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슬픈, 혹은 무서운 동화 <바비>
2012-10-24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감독 이상우의 전작들은 해괴망측하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엄마는 창녀다> <아버지는 개다>. 내용은 더 심하다. <엄마는 창녀다>는 아들이 포주를 자임하고 나서 병든 노모의 몸을 팔아 먹고산다는 내용이고 <아버지는 개다>는 한 집안의 아버지가 아들들을 짐승처럼 짓밟고 지배한다는 내용이다. 관련하여 그의 영화에는 강도 높은 폭력장면이 상존하며 동시에 성적 수위도 높아서 성기 노출도 다반사다. 감독은 배우가 그 장면을 해내기를 주저하면 자기가 나서서라도 그 장면의 수위를 지키고 강도를 높인다. 그러한 수위와 강도에 대한 강박이 그의 영화를 늘 감싸고 있는데 그건 이상우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거니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그의 영화에 대한 인지도를 높인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비>는 벌거벗은 여자도 보기 껄끄러운 성기도 가학적인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순영(김새론)과 순자(김아론)는 정신지체 아버지(조용석)와 함께 포항에서 민박집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작은아버지(이천희)가 한명 있는데 말만 친척일 뿐 해가 되는 게 더 많은 악인이다. 이 작은아버지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미국에서 한 남자를 불러들인다. 미국인은 바비라는 이름의 딸과 함께 순영, 순자의 집을 찾는다. 그의 알려진 목적은 순영을 입양하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있다. 순영과 바비는 같은 또래여서 금방 친해지는데 반면 순자는 순영과 바비를 질투한다. 그런 순자는 순영 대신 자기가 미국에 가야 한다며 떼를 쓴다. 결국 순자의 계획대로 순영 대신 순자의 입양이 결정된다.

순영과 순자 역할을 맡은 배우는 요즘 많은 주목을 모으고 있는 김새론, 김아론 친자매다. <아저씨>에 출연하여 관객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김새론과 우연히 <바비>로 배우의 길에 들어선 김아론이 이 영화의 주역이다. <바비>를 두고 이상우 영화의 절대 전환점이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어렵겠다. 여전히 감독은 다작을 하고 있고 이 영화는 오히려 예외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이상우 영화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일으키는 흥미로운 장면 하나를 꼽아볼 수는 있다. 순영과 순자와 정신지체 아버지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이다. 언뜻 상투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서서히 집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카메라의 운동성과 함께 이상우 영화에서는 매우 드물게 순수하고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감독 이상우가 성기에 연연하지 않아도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감독이 이런 장면을 확장하는 쪽으로 자기의 영화세계를 구축할지는 미지수다. 이상우 영화의 전반전인 문제로 지적할 만한 부분들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우선 극단의 설정과 함께 도입된 인물들의 단순화가 내내 걸린다. 지독하게 못된 인물이거나 지나치게 모자란 사람들 혹은 선과 악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부류를 지나치게 대칭에 놓는 것은 <바비>를 볼 때 가장 큰 껄끄러움에 속한다. 자칫 철지난 아메리칸 드림의 정서를 가져온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그렇다.

물론 능동적인 해석은 가능하다. <바비>에서 미국이 아니라 순자의 무서운 욕망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러니까 영화 속 미국 소녀 바비가 말하는 것처럼 “순자 눈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는 그런 면모에 주목한다면, 이 영화의 중심은 오로지 순자다. 어린 소녀의 그 무서운 욕망이다. 그렇게 보자면 <바비>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허상을 뒤좇는 인물들에 관한 슬픈 동화가 아니라 주체하지 못하는 욕망을 현실화하고야 마는 어떤 소녀에 관한 무서운 동화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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