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한주를 보내고 있다. 우선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느껴질 정도인 데다 대낮의 밝은 햇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렵지 않아 괜찮다. 이제 가을이 성큼 한발을 내디딘 듯하다. 월요일에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 기자시사가, 화요일에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기자시사가 열렸던 것도 괜찮았다. 영화의 장르며 규모, 스타일이 다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나름의 성취를 이룬 듯 보여 가슴 한구석이 부듯했다. 영화기자가 된 보람을 느끼는 건 이럴 때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많이들 알다시피 왕의 대역을 맡게 된 광대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인데,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고 이야기의 두께가 예상보다 두터웠다.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죽 풀어내는 감독의 역량도 인정할 만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도 간혹 연상됐고 <마틴 기어의 귀향>이나 <왕의 남자> 같은 영화와 겹치는 느낌도 존재했다. 무엇보다 1인2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이병헌의 연기가 돋보였다.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기도 하지만, 이병헌은 이 영화에서 달고 짜고 맵고 쓴 감정의 종합선물세트를 한꺼번에 선보인다.
<피에타>는 김기덕 감독의 변화를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거친 직설화법의 영화를 만들던 그는 <빈 집>을 분기점으로 보다 본질적인, 그리고 영화적인 무언가를 추구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피에타>는 그가 <빈 집> 이전 직설화법의 세계로 돌아온 듯한 인상을 준다. 이를테면 추상화풍에서 야수파 스타일로 돌아왔달까? 아무튼 그 직설 속에서 김기덕 감독은 돈의 노예가 돼버린 우리의 삶을 비판하고 도려낸다. 물론 김기덕 감독의 영화인 만큼 잔혹한 아름다움을 품은 화면도 많이 보인다. 끔찍하면서도 숭고한 엔딩 신은 물론이고 후반부의 공장이나 청계천 골목의 몇몇 장면은 눈이 아릴 정도다. 강도(이정진)의 집을 처음 소개하는 장면은 살이 발라져 뼈만 남은 생선을 보여주면서 시작되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 영화 속 인물뿐 아니라 나 또한 생선 가시 신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두편의 화제작, 그것도 한국영화를 한주에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건 사실 예전에는 아주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갈수록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재미있는 영화, 흥행되는 영화는 많지만 논쟁적인 영화,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줄었기 때문이다. 매끈한 ‘웰메이드’ 영화가 주류를 차지했지만 투박할지언정 진짜배기 감정이 담겨 있는 영화는 찾기 어려워졌다. 대기업 시스템 아래서 주문생산으로 제작되는 요즘 한국영화들을 보며 걱정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좋은 영화’에 대한 욕망은 이번주 특집기사에서 소개한 11편의 외화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겠지만, 그럴수록 ‘좋은 한국영화’에 대한 갈증이 더해질지도 모르겠다. 가을 날씨만큼 괜찮은 한국영화들이 주렁주렁 영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좀더 고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