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번에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뭐라도 한잔 드시면서….
=당연히 전 마티니죠. 젓지 말고 흔들어서.
-영화 너무 재밌었습니다. 본드가 죽는 것처럼 사라지는 건 거의 맥거핀이고, 초반부와는 전혀 다른 후반부 액션 컨셉도 좋았어요. 본드는 늘 악당들의 요새로 잠입해서 훼방을 놓는 남자인데, 이번에는 반대로 악당들을 기다리고 계시잖아요. 남다른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이번에는 너희들을 찾아가지 않겠다, 올 테면 와 봐! 그런 거요.
=과찬이십니다. 맥거핀 얘기를 말씀해주셔서 그런데, 맥거핀으로 유명한 히치콕 감독님도 우리 영국 출신이십니다. 사실 그의 유명한 작품들 역시 대부분 첩보영화죠.
-그러고 보니 이번 <스카이폴>은 50주년 기념 작품이라 참여한 영국계 배우와 스탭들의 면면이 정말 화려합니다. 부담이 컸겠어요.
=부인할 수 없죠. 다들 의외라고 생각했던 샘 멘데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거나, 코언 형제 영화로 유명한 로저 디킨스 형님이 나서주 신 거까지 정말 후덜덜했죠. 나이 든 Q나 머니페니가 사라졌다고 해서 이 시리즈가 갑자기 젊어진 게 아니에요.
-아무래도 그런 증거는 비중이 확 늘어난 M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맞아요. 사실 저로서는 이번에 딱히 본드걸이 없어서 무지 심심했습니다. 출연하고 싶어 한 여배우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왜 그랬는지.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도 올가 쿠릴렌코와의 가벼운 키스 정도밖에 없잖아요? 어쩌다 본드, 제임스 본드가 한 여자만 사랑하는 이미지로 굳어졌는지 원. 돌이켜보면 제가 처음 출연했던 <카지노 로얄>이 화근이에요.
-그러게요. 그때부터 안 어울리게 순정남이 되셨죠. 생긴 건 사실 이전 본드들과 비교하면 러시아 마피아처럼 생기셨는데.
=그래서 초창기에 회의하는 날 제작자인 바버라 브로콜리에게 강력하게 얘기했어요.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한번 쉬었으니 이번에는 좀 제대로 진하게 해보자고요. 멋진 본드걸이 나와야 한다고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던데요? 안타깝습니다. 제작자가 너무하네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M 아줌마가 본드걸이에요. 런던올림픽 개막식 할 때는 여왕 폐하께서 본드걸이셨고요. 사실 연출 제의 승낙을 전후해 샘 멘데스 감독이 케이트 윈슬럿과 헤어진 것도 어느 정도 그런 정서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별의 고통으로 많이 괴로웠을 테니 씁쓸하네요. 하지만 아무리 다른 스탭들이 반대한데도 그렇지 정말, 브로콜리 너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