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가다 3
2012-10-31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

이명세 감독의 ‘연출세미나’ 지상중계

거의 6개월 만이다. 지난 5월 <미스터 K>(현재 제목은 <협상종결자>(감독 이승준)) 하차 이후 이명세 감독은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의 초빙 교수가 되어 후학을 양성하는 중이다. 한국영화 최고의 비주얼리스트인 그가 진행하는 수업이, 특히 미장센 관련 내용이 무척 궁금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현장이 아닌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다소 수척했지만 여유로워 보였다. “얼굴이 좋아 보이십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명세 감독은 편하게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지. 원래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은 없었어. 그런데 김동호 위원장님께서 간곡하게 부탁을 하셔서….” 10월18일 열린 이날 수업은 이명세 감독이 진행하는 ‘연출세미나’였다.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그는 학생들에게 현장에서 감독의 역할과 태도를 강조했다. “한국 스탭이든, 외국 스탭이든, 저예산이든, 블록버스터든 어떤 형태의 작업이든 간에 감독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고, 현장에서 중요한 게 뭔지 잘 알고 있어야 해. 감독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스탭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감독과 촬영감독 그리고 조명감독 등 각자의 생각을 옳다, 그르다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그러니까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해.”

감독도 설득의 기술이 필요해

그러면서 이명세 감독은 자신이 담배를 많이 피우게 된 계기를 들려줬다. “예전에 담배를 많이 피웠어. 어떤 영화였더라. 하루는 현장에서 촬영감독과 아이디어를 짰어. 그의 의견이 다 괜찮은데 결정적인 무언가가 없었어. 이건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아닌 거야. 거절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척하며 담배를 꺼냈어. 현장에서 거절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거든. 그때 이후로 상대방의 의견을 거절하기 위해 담배를 피우곤 했어. (웃음)”

그는 <미스터 K>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영화는 촬영 초반 감독, 스탭, 배우 각각의 포지션끼리 손발이 맞지 않을 때가있다. 그건 문제라기보다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스터 K>의 경우,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닥치니까 스탭들이 못 따라오는 거지. 그런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줘. 그런데 <미스터 K>는 그러질 못한 거야. 나 역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어쨌거나 감독은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해.” 그러니까 많은 영화를 보고, 좋은 책을 읽고, 다양한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것인 만큼 감독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컷 바이 컷’ 분석

수업은 이명세 감독의 1999년작이자 그의 최고 흥행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보면서 진행됐다. 영화의 초반부부터 함께 보면서 시퀀스마다 ‘컷 바이 컷’으로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영화의 중반부, 우 형사(박중훈)와 그의 동료 형사들이 용의자 장성민(안성기)과 그의 내연녀(최지우)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는 시퀀스. 컷 분할 없이 패닝과 줌 인•줌아웃만으로 형사들의 동선을 한데 담아낸 장면이다. 이명세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왜 저 시퀀스를 컷 분할 없이 한숏으로 찍었는지 생각해봐야 해. (학생들의 대답이 없자) 형사들은 어디 도착하면 주변 공간을 한번에 파악해. 그들의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주기 위해 카메라 역시 컷 분할 없이 패닝과 줌만으로 보여준 거야.” 한 학생이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의 동선 모두 사전에 계획된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이명세 감독은 “그럼. 콘티에 들어가 있는 움직임이야. 콘티대로 현장에서는 리허설을 하지”라고 대답했다.

형사들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대화를 나누는 시퀀스. 옥상의 빨랫줄에는 빨래 대신 비닐이 널려 있었다. “여기에 왜 빨래 대신 비닐을 널었겠니?”(이명세) “….”(학생들) “산동네 같은 이 동네는 공장 다니는 사람을 비롯해 여러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일 것 같았어. 비닐을 통해서 공간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어. 보통 빨래가 있지만 그걸 그대로 보여주기보다…. 장판을 깔 때 비닐을 쓰기도 하니 비닐을 걸 수도 있겠다 싶었지. 무엇보다 비닐이 싸잖아. 싼 걸로 했어. 관객이 이런 장면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이명세) “로케이션 촬영한 건가요?”(학생) “그럼, 실제로 아파트를 섭외해서 찍은 로케이션 시퀀스야.”(이명세)

형사들이 장성민의 내연녀 아파트를 급습하는 시퀀스. 현관문 밖은 로케이션 촬영으로 찍었지만, 아파트 내부는 세트에서 찍은 장면이다. “세트와 로케이션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보라고.”(이명세) 세트 밖에 위치한 카메라는 트래킹숏을 통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데, 관객은 컷 분할 없이 한번에 형사들이 이 방, 저 방 옮겨가며 급습하는 풍경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게 정말 힘든 숏이야. 일단 볼거리가 많지. 카메라의 속도, 배우들의 연기 등 모든 게 맞아떨어져야 해. 덕분에 배우들이 꽤 고생을 했어.”(이명세)

쉬는 시간에 이명세 감독에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DVD 코멘터리를 듣는 느낌”이라고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코멘터리?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시나리오대로 찍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감독은 이야기의 성격, 메시지, 자신의 스타일을 한데 녹일 줄 알아야 해. 그게 크리에이티브한 거니까. 다른 사람이 만든 영화를 보면서 ‘저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고민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야.”

이명세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두고 어떻게 찍었는지 학생들과 함께 분석하는 방식의 수업을 들으면서 이런 욕심이 생겼다. 기회가 된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뿐만 아니라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개그맨>(1988),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첫사랑>(1993) 등 그의 주옥같은 초기작의 뒷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그의 차기작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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