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포커스] 니하오? 한중 영화인들의 첫인사
2012-09-11
글 : 김성훈
8월29, 30일 양일간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한중영화제와 한중 영화교류 포럼
8월30일 한•중 영화교류 포럼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베이징에서 가장 큰 상업지구로, 서울의 테헤란로에 해당하는 차오양구. CCTV 본사 건물을 마주보고 베이징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한 바퀴 돌아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10층짜리 차우와이소호(朝外SOHO) 건물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지난 4월 문을 연 중국 필름비즈니스센터가 있다. 주중 한국문화원과 영진위 베이징사무소가 근처에 있고, 반경 5km 안에 차이나필름, 화이브러더스, 완다그룹, 존보 미디어 등 중국 영화사가 몰려 있는 징유엔이 있다고 한다. 필름비즈니스센터에 들어가자 중국과 공동제작을 준비, 추진하고 있는 6개의 프로젝트팀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칠성빌라>(엔알리스 ENT), <그녀를 만나다>(프라미스 ENT), <러브 앤 란제리>(퍼플 캣츠 필름), <상해연정>(KODIZ), <컬러링>(프로젝트 그룹), <짜이찌엔, 아니!>(문와쳐) 등 이들이 영진위 입주 프로그램 3기 프로젝트팀이다. 이들은 영진위로부터 영화를 기획/개발할 수 있는 개인 사무실 1개실을 비롯해 숙소, 시나리오 번역, 중국 영화제작사와의 비즈니스 미팅, 중국 영화전문가들로 구성된 멘토링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받는다. 베이징과 서울을 오가며 <짜이찌엔, 아니!>(<두 얼굴의 여친>의 중국 리메이크작)를 개발하고 있는 문와쳐 윤창업 대표는 “기본적으로 이 사무실 같은 거점이 하나 있으면 비즈니스 미팅을 하기도 편하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어서 좋다”고 입주 프로그램에 만족해했다. 영진위 국제공동제작팀 한상희 팀장은 “기획, 개발 단계의 지원 프로그램인 만큼 영진위는 장기적으로 운영하고, 한중 공동제작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필름비즈니스센터 운영 방향을 설명했다. 그날 저녁 CGV베이징올림픽점에서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한중영화제가 중국 관객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보편적 이야기와 캐릭터, 젊은 한국 감독과의 협업

필름비즈니스센터를 방문한 다음날인 8월30일. 베이징 르네상스 호텔에서 한중 영화교류 포럼이 열렸다. 영진위 김의석 위원장,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원동연 부회장, CJ E&M 정태성 영화사업부문장, 보람엔터테인먼트 이주익 대표, 문와쳐 윤창업 대표, UAM 정영범 대표, 디지털아이디어 손승현 제작총괄본부장,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조정준 대표, 김형구 촬영감독 등 한국영화 관계자와 광전총국 영화발전연구소 리우한원 부소장, 차이나필름 먀오샤오티엔, 존보 미디어 천웨이밍 대표 등 중국영화 관계자가 이날 포럼에 참석했다. 베이징 이셩춘레이 영화사 도성희 고문의 진행에 따라 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중 영화교류’가 주제인 만큼 참석자들은 자신의 한중 공동제작 경험과 관련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꺼냈다. CJ E&M 정태성 영화사업부문장은 쇼박스 시절 제작한 <적벽대전>의 일화를 들려주면서 “보편적인 이야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적벽대전>은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4개국 제작사들이 900억원을 모아 만든 작품이다. 한국에서 크게 흥행했다. 아시아인이 모두 알고 있는 소설인 <삼국지>를 원작으로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제작을 결정했다. 현재 CJ E&M에서도 한국영화 <선물>의 리메이크를 준비하고 있다. 감독과 스탭은 한국인, 배우는 중국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 중국 작가가 각색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원작을 보고 ‘커플이 커플 같지 않고 엄마와 아들 같다’고 하더라. (웃음) 이야기와 캐릭터가 얼마나 보편적이어야 하는가가 한중 공동제작에서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중국 극장가 최고의 성수기 중 하나인 국경절(9월27일) 개봉을 앞둔 <위험한 관계>(감독 허진호/출연 장동건, 장백지, 장쯔이)를 제작한 존보 미디어 천웨이밍 대표는 <위험한 관계>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을 말했다. “신뢰가 중요하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 허진호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오랜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작 <외출>을 투자했고, <호우시절>을 직접 제작했다.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미리 약속한 예산과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의 감독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 80년대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중국 감독들은 50, 60대가 많다. 젊은 관객을 매료시킬 이야기를 50, 60대 감독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점에서 한국의 재능있는 감독들과의 자유로운 교류가 절실하다.” 그는 “<위험한 관계>의 VFX 작업을 한국의 후반작업 업체인 디지털 아이디어에 맡기려고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다른 업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이 얘기를 들은 디지털 아이디어 손승현 제작총괄본부장은 “디지털 아이디어는 한국에서도 비싼 업체다. 우리 역시 <위험한 관계>의 가격을 조율할 때 안타까웠다”며 “외국과의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자국영화에 비해 영화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맹점이 있다. 어떤 성격의 이야기인지, 프로덕션의 상황이 어떠한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준다면 그것에 맞는 가격으로 재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한 것 같다. 다음 작품은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작보다 장르영화를 선호하는 중국 관객

문화가 다른 만큼 한국 관객과 중국 관객의 기호도 각기 다르다. 현재 중국의 젊은 관객의 영화 선호도와 관련한 이야기도 나왔다. 베이징 신잉리엔 영화사 황췬페이 대표는 “대작 영화를 좋아하는 과거와 달리 요즘 중국 관객은 장르영화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한번 살펴보자. <타이타닉 3D>를 비롯해 <만추> <아이스 에이지4: 대륙이동설> <경웅여협: 비밀결사대> 같은 다양한 장르영화가 흥행했다. 그 점에서 퀄리티를 갖춘 장르영화를 제작하는 게 중국 제작자들의 과제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제협 원동연 부회장은 중국영화제작가협회 밍쩡지앙 이사장에게 “한국과 중국의 제작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고, 밍쩡지앙 이사장은 “원 부회장의 의견에 동의한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자리를 만들자”고 화답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중국쪽에서 체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려서인지 검열, 수입 쿼터제 등과 관련한 민감한 이슈들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이제 겨우 한 발짝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이만한 시작도 없는 자리였다.

<만추>의 인연으로

한중영화제 홍보대사로 참여한 배우 탕웨이

-어떻게 이번 영화제의 홍보대사로 참여하게 됐나.
=<만추>가 내게 많은 것을 줬다. 한국 관객과 언론 역시 많은 도움을 주었고. 한국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차에 이런 자리에 초대받았다. 한국영화가 중국에 소개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지난 4월, 시애틀에서 <러브 인 시애틀>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현재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첸카이거의 <투게더> 각본을 쓰고, <해양천국>(2010)이라는 영화로 데뷔한 여성감독 쉐샤오루 감독의 신작이다. 시애틀을 배경으로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한 여자와 남자의 로맨스물이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만추>의 ‘애나’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완전히 빠져나온 건 언제인가.
=참 쑥스럽다. <만추>를 떠올려보면 당시의 모든 것들이 눈앞에 다시 살아나 펼쳐진다. <만추>가 끝난 뒤 휴식을 취하던 중,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한동안 답답했다.

-그게 어떤 질문인가.
=훈(현빈)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이런 생각을 놓아버리자’ 하며 다른 일에 몰두하기도 하고. 문득 캐릭터가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그동안 떠올리기와 잊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만추>를 아껴주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어떤 캐릭터에 들어가길 원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모든 것을 놓고 뛰어들어가보라.

-<만추>는 한국, 미국, 중국의 공동제작 프로젝트였다.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
=유교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자신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춰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 (현빈씨는 어땠냐고 질문하자) 나보다 경력이 많은 배우라 윗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보다 어리더라. 그래서 “현빈아!”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차기작은 아직 안 정해졌다. 배우가 해야 할 일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열심히 공부하다가, 어떤 감독님이 캐릭터를 들고 왔을 때 그것이 적합하면 맡아서 잘 표현하는 것이다. 때로는 감독님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판단한 것을 주장할 때도 있다. 그러나 천재가 아닌 이상 내가 모든 걸 할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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