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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이젠 K-FILM의 영향력도 고민할 때
2012-10-08
글 : 원동연 (제작자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문화재 촬영 허가 좀더 유연해졌으면
<광해, 왕이 된 남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시사회를 열었다. 반응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고궁 안에서의 생활상을 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란 평가였다. 기분이 좋은 한편, 아쉬웠다. 실제 고궁에서 촬영했다면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을 더 자세히 알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감사하게도 영화는 흥행하고 있지만, 흥행과 별개로 이 점만은 두고두고 아쉬워할 것 같다.

헌팅을 하는 동안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실제 고궁만 한 촬영지를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안과 문경에 방송사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서 만든 경복궁과 광화문 세트가 있었지만, 규모와 관리 상태를 볼 때 너무 열악했다. 추창민 감독 또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한국의 건축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일단 두들겨보자는 생각에 문화재청에 공문을 넣었다. 경복궁, 근정전, 인정전을 비롯한 제반 고궁에 대해 촬영을 허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촬영할 내용, 투입되는 인원수, 촬영시간, 사후관리계획까지 다 적었다. 특히 관리대책과 방법에 대해서는 우리가 보존하고 지켜야 할 문화유산인 만큼 촬영을 목적으로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정말 세세하게 기재했다.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같은 배우들이 캐스팅됐으니, 이 영화로 인해 관광객 유치와 촬영지 탐방 프로그램 제작 등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명동이나 남산을 찾는데, 한류스타가 촬영한 촬영지라고 하면 고궁도 나름 매력있는 상품이 될 것 같았다. 우리의 신청서는 역사학과 교수님들과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뒤 신청서는 반려됐다.

반려사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당연히 문화재의 보호와 관리, 두 번째는 고증의 문제다. 경복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돼 고종 때 복원된 궁이기 때문에 영화 속 광해군 시기에는 이미 소실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이 영화가 사실을 근거로 한 영화가 아니고, 시기만 빌려왔을 뿐 모든 게 새롭게 창조된 팩션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그래도 광해군 시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고증상 불가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심사위원님들의 의견을 이해할 수는 있다. 아니, 전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련기관의 유연성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두바이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을 유치하려고 전 국가적으로 공을 쏟았다. 호주 정부 또한 각종 인센티브 혜택을 주면서 할리우드영화를 유치하려고 나서는 중이다. 경제효과도 엄청나다.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경우, 전체 예산 1500억원 중에서 400억~500억원을 요르단에 쓰고 갔다고 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그만큼의 경제효과를 낼 수 있는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수많은 외국 관광객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는 됐을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배우를 좋아하게 되고 그가 입은 의상과 그가 쓴 제품, 그가 촬영한 장소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의 경복궁도 지금보다 더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이제 K-POP뿐만 아니라 K-FILM의 영향력도 고민해야 할 때다. 관련기관의 심사방향이 좀더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전환되기를 기원한다.

고궁 촬영료는 얼마나 될까?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촬영을 해야 하는 궁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이다. 종묘와 조선왕릉, 세종대왕릉 같은 능과 현충사, 칠백의총 같은 유적기관도 여기에 포함된다. 극영화, 광고, TV드라마의 경우 촬영료는 2시간 이내 시 40만원, 1시간 초과당 10만원이다. 드라마 외의 TV프로그램과 기타 동영상 촬영 시에는 2시간에 20만원, 1시간 초과당 6만원을 지불한다. 신청은 촬영 5일 전까지 해야 한다. 공개제한지역이나 야간에 촬영을 할 경우에는 30일 전까지 신청한다. 촬영시나리오 및 촬영계획서 1부, 촬영문화재와 그 부속시설물 및 주변 수목 등의 안전보호대책, 문화재보존준수서약서 1부를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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