정영기, 엄태구라는 ‘빛나는 소년들, 반짝이는 소녀들’의 강렬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에도 관심있는 관객이라면, 변영주 감독과 함께할 토크 프로그램 ‘대단한 아비규환: 단편영화, 단편소설을 만나다’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제 공식 트위터에서 140자 시놉시스 공모전이 열리고, 본선에 진출한 감독들과 디자이너들이 함께 만든 포스터가 영화관 로비에 전시되는 등 풍성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모처럼 영화제를 방문해 현장의 활기를 직접 느껴보고, 젊은 감독들의 대단한 도약을 응원하며 다채로운 단편영화만의 미덕을 만끽해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