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lk]
[김휘] 연쇄살인범을 판타지화하긴 싫었다
2012-09-07
글 : 이영진
사진 : 최성열
<이웃사람> 김휘 감독

인터뷰를 1시간으로 제한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한데, 형식적인 요구가 아니었다. 김휘 감독은 아침부터 8개 매체와 개별 인터뷰를 치르고 있었다. 개봉이 예정보다 한달 가까이 밀리면서 <이웃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이전보다 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원작을 충실하게 옮겨냈다”는 호의적인 시사 반응이 나왔으나, <도둑들>을 비롯해 앞서 개봉한 한국영화들의 승승장구를 감안하면, 극장에서 <이웃사람>이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웃사람>은 8월29일까지 140만3612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보란 듯이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선두를 차지했다. <해운대> <심야의 FM> <7광구>의 시나리오를 썼던 김휘 감독은 관객의 이같은 환대가 얼떨떨하다면서도, 자신의 첫 번째 연출작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만큼은 냉정을 잃지 않았다.

-개봉 첫주 스코어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여름 극장가는 워낙 변수가 많다. 좀더 지켜봐야 하지 않겠나. <26년>에 대한 부담은 그래도 조금은 덜었다. 성적이 안 좋으면 지장을 줄까봐 걱정했다.

-‘강풀’이라는 이름값이 이제야 발휘되는 건가.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제외하곤 강풀 원작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일단 팬이 많은 건 분명하다. (웃음) 단,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영화화했을 때 반응이 다른 것 같다. <바보> <순정만화>는 독자들이 취향이나 기억들을 캐릭터나 공간 등에 적극적으로 매칭해가면서 보는 만화다. 만화를 보고 영화를 보면 기대에 어긋날 수밖에. 반면,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의 인물들은 전형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캐릭터다. 이야기 역시 뭔가를 덧칠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쉽게 흡수할 수 있고.

-원작의 어떤 부분에 이끌렸나.
=프롤로그에 나오는, “죽은 내 딸이 일주일째 돌아오고 있다”는 대사에 ‘훅’이 걸렸다.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궁금해서 안 볼 수 없더라. 2008년 연재 당시 다음회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봤다. 힘들이지 않고 의도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점이 강풀 만화의 매력이다. <이웃사람> 역시 쉬운 이야기, 흡입력있는 캐릭터로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소통과 단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각본 작업에만 참여했다.
=시나리오를 넘겼는데 제작사 내부 사정 때문에 지연됐다. 처음엔 별다른 연락이 없어서 안 하나보다 했다. 강풀 원작 영화들에 대한 평판이 별로 안 좋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에 다시 연출까지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7광구> 연출하려고 하다가 잘 안돼서 (JK필름에서) 나와 다른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빨리 데뷔를 할 수 있겠구나 싶어서 하겠다고 했다.

-각색 과정에서 원작을 비틀겠다는 욕심은 없었나.
=제작사에선 처음엔 스릴러 타입으로 고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희(김윤진)가 죽은 의붓딸의 환영 때문에 결국 연쇄살인범을 잡는 형태로 시나리오를 정리했는데 너무 진부해 보였다.

-원작의 많은 인물들을 가져오되, 그 비중을 균등하게 나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쉽진 않았을 텐데.
=연출을 하기로 맘먹고 나서 정했던 원칙은 ‘원작의 드라마 구조와 결을 최대한 가져가자. 다만 개별 국면에서 서스펜스를 불어넣자’였다. 굳이 마케팅 수사를 붙인다면 ‘서스펜스 드라마’ 정도였다. 스릴러는 아무래도 무리겠구나 싶었다. 투자자와도 그 정도 선에서 공유했다. 그런데 촬영이 진행되면서 시장 상황이 변했다. 여름에 튼튼한 영화들이 나오면서 아무래도 호러, 스릴러 장르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일단 내 입장에선 촬영을 끝낸 다음 편집 과정에서 논의해보자고 했다. 설득을 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후반작업 때 보니까 기존의 드라마 리듬이 지루해 보였다. 그래서 템포를 스릴러 장르처럼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인물 중심의 드라마 에피소드들이 많이 빠졌다. 신이경 음악감독이 고생을 많이 했다.

-원작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쉽사리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주저한다. 죄책감과 책임 회피의 갈등을 번갈아 느끼는 인물들이 영화에서 더 도드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 혁모(마동석)가 처음에 살인범으로 오인받아서 경찰에 끌려가는 정황도 잘 드러나지 않는데.
=피자배달원 상윤(도지한)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질 만한 동기가 드러나는 장면들이 다 빠졌다. 가방가게 주인인 상영(임하룡)이 화장실에서 의심하는 장면들도 찍었지만 결국 빼냈다. 결과적으로 내 책임이다. 원작의 에필로그 부분도 사실 찍었지만 그걸 붙이면 스릴러 템포로 만들어놓은 앞의 리얼리티 부분이 다 허물어져서 못 썼다. 사실 편집실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마케팅 테이블에서 재구성되는 영화가 싫다. 콘티부터 결과물까지 하나의 의도가 관통돼야만 나중에 결과가 안 좋아도 뭐가 문제인지 파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근데 그게 잘 안되더라. 확신이 흔들렸다.

-원작과 비교해보면 캐릭터들이 조금씩 변형됐다. 상영은 좀더 소시민스럽고, 태선(장영남)은 좀더 극성맞고. 혁모 역시 인간적인 면모가 더 보인다. 이건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살을 붙인 것인가.
=선의를 가진 인물들이 뜻밖의 사건 앞에서 연대해서 보호해야 할 가치를 지키는 것이 원작의 메시지였다. 반면 난 그런 식의 연대가 잘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보여주려 했다.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강산맨션이라는 커뮤니티를 상징적으로 치환하려고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공공의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맨션 안의 인물들을 집단별, 계층별로 나누었다. 경비 아저씨들의 유니폼에는 법원 마크 같은 것을 썼다. 부녀회장은 생존 투쟁에 뛰어들었지만 목표가 왜곡된 싸움에 휘말린 이들처럼 그리고 싶어서 조끼를 입혔다. 혁모도 같은 고민을 했다. 문신 가운데 별 세개를 그려넣을까 말까. 해결사처럼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면을 따져보면, 제거해야 할 악인 경우가 있지 않나. 그런 이들에게 박수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가 우리 사회에도 많고. 아쉬움이 없진 않다. 이런 작은 설정들을 기호라고 생각했는데, 나만 아는 암호가 된 것 같다. (웃음)

-살인마를 괴물로 규정하는 건 어떤 측면에선 위험한 단순화가 아닐까 싶은데.
=애초엔 승혁(김성균)을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결과물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자료 조사하면서 관련 사건 일지 등을 봤는데, 자라온 과정을 보면 그들의 행동을 유추할 수 있는 단초들이 있다. 하지만 범행의 과정이나 이후 진술들을 보면 각이 안 잡힌다. 내가 규정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거다. 선택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연쇄살인범을 판타지화하긴 싫었다. 특정한 장애를 마치 부여받은 능력처럼 묘사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들이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만을 골라 범행을 저지르는 사실만은 분명하니까.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서 캐스팅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올가을이나 스릴러물이 많이 나오는 내년 4, 5월쯤에 개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올해 7월에 개봉하는 형태로 3월 초에 투자가 결정이 된 거다. 제한된 시간 안에 프로젝트를 끌고 가려면 전략적인 캐스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의 캐릭터와 외모의 싱크로율이 높고, 동시에 검증된 연기력을 갖고 있어야만 짧은 기간에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작을 압축적으로 정리하면 초반의 인물 소개 등이 편집 과정에서 빠질 수도 있을 텐데, 구체적인 소개 없이도 캐릭터의 정서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배우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나 아니면 전작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를 활용해야 했다.

-김새론의 1인2역은 누구 아이디어였나.
=(김)윤진씨가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딸의 나이를 여중생 정도로 하자는 의견도 윤진씨가 냈다. 원작보다 젊은 엄마가 등장하면서 그렇게 된 거다. (김)새론이가 어려서 1인2역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막상 만나보니까 매우 똑똑했다.

-여선(김새론)의 가발은 좀 엉성하던데.
=중국에 급하게 발주해서 촬영 전날 겨우 받았다. 좀 손질을 하니까 나아졌는데, 처음엔 가발이 아니라 투구였다.

-JK필름 윤제균 감독, 길영민 대표와는 친구 사이라고 들었다.
=어릴 적 한동네 친구들이었다. 같이 몰려다니던 친구들이 한 10명쯤 된다. 영화를 함께했던 건 <1번가의 기적>(2005) 때부터다. 부산에서 지역영화를 만들어보려다 잘 안돼서 서울로 올라와 JK필름의 기획개발 업무를 도왔다.

-6수(修)해서 경성대학교 영화학과에 입학했다던데.
=6년 내내 대학가려고 준비했던 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동안 극단에 있었다. 문학 좋아하는 친구 따라서 극단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극단 대표님이 마침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다니고 계셨다. 대표님 따라서 당시 남산에 있던 영화진흥공사를 몇번 들락거리면서 시사회도 구경하고. 영화과에 가겠다는 마음이 그렇게 생겼다.

-구상 중인 신작은.
=SF영화를 해보고 싶다. 직간접적으로 SF 작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사전에 정확한 준비가 필요하다. 프로세스를 만드는 작업부터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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