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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영화에 나를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2012-10-30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두 번째 장편영화 <복숭아나무> 연출한 구혜선 감독

구혜선은 부지런한 감독이다. 벌써 그의 필모그래피엔 장•단편을 합친 연출작이 5편이나 된다. 그는 장편 데뷔작 <요술>을 만들고 1년 남짓 만에 두 번째 장편 <복숭아나무>를 완성했다. <복숭아나무>는 얼굴이 앞뒤로 붙어 있는 샴쌍둥이 동현(류덕환)과 상현(조승우)이 서로의 존재를,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이야기다. 신선한 소재와 충격적인 영상이 어우러져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는 영화다. 2010년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처음 공개됐고 올해 가을 개봉하는 <복숭아나무>를 구혜선 감독은 “이제 그만 놓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배어 있는 <복숭아나무>를 향한 구혜선 감독의 애정은 숨겨지지 않았다.

-장편 데뷔작이었던 <요술>은 흥행과 비평에서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요술>이 전국 30개관 정도에서 개봉했는데 실질적으로는 10개관에서 일주일도 채 안 걸렸다. 대중적인 작품을 하진 않았으니까. <요술>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하라면 못할 작품이다. 모호한 이야기, 답 없는 이야기, 보는 사람마다 답이 다 다른 이야기. 그땐 한창 그런 이야기에 흥미가 있었다.

-<복숭아나무>를 통해 인간의 양면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인간의 양면성은 부수적인 얘기고 큰 주제는 사랑이다. <복숭아나무> 시나리오를 쓰던 시기에 존재론적 고민들을 많이 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언젠가는 죽을 텐데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거야? 무엇을 위해서? 학교 다닐 땐 왜 열심히 공부했을까? 그게 정말 나를 위해 한 일이었을까? 그런 생각들. 그런데 나의 삶과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비롯되는 것 같더라. 특히 애증의 관계인 가족. 영화 속 동현과 상현도 그런 관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서로 원망하고 서로의 존재 때문에 마음의 상처도 받지만 결국엔 모든 게 다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2010년에 그런 심각한 고민을 했던 이유가 있나.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의 기준에 따라가고 있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 끝나고 식구들이랑 밥 한끼 함께 먹지 못할 만큼 바빴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 하나 싶더라. 인기와 부와 명예를 얻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잠깐 그것들을 안아보니까, 영원하지 않은 걸 부여잡고 산다는 느낌이었다. 그 인생은 그다지 행복한 삶이 아닌 것 같았다.

-얼굴이 앞뒤로 붙어 있는 샴쌍둥이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동현이 상현보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 설정도 흥미롭다.
=몸은 하나지만 완벽한 두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동현은 몸이 자유롭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하다. 상현은 신체의 자유는 없지만 의외로 정신은 자유롭다. 누구나 신체가 자유로운 사람의 삶이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니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여러 가지 원초적인 고민들을 극한의 상황에 놓인 캐릭터에 반영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동현과 상현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선 소름이 돋았다.
=부산영화제 때도 사람들이 제목만 보고 과일나무 얘기인가보다, 농사짓는 얘기인가보다, 조승우가 농부인가, 류덕환이 농부인가 그랬다가 이게 뭐야, 그런 반응이었다. (웃음)

-배우들이 캐릭터의 느낌을 잘 살렸다.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남상미씨는 친한 친구다. 승아 역은 남상미씨를 그대로 반영해 만들었다. 그 친구가 비현실적으로 착하다. 조승우, 류덕환씨는 회사로 시나리오를 보냈다. 사실 두분이 출연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분들이 선뜻 하겠다고 해서 정말 놀랐다. 그 덕에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요술> <복숭아나무>엔 공통적으로 판타지적인 요소가 활용된다.
=상업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시도했다. 관객과 공감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목표가 흥행이 돼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나를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복숭아나무>에는 본인의 어떤 면이 반영됐나.
=순수 트라우마! 순수하고 싶고 착하고 싶다는 강박. 등장인물들은 모두 나의 트라우마가 반영돼 만들어졌다. 동현 캐릭터에서 보여지지만, 내가 가족한테 굉장히 말을 삐딱하게 한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고자 하는 승아가 동현의 진짜 모습을 보고 놀라는 것도 사실은 우리 안의 모순이 반영된 거고.

-<요술> 촬영 때는 스트레스받으면 스탭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단것들을 먹였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랬나.
=옛날엔 단것 먹이면서 달랬는데 요즘엔 화낸다. 아무래도 남자 스탭들이 많다보니 돌려 얘기하면 안되겠더라. 괜히 나만 마음 상하고. 그래서 이번엔 엄청 싸웠다. 전쟁이었다. 감정이 쌓일 것 같으면 속마음을 털어놓고 소리 질렀다. “내가 이미지 관리할 것 같아?” 이러면서. (웃음)

-지금의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준 건 뭔가.
=많다. 이번에 김기덕 감독님이 <피에타>로 상 받으시면서 ‘이 상은 내 열등감에서 나왔다’고 말씀하셨는데, 돌이켜보면 내게도 열등감이라는 게 없지 않았다. 지금은 완벽에 대한 집착을 많이 내려놓았는데, 어릴 땐 주변의 모든 것이 자극이었다. 그 열등감이 열정이 되기도 했고. 그런 시기에 인생의 스승을 만났다. 내게 그림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 선생님 댁에서 매일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림뿐 아니라 삶의 가치를 찾는 것에 대한 공부를 많이 가르쳐주셨다. 내가 멋 부리는 데 관심없고 물욕이 없는 것도 사춘기 때 그 선생님을 만나서인 것 같다.

-단편과 장편 작업을 병행한다. 올해 초엔 유승호 주연의 3D 단편영화도 만들었다.
=단편과 장편 각각의 매력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앞으로는 장편에 더 주력할 것 같다. 그리고 3D단편 <기억의 조각들>은 연출 제의를 받았다. 찍어보니 3D가 정말 어렵더라.

-<복숭아나무>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원래 두개, 세개씩 일을 벌이는 스타일인데 요즘은 힘에 부친다. 지금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기회가 되면 연기로도 찾아뵐 거고, 계속 시나리오도 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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